[기고] ‘무늬’만 자치경찰, 정체성 강화가 급선무
지난해 7월 실시된 자치경찰제에는 지역 실정에 맞는 주민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독립성과 자율성이 결여된 ‘무늬만 자치경찰’로는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등 자치경찰사무 전반에서 분출하는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참고로 대구경북연구원의 전문가 조사에 따르면 생활안전 순찰 및 시설 운영,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범죄 예방, 교통법규 위반 지도·단속 등이 주민참여가 유망한 분야로 나타났다.
2022년 정부합동평가 컨설팅에 참여해 시·도가 제출한 자치경찰 우수사례를 살펴보았다.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준비한 제1호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성과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국가경찰 또는 인접 시·도와 차별화된 적극행정사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지만 발전 가능성을 포착한 것은 고무적이다.
경북자치경찰위원회는 노인과 대학에 특화한 발전전략을 수립했다. 지자체 노력도 측면에서 민간중심 정책연구 플랫폼 마련과 메타버스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이 선진적이다. 협업 측면에서 치안행정 길라잡이 정책연구단과 대학생 앰버서더 활용도 참신했다. 하지만 제시한 목표 간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불분명했다. 제주자치경찰위원회는 관광지에서 분출하는 교통과 방범 문제에 착안했다. 지자체 노력도 측면에서 전국 최초로 과속 단속 과태료 부과 징수 시스템을 구축했다. 협업 측면에서 드론을 활용한 실종자 수색을 비롯해 스마트 행복치안센터 운영에서 유관기관을 적극 활용했다. 자치경찰의 성지답게 타 시·도의 견학이 빈번하지만 기획 역량과 홍보 실적은 미흡했다.
충북자치경찰위원회는 주민참여형 민관거버넌스를 구현하기 위해 경찰서별로 자치경찰 치안협의체를 구성했다. 실질적 성과는 미약하지만 기초 수준의 차별화를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 충남자치경찰위원회는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노인 교통사고 감소대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예산과 인력 및 협업 측면의 실행계획은 빈약했다.
자치경찰의 지속 가능성은 고유한 사명과 목표에 부응하는 조직과 인사 및 예산의 독립성이 좌우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출범을 전후해 자치경찰의 독립성에 공감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단기적 실천과제를 장기적 개선과제로 조정한 모양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경찰의 소극적 대응이 시사하듯이 생활안전이나 교통관리는 범죄수사나 기획정보를 우선하는 엘리트 간부의 선호에서 밀리며 완결성이 저하된다. 샴쌍둥이를 연상시키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쌍두체제로는 서비스의 전문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조직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경찰청의 자치경찰 직제를 폐지하는 대신에 시·도로 이관해야 한다.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의 접점이자 자치경찰과 동네경찰의 상징인 지구대·파출소 인력을 112종합상황실이 주도하는 방식을 탈피해 자치경찰의 활동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첨단기술과 주민참여를 결합한 리빙랩으로 생활치안을 확보하거나 청소년 상담 기능을 강화한 예방행정의 실천이 자치경찰의 최우선 과제이다.
인사의 전문성과 직결된 자치경찰 선발 방식이나 시험과목 결정도 시급하다. 시·도 차원에서의 인사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자치경찰 선발 과정에 지방자치론, 행정학, 행정법, 자치경찰실무 등을 포괄한 자치경찰론 과목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산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도 고안해야 한다. 지방재정의 취약성을 빌미로 소방공무원의 신분을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한 선례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분리 독립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세원 발굴, 특별회계 신설 등 재정 안정대책도 절실하다.
자치경찰의 진정한 독립은 2024년 제주·세종·강원을 대상으로 시범 이원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전통적으로 경찰행정은 상향식 소통의 무풍지대였다. 하지만 자치경찰제가 시작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행사하는 행정통제는 물론 주민에 의한 민중통제가 촉진되었다. 자치경찰의 조속한 분리와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면 민주성은 물론 효율성도 개선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치경찰은 보완적인 대체재 관념을 탈피해 필수적인 공공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김정렬 대구대 자치경찰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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