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우주처럼 넓고 깊은 당신을 이해한다는 것
당신을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가? 당신은 아름답다. 그것은 당신이 아직 세상에 도착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이해하는 일은 우주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당신이 곧 우주다. 몇억 광년이 흐른다고 해도 당신을 이해할 수는 없다.
당신을 생각하면 먼저 작은 한숨을 내쉰다. 당신은 손닿을 수 없는 무한, 거울 속에서 잠들고 깨어나며, 오늘이 아니라 미래에 도착한다. 바람이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면 나는 당신의 바깥에서 당신을 두드린다. 당신의 문을 열어 그 내부로 들여보내 달라고! 당신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등대처럼 깨어 있는 당신
내 앞에 선 당신은 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한 사람이자 동시에 여럿이다. 당신은 하나의 자아가 아니다.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의 자아로 사는 당신 내부는 무수한 지층으로 이뤄진다. 그 지층으로도 당신은 우주와 맞먹을 만큼 엄청난 복잡성을 품은 것을! 당신은 거기 있음, 존재의 구멍, 가뭇없는 연민, 활동하는 무, 계속 태어나는 죽음, 예측 불가능한 찰나들, 타자적 현존의 총합이다. 당신은 내게로 오면서 동시에 내게서 멀어진다.
나는 당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말해봐. 그럼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할게라고 말한다. 당신은 무언가를 먹는 존재다. 그건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이다. 나는 당신이 아침에 먹는 것과 저녁에 먹는 것을 안다. 당신에게 나를 통째로 줄게. 나를 현미밥처럼 씹고 목구멍 너머로 삼켜버려! 당신이 먹는 게 바로 당신이다! 나는 먹는 거로 당신 인격의 한 부분을 쪼개고 끌어낸다.
당신은 밤에 잠들지 못한다. 밤은 내 손에 성냥개비 하나를 쥐여준다. 나는 성냥개비로 등을 켠다. 등을 중심으로 어둠이 한걸음 물러난다. 당신의 외투가 잠들고, 읽다 만 책이 잠들고, 당신의 의자가 잠들어도 당신은 자정 넘은 시각 어두운 바다의 등대처럼 깨어 있다. 당신은 왜 밤에 잠들지 못하는가? 당신은 귀를 쫑긋 세워 바깥의 기척에 집중한다. 그사이 메마른 걱정이 당신을 삼킨다. 당신의 의식은 찢겨 있는데, 밤은 당신의 의식을 들여다본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오, 불면의 메마름으로 깨어 밤을 응시하는 건 당신의 의식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다. 차라리 밤은 이 세상의 모든 불면을 지키는 야경꾼이다. 당신이 한밤중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리는 것은 불면증에서 도피하려는 시도다. 불면증을 피해 자꾸 도망가는 당신! 저 멀리로, 세계 저 너머로! 오, 불쌍한 당신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메마른 불면을 찢고 그 한가운데로!
사람은 그저 작은 혈액보관함이자 분뇨를 담은 가죽부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욕망하는 죽음, 최악의 경우는 살인기계! 그러나 노래하는 혀고, 생각하는 식물이며, 꽃피는 두개골인 당신은 다르다고 느낀다. 당신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다. 나는 당신의 고독을 잴 수 없다. 당신은 늙은 산, 개간하지 않은 황무지, 봉인된 절망, 세월이 낸 상처들, 내륙의 영혼, 타지 않은 천 개의 불꽃이다.
당신은 담배를 피운다. 당신의 끽연 습관은 꽤 오래됐다. 당신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 이 가느다란 연소성 물질을 태워 없애는 데 당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썼던가! 당신은 초조하거나 무언가에 집중할 때 무심코 담배를 입에 문다. 담배는 당신이 이제껏 말하지 않은 것, 그리고 미래에도 말하지 않을 욕망과 결핍에 대해 많은 걸 말한다.
담배는 작은 쾌락으로 인도하는 매개물, 무와 고요의 싹을 내밀게 하는 햇빛, 충족 불가능한 결핍의 심연, 아무 쓸모 없고 덧없는 것을 향한 조촐한 향연이다.
당신 안에 고요가 있다. 당신이 웃을 때 세계의 고요가 출렁인다. 당신은 잘 웃는다. 당신 웃음은 아삭하고 씹히는 오이 같다. 오이향이 나는 당신의 웃음이 좋다. “웃어라, 세계가 당신과 함께 웃으리라”(엘라 윌콕스).
나는 곧 당신이다
당신은 벌거벗은 신체로 이 세계에 강림한다. 때때로 당신은 아파 비명을 지른다. 쥐에게 대가리가 통째로 뜯어 먹힌 닭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광경을 보지 못했더라도 당신은 삶을 침식하는 고통에 대해 아주 잘 안다. 당신은 자주 아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픔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당신은 태고의 침묵, 태어나지 않은 태아, 풀지 못한 수수께끼, 미래의 징후! 그러니 당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조리한 사태다.
산다는 것은 우리가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연루되는 일이며, 동시대를 함께 지나가며 무언가를 겪고 이루는 일이다. 세상은 우리 생각과 행동이 빚은 결과물이다. 당신은 어디에 살았는가? 당신이라는 장소를 살았던 적이 있지만 나는 요람과 묘지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다가 사라지는 당신을 모른다. 당신이 당나귀였다면, 촛불이었다면, 튤립이었다면, 나는 당신을 더 잘 이해했을 테다. 당신은 당나귀도, 촛불도, 검은 튤립도 아니다. 내가 당신을 다 이해한다는 말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다. 당신을 이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신은 세계를 가로질러 와서 강의 얼음 위에서 운다. 강의 얼음 위에서 처연하게 우는 당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신은 내 존재 바깥으로 미끄러진다. 나는 늘 당신을 놓친다.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을 회수한다. 당신은 하나의 불가능성, 속이 보이지 않는 육면체, 끝내 열리지 않은 문이다. 당신은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은 나의 가능성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미스터리, 해독이 불가능한 문장이다.
돌아보라, 당신이 문득 돌아보는 곳에 내가 있다. 나는 곧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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