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학현학파
경제학은 부(富)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현실과 유리된다. 주류 경제학은 부에 치우쳐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람들이 경제학에서 멀어지는 이유다. 그 역시 경제학자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비판이 통렬하다. “경제학은 일반인이 이 분야를 들여다보는 것을 꺼리게 만들어 영역보존을 하는 데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학문이다.”
한국 대학의 경제학과는 유독 계량과 통계에 치우쳐 있다. 교수의 압도적 다수가 미국 유학파인 것과 무관치 않다.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한 추상적 이론에 현실을 꿰맞추다보니 예측도 잘 맞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보수를 받지 않거나 임금이 높지 않은 분야의 노동이 사회 유지에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드러냈다. 노동의 가치와 사회적 공헌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보수에 비례한다는 경제학 이론은 허구다. 사람을 중심에 세우지 않으면 경제학의 ‘쓸모’는 더 줄어들 것이다.
한국 사회에 ‘사람 중심의 경제학’을 뿌리내린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4일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대학에서 통계학, 계량경제학을 가르치며 근대 경제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주류경제학만으로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고 여기고 관심을 확장해 갔다. 그에게 귀감이 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학이 피와 살을 지닌 살아 있는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임을 강조했다. 경제학도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는 마셜의 가르침을 고인은 가슴에 새겼다. 그의 호인 학현(學峴)을 두고 제자들은 ‘죽을 때까지 학문의 고개를 허우적허우적 올라가려는’ 뜻으로 풀이했다(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뜻 맞는 제자들을 ‘학현학파’로 두루 품으며 선생은 분배정의와 경제민주화를 등짐 지고 평생 비탈길을 쉼없이 올랐다.
2015년 한국경제학회 ‘석학과의 대화’에서 고인은 성장과 복지의 양립, 포괄적 성장, 경제민주화 등을 한국경제 과제로 제시했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고, 정부에 들어간 그의 제자들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작은 진전이나마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의 낡은 경제관에 사로잡힌 윤석열 정부 들어 뒤집히고 있다. 선생의 부재(不在)가 착잡하다.
서의동 논설위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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