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최초 신고자의 편지 “소리 내주세요, 본대로 들은대로”

한겨레 2022. 12. 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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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대의 편지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 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공동기획으로 희생자 가족, 생존자, 목격자와 구조자들이 함께 10월29일과 그 후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마련합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줄 생존자, 구조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나이 들면서는 그런 후회를 하지 않으려, 창피해도 옳다고 확신하면 소리를 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이 그날도 작동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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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이태원 생존자] 위로와 연대의 편지② 112 최초 신고자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대의 편지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공동기획으로 희생자 가족, 생존자, 목격자와 구조자들이 함께 10월29일과 그 후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마련합니다. 재난을 먼저 겪은 이들과 인권·재난전문가들이 곁이 되겠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줄 생존자, 구조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채널(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 전자우편(1029dignity@gmail.com), 유선전화(02-723-5300)

10월29일 이태원 목격자분들께,

안녕하세요? 힘드신 마음이실 텐데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맞나 머뭇거리며 편지를 씁니다.

저는 10월29일 초저녁인 6시께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가족과 즐겁게 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구경하며 즐기다, 갑작스레 많은 인파에 가족을 놓치고 혼자 겨우 먼저 빠져나와 112에 신고한 최초 신고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신고할 때는 제가 아니고도 많은 사람이 신고를 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고 이후 중대본 112 신고 내용 발표를 보며 6시경 신고자가 한 명이었다는 것이 저는 놀라웠습니다. 왜, 나만 신고를 했을까? 곰곰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를 난 아직 초등생을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늘 위험에 예민해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위험 요소가 정확히 보였던 거 같습니다. 또 하나, 경험이 부족했던 저의 젊은 시절 말하고 싶을 때 말하지 않아 후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이 들면서는 그런 후회를 하지 않으려, 창피해도 옳다고 확신하면 소리를 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이 그날도 작동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보고도 소리 내지 않는다면 잘못은 인지될 기회를 놓칩니다. 잘못을 알아도 지적하지 않는다면 잘못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10만 인파에 질서 유지를 위한 혼잡경비 필요성’은 전 국민 누구에게 물어봐도 ‘예스(Yes)’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어디에 누가 무엇을 하러 가든, 외국인을 포함 국민 10만이 움직이는 곳에는 너무도 당연히 ‘혼잡경비 기동대’가 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오지 않았을까요? 혼잡경비 기동대 출동 명령 버튼을 눌러야 하는 책임자가 왜 누르지 않았는지, 누르려 했는데 누군가 시켜서 그런 것인지, 국가는 대답해야 하는데 ‘파악 중이다’ ‘조사하고 있다’라며 그 쉬운 답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서인지 아비규환 속에서 최선을 다하신 소방관분들과 현장 경찰분들께 ‘몇 시에 도착했냐?’ ‘몇 시에 어디로 갔냐?’ 그런 질문들을 퍼붓습니다.

국민이 울부짖을 때 나타나지도 않던 책임자들, 냉담과 악담하던 국회의원들, 그들의 동료 국회의원들이 처음 나타나 한 일은 사상자를 수습하느라 고생한 분들께 수고했다는 격려가 아니라 질타였습니다. 소방관분들, 현장 경찰관분들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한 그분들도 피해자이고 무엇보다 본업에 충실했던 분들입니다.

10.29 참사의 범인은 본업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분들이 아니고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궤변을 입에 달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질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목격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보았고, 들었고, 우리의 동물적 감성과 그동안 배웠던 지성으로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궤변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핼러윈을 위해 멋지게 옷을 만들고 분장을 하고 온 우리 청년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처럼 영정과 위패도 없는 부끄러운 자들로 둔갑시키려 했던 그들의 행태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우리 목격자들이 말하지 않고 침묵한다면 범죄 가담자들은 다음 희생양은 다시 찾을 것입니다. 그 희생양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선량한 본업에 충실했던 힘 없는 어느 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격자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한 마디의 소리도 좋습니다. 소리를 내어 주십시오. 본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소중한 역사의 자료가 될 것이며, 일상에 충실했던 피해자와 유족분들의 보호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22년 12월27일

이태원 참사 112 최초 신고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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