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03]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차현진 경제칼럼니스트 2022. 12. 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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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골프 세계 1위 리디아 고는 아마추어 시절 다섯 번이나 프로 대회에서 우승했다. 프로 골퍼들이 할 말을 잃었다. 데이비드 흄도 비슷했다. 철학자인 그가 ‘가격-정화-플로 메커니즘’ 즉, 통화량과 물가와 국제수지의 관계를 밝혀냈다. 흄의 친구이자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가 할 말을 잃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 시간강사였던 프랭크 램지도 경제학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는 어느 날 교수 식당에서 아서 피구 경제학과장과 식사했다. 당대 최고 경제학자도 답을 모르겠다는 문제들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서 궁리했다. 그렇게 완성한 최적 세율(稅率)에 관한 증명이 재정학의 이정표가 되었다. 저축-자본-성장률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학 모델은 경제성장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두 논문을 통해 램지는 경제를 모르는 대경제학자가 되었다.

램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비교할 만한, 팔방미인형 천재다. 수학, 철학, 논리학, 경제학, 통계학 분야에서 그의 이름이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램지를 친구로 알았고, 경제학자 케인스는 동료로 여겼다.

그러나 미인박명이었다. 램지는 케임브리지강에서 수영하다가 세균에 감염되어 급성 황달로 사망했다. 겨우 스물여섯 살 때였다. 천재의 너무 이른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이 “만일 그가 살아있었다면,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램지는 살았을 때 그런 조건문을 싫어했다. 그가 개척한 주관적 확률론에 따르면 “리디아 고가 아마추어 시절 다섯 번이나 우승하지 않았다면 프로 골퍼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의 과거 조건문은 공허하다. 과거의 조건문은 미래의 조건문과 수학적 의미가 다르며, 이미 지난 일을 공상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이 램지의 생각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오는 것은 오는 대로 다른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2022년이 지나간다. 새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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