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말하는 '계곡살인'… 이은해·조현수, 가석방 의논하며 "아이 신나"

이유지 2022. 12. 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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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검 1차장으로 수사지휘 조재빈 변호사
접촉 없는 살인…의심 정황에도 증거 부족 난항
검사 2명 6개월 수사 전담케 해 계곡살인 몰두
살인미수 2건 인지…'복어독' 텔레그램 실마리
1심 무기징역·징역 30년…혐의 전면 부인 중
"억울한 피고인이 가석방 계산 '신난다' 하겠나"
'계곡살인' 사건 당시 인천지검 1차장검사로서 수사지휘를 맡았던 조재빈 변호사가 9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본보와의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 제공

"신체접촉 없는 살인사건이라…."

지난해 7월 인천지검 1차장검사로 부임해 '계곡살인 사건'을 보고받은 조재빈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쉽지 않은 사건이 될 것으로 예감했다. 2019년 6월 30일, 피해자 윤모씨가 계곡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익사했다. 같은 해 10월 변사사건으로 내사종결됐지만, 유족 측 제보와 언론 보도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경찰 재수사로 2020년 12월 윤씨의 부인 이은해와 내연남 조현수가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 송치 후 6개월이 지났지만 검찰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증거 불충분에 살인의 고의성 등 범죄구성 요건 미비로 법적으론 자칫 무혐의 처분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은해는 2017년 혼인 후 윤씨와 함께 산 적 없이 다른 남성과 동거해왔고, 윤씨가 경제적 착취로 빈곤상태였는데도 실손보험은 방치하고 과도한 생명보험료를 납부했다. 6차례나 실효된 보험을 되살렸고, 계약 만료 4시간 전 사건이 발생하는 등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면 재수사… 살인 고의 입증 '텔레그램 대화' 전환점

올해 3월 검찰 공개수사 전환 당시 발표된 '계곡살인 사건' 이은해(왼쪽)와 공범 조현수 사진. 인천지검 제공

조 변호사는 전면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뇌부 차원의 결단을 끌어냈다. 그는 "진실규명에 실패하더라도 피해자 한을 풀어주기 위해 검찰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수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수사력이 뛰어난 검사 2명을 배정해 6개월간 구속사건을 배당하지 않고 수사기록과 디지털 증거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했다. 만기가 촉박한 구속사건 부담을 덜어, 계곡살인 사건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조 변호사는 "범행현장에 보험사기 목격자 역할을 할 지인들이 항상 동행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계획 범행 후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답사 등 사전준비와 추가 범행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했다. 수사팀엔 기존 증거의 면밀한 검토는 물론, 주변인을 모두 조사해 피의자가 2번 이상 찾은 장소는 철저히 살피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계곡 사건 전에도 복어 독을 섞은 음식을 먹이고, 낚시터에 빠뜨려 윤씨를 살해하려 한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특히 그는 '양양 복어독' 사건 당일인 2019년 2월 17일 이은해·조현수의 삭제됐던 텔레그램 대화가 복구된 순간 실마리가 풀렸다고 회상했다. 이은해가 "(복어 독이 많이 든) 알이 없어서 이번 판도 GG일 듯(실패일 듯)"이라고 보내자, 복어 내장 등을 공수한 조현수는 "피나 다른 것들로도 갈(죽을) 수 있대"라고 답한다. 이은해가 "근데 왜 쟤(윤씨) 멀쩡하냐"라고 언급한 내용도 담겼다. 살인 고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였다.

수사팀은 지난해 12월 이은해·조현수 1차 조사에서 계획살인 증거를 제시하며 압박했으나, 이튿날 이들이 조사 직전 도주해 난관에 봉착했다. 조 변호사는 "체포·통신·계좌부터 배달대행업체 의뢰내역까지 영장 50여 건을 발부받고, 팀을 나눠 전국 각지에 잠복했지만 조력자들 도움으로 쉽사리 흔적이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경찰에 소재 수사 협조 공문도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사 지휘를 받지 않게 된 이상 더 요청할 수는 없었다.

조 변호사는 이에 검찰 차원의 공개수사 필요성을 적극 주장했다. 전례 없는 일에 대검은 난색을 표했지만, 설득 끝에 올해 3월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이후 제보가 쏟아졌고, 경찰도 공조 의사를 밝혀 합동검거팀이 구성됐다. 결국 도주 4개월 만에 두 사람을 붙잡았다. 조 변호사는 "기소중지하고 살인범을 방치할 수는 없어 방법을 고심했다"며 "그때 포기했다면 검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에선 혐의 부인…옥중편지선 가석방 거론 "아이 신남"

'계곡살인 사건' 피고인이 된 이은해(왼쪽)와 조현수가 올해 4월 19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최주연 기자

올해 10월 법원은 이은해·조현수의 살인 및 살인미수 등 혐의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선고해 이례적으로 높은 형량이 나왔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만 '가스라이팅(심리 지배)'을 이용한 직접 살인은 인정되지 않았다. 조 변호사는 "양형이 높다고 보진 않는다"며 "피해자인 윤씨 인격을 처참히 박탈했고, 계획 공모범행이었기에 검사로 남아 있었다면 사형 구형도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리부검 결과를 고려할 때 극심한 생활고에 빠지고, 주변 관계가 단절된 윤씨에게 다이빙은 이은해에 대한 구애이자 소속감 증명을 위한 행위였을 것"이라고 봤다. 심리가 지배된 상태를 이용한 이은해·조현수의 계획대로 윤씨가 바위에서 뛰어내린 순간 살인이 완성된 것이란 설명이다. 조 변호사는 "치밀한 계획과 가스라이팅 관련 증거 채택에 따라 항소심에서 직접 살인이 인정될지 주목된다"고 했다.

검찰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던 이은해·조현수는 공판에선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조현수가 이은해에게 보낸 옥중편지엔 "자기 말대로 60% 복역하면 가석방인데 징역 10년이면 6년 뒤부터 가석방, 아이 신남" "나는 개쩌는 모범수가 될 수 있을 듯, 1심 무기징역 나오면 아빠 쓰러져 죽는 거 아니냐"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혐의를 부인한 것과는 배치되는 내용인 셈이다. 조 변호사는 "억울하게 징역을 살게 된 사람이 '신난다'고 표현하며 가석방을 내다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윤씨의 유족은 1심 선고 후 검사들 손을 잡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조 변호사는 "망자의 한이 풀려 영면에 들고, 유족들의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이 그치길 바란다"며 "23년간 검사로 살면서 공직자로서 도리를 다하고 떠날 수 있게 된 듯해 감사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계곡살인 같은 사건에서 증거 수집과 실체적 진실 규명은 몹시 어려운 일이라 수사기관이 힘을 합쳐야 밝힐 수 있다"며 "검찰의 수사역량을 국민을 위한 봉사에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조재빈 변호사는
진주동명고, 서울대 법대 졸업 후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29기로 2000년 부산지검 검사에 임관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장,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부산·인천지검 1차장 등을 역임하며 '특수통' 검사로 자리매김했다. 삼성그룹 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 BBK사건 특별검사팀,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 총괄기획팀장,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파견 등을 거쳤다. 올해 7월 법복을 벗고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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