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성과주의의 재발견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2. 12. 28.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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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무한책임'이라는 정치적 수사 외에도 구체적 성과로 말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에 성과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니 어느덧 사반세기가 흘렀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K성과주의가 삐거덕거리는 이유는 뭘까.

성과주의 도입 이래 가장 중시된 명제 중 하나가 정부실패의 극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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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무한책임'이라는 정치적 수사 외에도 구체적 성과로 말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에 성과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니 어느덧 사반세기가 흘렀다. 성과급, 성과연봉제, 성과주의 등의 용어가 폭넓게 사용되지만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과연 '성과주의'는 '성과'가 있었는가. 문재인정권 5년 동안 공무원만 13만명이 늘고 인건비는 9조 원이나 증가했으니 정부는 일을 더 잘하게 된 걸까. 정부와 공공기관의 비대화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필요할 때는 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K성과주의가 삐거덕거리는 이유는 뭘까.

국민에게 화려한 성공을 약속했지만 결국 초라한 성적표만 남긴 채 임기를 마친 역대 정권의 공통점은 성과를 이데올로기화하고 정치화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화와 정치화의 무기는 선동이다. 선동이 잘 먹혀들게 하려면 국민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열망, 시기와 질투, 분노에 불을 붙여야 한다. 선동의 정점에 선 최고권력자가 물고기라면 '잘 되면 내 탓, 잘 안되면 나라 탓, 대통령 탓'이라는 성과주의에 대한 대중의 편견은 연못이다. 국민 스스로 져야 할 책임도 대통령에게 전가하고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주면 법치는 무너지고 봉건적 인치로 흐른다. 그 사이에서 성과주의는 유명무실해진다.

산업화를 넘어 민주화로 이행하는 동안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은 조타수 역할을 잘해냈다. 하지만 최근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졌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선출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언제나 지나친 게 문제다. 행정에 대한 정치권력의 과도한 통제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가 정부 수립 이후 그 제도적 원형을 유지한 공채제도다. 공채제도의 개혁 없이 K성과주의 복원은 어렵다. '일'이 아닌 '사람', '직무'가 아닌 '직급'에만 매달리는 일반 행정가 중심의 공채제도는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성과주의를 앞세운 선동적 정치권력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정부 업무평가나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계량·비계량지표만 갈수록 늘고 복잡해지면 뭐하나.

성과주의 도입 이래 가장 중시된 명제 중 하나가 정부실패의 극복이다. 시장실패보다 정부실패의 폐해가 더 크다는 자성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공평한 중재자의 역할을 넘어 시장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인터넷 세상에 정보가 넘치다 보니 정부의 무기력한 모습도 전보다 잘 드러난다. 최근 두드러진 퇴행적 성과주의의 특징은 정답이 없는 문제도 5년 안에 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아니 찾았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집단적 강박관념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엉뚱한 문제를 열심히 푸는 정부실패의 폐해는 더 심각하다. 이번 정부도 그 강박의 폐해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 무게를 이겨내야만 K성과주의의 재발견이 가능하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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