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로 경영 좌지우지하면서…책임 회피 관행은 여전
58개 대기업집단 소속 2394개사 중 총수 일가 이사 등재 348곳뿐
대신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 참여, 사익편취 규제대상에 집중 재직
대기업집단 중 총수일가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회사 비율이 감소하고, 총수일가 미등기 임원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 집중적으로 재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가 그룹 경영에 영향력은 행사하면서도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67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소속 2521개사(상장사 288개사)의 총수일가 경영 참여, 이사회 구성·작동, 소수주주권 작동 현황 등을 분석한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27일 발표했다. 분석 결과 58개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 2394개 중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348개(14.5%)에 불과했다.
분석 대상 회사의 전체 등기이사(8555명) 중 총수일가는 480명(5.6%)에 그쳤다.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2018년 21.8%에서 2019년 17.8%, 2020년 16.4%, 지난해 15.2%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총수 본인의 이사 등재 회사 비율도 2018년 8.7%에서 올해 4.2%로 반토막 났다.
삼성·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CJ·DL·부영·미래에셋·네이버·금호아시아나·셀트리온 등 24개 대기업집단은 총수가 이사로 등재한 계열사가 한 곳도 없었다. 이 중 DL·미래에셋·넥슨·코오롱·이랜드·태광·삼천리 등 7곳은 총수 본인을 포함해 2·3세 등 총수일가 모두가 계열사 이사 명단에서 빠졌다.
총수일가는 미등기 임원 신분으로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등기 임원은 법인 등기부등본에 등록하지 않고 이사회 활동도 하지 않는다. 명예회장·부회장·사장·대표 등의 명칭을 사용하며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하지만, 이사회 활동을 하는 등기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경영과 관련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경영에 실패하더라도 ‘면죄부’를 받는다는 의미다.
총수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경우는 모두 178건(임원이 여러 회사에 재직하는 경우 중복 집계)으로 1년 전(176건)보다 늘었다. 하이트진로는 총수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회사 비율이 46.7%에 달했다.
중흥건설(10개), 유진(6개), CJ(5개), 하이트진로(5개), 한화(4개), 장금상선(4개) 등 총수 본인이 다수 계열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관행도 여전했다.
특히 총수일가 미등기 임원은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 몰렸다. 총수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 178건 중 절반 이상인 104건(58.4%)이 규제 대상 회사였다. 민혜영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총수일가 미등기 임원이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 집중 재직하고 있다”며 “총수일가의 책임과 권한이 괴리되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수일가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등기이사 가운데 사외이사의 비율은 51%를 넘었지만,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반대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전체 8027건 중 55건(0.69%)에 그쳤다.
공정위는 사회공헌 목적으로 설립된 공익법인에 총수일가가 집중적으로 이사로 등재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공익법인의 총수일가 이사 등재 비율은 66.7%에 달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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