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장'된 포털 댓글 어떻게 할 것인가
포털 대책 마련했으나 욕설 아닌 '혐오대응'엔 한계
혐오표현심의위 주목, 포털 댓글 폐지 공론화 움직임도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포털 댓글이 또 다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참사 생존자였던 A군의 극단적 선택의 배경으로 포털 악플이 지목됐다.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KBS에 출연해 '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악성 댓글이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답했다. 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지난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태원 참사 기사 혐오댓글 더 많았다
국민일보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팀에 의뢰해 '이태원 참사' 당일부터 열흘 뒤인 11월 9일까지 이태원 참사 기사 댓글 123만여개를 분석한 결과 혐오댓글이 58.27%로 절반을 넘겼다. 혐오가 감지되지 않은 '비혐오 댓글'은 41.72%에 그쳤다. 참사 전 네이버 기사 전체 댓글에선 비혐오 댓글이 과반(52.34%)이었다. 포털 자체에 혐오댓글이 많지만 이태원 참사 기사에선 더 많은 혐오 댓글이 포착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등 국면에서 혐오 댓글이 늘었다.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가 포털 뉴스 댓글 데이터 수집 후 혐오발언 측정 알고리즘을 통해 혐오발언의 빈도를 파악한 결과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 대상 혐오 발언이 늘었다.
포털 뉴스는 주목도가 높다는 점에서 댓글 문제로 인한 악영향도 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관련 댓글을 접한 이용자의 71.4%는 '혐오적이거나 인신공격성 댓글'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55.8%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 시 관련 뉴스 및 정보에 달리는 댓글창을 차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포털 대응 발전하고 있지만 '혐오대응' 한계
포털이 방관한 건 아니다. 포털의 연예, 스포츠 댓글 서비스 폐지는 적극적인 대응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양대 포털은 △댓글 본인확인제 도입 △ 댓글 작성 수 제한 △댓글 정렬방식 변경 △댓글 작성 이력공개 △ 악플 필터링 인공지능 도입 및 고도화 등을 통해 댓글의 해악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카카오는 댓글 '닫힘' 상태를 기본 화면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이들 서비스 개편은 일련의 성과를 거두긴 했다. 네이버 발표에 따르면 네이버 프로필 사진 노출 조치를 강화한 후 한달 간 악플 자동삭제 건수가 16%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포털 다음에 따르면 인공지능 필터링 기술 '세이프봇' 도입 이후 욕설 댓글이 63.8% 줄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공지능의 '악플' '욕설 댓글'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문제적 댓글의 존재다. 특히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성 댓글 가운데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이진 않지만 해악이 심각한 경우가 많다. 국민일보 분석에 따르면 일부 댓글은 이태원의 핼러윈 파티를 외국에서 들어온 정체 모를 행사라며 금지하라거나 쫓아내라는 식으로 혐오를 드러냈고, 유족의 슬픔을 비꼬고 시민의 애도 목소리를 '선동질'로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는 '욕설 필터링'으로는 대응하기 힘들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같은 상황에서 여러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와 대형 인터넷커뮤니티 등이 소속된 자율규제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혐오표현 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혐오표현심의위는 이승선 충남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임했으며 2023년 상반기 중 혐오표현 심의를 할 예정이다. 이승선 위원장은 “혐오표현을 정의하는 작업부터 개별 사례 심의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맥락과 배경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판단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혐오표현 심의는 법으로 규정하지 못한 혐오표현을 자체적으로 정의하고, 포털을 비롯한 주요 인터넷 사업자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러나 기준을 넘지 않으면서 혐오 메시지를 담은 표현이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 다수나 해외사업자가 KISO 가입사가 아니라는 점에선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포털 댓글창 폐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16일 시민추모제가 진정한 추모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양대 포털에 관련 기사 댓글창 닫기를 요청했다. 카카오는 이에 응해 추모제 기사에 댓글을 없앴다. 네이버의 경우 포털 내 댓글창 관리 권한을 언론사가 갖고 있는데 지상파3사, 종편4사, 보도채널2개사와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연합뉴스 등이 관련 기사의 댓글창을 닫았다.
권김현영 여성학자는 27일 한겨레 '세상읽기' 칼럼을 통해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를 당장 마련하기에는 규제 대상과 방법에 관한 논의 과정이 매우 복잡해 번번이 실효성 있는 조치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며 “가장 문제가 된 영역부터, 가장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에게 문제 해결의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자.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 이제는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포털 댓글 폐지도 고려해볼만한 대안이지만 창구 자체를 없애는 방안이 적절한지, 한쪽을 억누르면 다른 쪽으로 문제가 커지는 '풍선효과'는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포털의 연예 스포츠 댓글 폐지 이후 포털의 관련 뉴스 조회수가 감소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량과 댓글이 늘어나는 등 풍선효과가 관찰된 사례가 있다. 언더스코어와 미디어오늘 분석 결과 연예 이슈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의 네이버 댓글 폐지 이전 100일 간 평균 댓글수는 324개였는데, 네이버 연예뉴스 댓글 폐지 이후와 네이트 연예뉴스 댓글 폐지 사이인 139일 동안 평균 댓글 수는 423개로 늘었다. 이어 네이트 댓글 폐지 이후 100일 동안에는 평균 댓글이 520개로 늘어난다. 댓글들 가운데 혐오발언을 포함한 악플의 비율을 추정한 결과 네이트 댓글 폐지 이후 DC인사이드의 연예 관련 세 갤러리의 악플 비율이 33%(네이버 댓글폐지 이전)에서 40.9%로 늘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 권김현영 여성학자는 “인터넷 포털의 댓글이 개별 커뮤니티의 악성댓글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라며 “커뮤니티의 악성 댓글이 인터넷 포털 뉴스의 댓글에까지 확산된 것이 맞다. '풍선효과'가 아니라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하는게 더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쿠나 DC인사이드와 네이버 뉴스 포털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연예 스포츠면의 악성 댓글은 불특정다수에게 무맥락적으로 노출되며 댓글까지 포함해서 뉴스로 인식되도록 제공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의 자율규제보다는 강한 개선된 자율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12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주최 토론회에서 유승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혐오표현의 경우 완전한 자율규제 체계가 아닌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심이 된 협력적 자율규제 모델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유승현 겸임교수는 “온라인 혐오표현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좀 더 대안적인 협력적 자율규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형식적 자율규제보다는 높은 수준, 공동규제 보다는 낮은 수준의 자율규제 체계로서 국가기관 승인 하에 재정적으로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제3자가 관여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현재도 있는 자율신고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며 “신고 기능을 안내하고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공지능 모니터에 그치지 않고 사람에 의한 모니터가 필요하다. 규제 논의는 이뤄지지만 교육에 대한 논의가 미미한 점도 문제다. 인터넷 윤리 교육 확대도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 본 기사는 포털 댓글 문제의 제도적 개선 논의를 다루며 포털 댓글 폐지로 인해 커뮤니티 혐오 댓글이 늘어나는 등 풍선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도 이후 권김현영 여성학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풍선효과'보다는 '깨진 유리창 효과'로 보는 것이 적절하고, 포털과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 문제를 동등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같은 반론의 논지가 타당하다고 판단해 본문의 관련 대목을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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