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 윤 정부의 잣대, 노동자엔 강경·기업엔 유연[키워드로 본 사건·사고 1년]
파업, 불법 규정 초강경 대응
‘반노조’ 국정기조로 격상시켜
지지율 반등에 ‘노조 때리기’
올 한 해도 “이대로 살 수 없다”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많았다. 정부는 파업에 ‘불법’ 딱지를 붙이고 ‘법과 원칙’을 앞세워 강경 대응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제압해 지지율이 오른 뒤에는 ‘반노조’를 국정 기조로 끌어올려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올 3분기까지 5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지만 정부는 기업 책임을 덜어주는 데 급급했다.
지난 6월 유최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의 0.3평짜리 철제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는 31일간 농성을 벌이면서 ‘30% 이상 깎인 임금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7월22일 하청 노사는 요구치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 4.5% 인상안’에 합의했다.
정부는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노조를 압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19일 출근길 기자단과 가진 문답에서 ‘공권력 투입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들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했다. 파업 타결 이후 고용노동부·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은 “불법 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부의 불법 낙인에 힘입어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주도자 5명에게 47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정부는 6월과 11~12월 두 차례에 걸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총파업에도 초강경 대응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지속과 적용 직군 확대를 요구하며 11월 파업에 나섰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화물노동자들의 최소 운임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는 오는 31일 일몰을 앞두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 총파업을 ‘집단운송거부’로 규정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화물차주는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고 화물연대는 노조가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시켜 차주들을 강제로 업무에 복귀시켰다. 유가보조금 지급 중단,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중지 등 압박수단도 동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정부 대응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긴급 서한을 보냈다.
중대재해 감축 기업에 맡기고
초과근무 주 12시간 제한 없애
‘사측 편향’ 뚜렷하게 나타나
정부의 반노동, 사측 편향 기조는 집단적 노사관계뿐 아니라 산재, 노동시간 등 개별적 노사관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산업재해는 줄지 않았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산업재해 483건이 발생해 510명이 사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사망 건수는 9건 줄었지만 사망자는 되레 8명 늘었다. 그런데도 노동부가 11월30일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기업의 자율규제에 강조점을 뒀다. 현재까지 검찰이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재판에 넘긴 사례는 4건에 불과하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법과 원칙은 중대재해 문제에서 세웠어야 했다”며 “중대재해 발생 시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는 시그널을 경영계에 확실히 줬다면 지금처럼 사고가 반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지난 12일 노동부에 ‘일주일 초과근무 12시간’ 제한을 허물고 월, 반기, 분기, 연 단위로 개편하라고 권고했다. 이렇게 되면 ‘주 52시간’은 무너지고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평균 노동시간(1716시간)보다 199시간 많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OECD 회원국 중 중남미 4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일한다. 그런데도 필요에 따라 특정 시기에 노동시간을 대폭 늘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게 권고안의 골자이다.
화물연대 파업 등 개별 사안에서 드러난 정부의 반노동 기조는 급기야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 국정과제로 격상됐다. ‘노조 때리기’로 지지율 상승의 맛을 본 윤 대통령은 연일 ‘노동개혁’을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사 불문 불법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측에도 노조를 향해 했던 것처럼 엄정한 잣대를 적용했는지는 의문이다.
<시리즈 끝>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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