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국정농단 주역들 사면…‘공정·법치’ 허문 윤 대통령
광복절 때 ‘유전무죄’ 기업인 이어
이번엔 ‘유권무죄’ 정치인들 다수
이명박, 17년 형량 중 2년만 채워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MB) 등 1373명에 대한 특별사면·복권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국정농단 사태로 수감된 현 여권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도 대거 사면·복권됐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야권 정치인들도 이름을 올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재벌에 면죄부를 준 ‘유전무죄’ 광복절 사면에 이어 ‘유권무죄’ 정치인 사면이 이뤄졌다. MB 사면으로 그간 수감된 역대 대통령들은 형기 상당 부분을 남기고 풀려나는 ‘불공정의 법칙’이 유지됐다. 윤 대통령이 공정·상식·법치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신년 특별사면·복권을 28일자로 단행했다. 대상자 명단은 윤 대통령 주재로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특별사면은 사법부에서 유죄가 확정된 특정인의 형 집행을 면제하거나 선고 효력을 대통령 결단으로 없애주는 게 골자다.
윤 대통령은 사면 이유로 ‘국민통합’을 들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사면 대상과 범위를 결정했다”며 “이번 사면을 통해 국력을 하나로 모아 나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사면 대상 선정을 두고 “범국민적 통합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저력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MB 등 사면의 이유를 설명했다.
신년 특별사면은 윤 대통령의 두 번째 사면권 행사다.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경제인 사면’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에는 ‘정치인 사면’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는 “화해와 포용의 분위기 조성” “폭넓은 국민통합” “과거 청산”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기업·정치인 사면이라는 ‘국민통합’의 방법론을 두고 불공정 논란이 불가피하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과 법치의 가치에 부합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MB 사면으로 그간 수감된 전직 대통령은 모두 조기 석방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기인 1997년 연말 당선인 신분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논의해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을 수감 2년 만에 사면·복권했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탄압으로 각각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이 확정된 상태였다. 국정농단 사태로 수감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말인 지난해 형기를 17년3개월 남기고 사면·복권됐다. 이번에 사면된 이씨의 남은 형기는 15년, 남은 벌금은 82억원이다. 이씨는 실소유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와 관련해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기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여만원의 형이 확정됐다.
‘국정농단 지우기’ 사면 기조도 이어졌다. 촛불 정부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박씨를 사면·복권했고,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던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이 회장을 복권해 경영에 복귀시켰다. 이번에는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연루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박준우·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이 복권됐다. MB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공작’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3년이 확정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잔형이 감형됐다.
야권에선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형기 5개월을 남긴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잔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집행유예가 선고된 전병헌 전 의원, 입법로비 사건으로 징역 1년을 받은 신계륜 전 의원 등도 명단에 포함됐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사면 불원서까지 제출한 김경수 지사를 끌어들여 사면한 것도 황당하다”며 “윤석열 대통령식 공정이라면 뻔뻔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면으로 윤 대통령은 3대 부패로 꼽았던 기업·공직·노조 부패 중 2개 부문에서 대거 사면을 단행한 셈이 됐다. 윤 대통령 ‘결단’에 따라 전임 정부에서 실정법을 위반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이 무더기로 사법부 결정의 예외가 됐다. 대통령 사면권은 절제된 행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윤 대통령은 최근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엄정한 법집행, 불법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 등을 강조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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