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항우연 내분에 멀어져가는 우주강국

이준기 2022. 12. 2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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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개편 반발 잇단 보직 사퇴로
발사체·비발사체간 갈등 드러나
연구조직·인력 전면쇄신론 대두
과기부 '중재거부' 책임회피 논란
대전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경 항우연 제공
지난 6월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모습 항우연 제공

조직개편을 둘러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내홍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국가 우주개발 사업과 연구조직, 인력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나로호', '누리호' 식으로 개별사업 단위로 해온 우주개발 방식을 미국의 '아폴로 계획', '아르테미스 계획'같이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개방형 프로그램 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선 발사체와 비발사체 간 해묵은 파벌싸움이 외부로 표출된 만큼 소관부처인 과기정통부가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항우연은 지난 12일 발표된 조직개편에 반발해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 옥호남 나로우주센터장 등 주요 인사들이 보직을 자진 사퇴한 지 2주 가까이 됐지만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누리호 개발 주역인 고 본부장은 보직 자진 사퇴 후 휴가를 내고 지금까지 출근을 하지 않은 채 외부와의 연락도 끊은 상태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보직 사퇴 의사를 밝힌 발사체 분야 주요 보직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조직개편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듣고 있다.

이번 개편에서 항우연은 누리호 사업을 해온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내 16개 팀을 폐지하고 부 체제로 만들면서 발사체연구소를 신설했다. 그 결과 발사체개발사업본부에 소속돼 있던 270명은 발사체연구소 내에 신설된 조직에 배치되고 본부장 1명, 사무국 행정요원 5명만 남게 됐다.

이에 고 본부장은 "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사실상 해체한 것으로, 본부만 남겨 머리만 있고 수족은 모두 잘린 상태가 됐다"고 반발하며 보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이후 본부에 소속돼 있던 일부 보직자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발사체와 비발사체 분야인 위성, 항공 등 내부 파벌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실제로, 항공 분야 전임 임철호 원장이 이 같은 조직개편을 추진했다가 발사체 연구자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고, 투서 등 기관 경영에 있어 발사체와 비발사체 조직 간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 벌어졌다.항우연 측은 이번 조직개편이 내년부터 추진되는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차세대발사체 개발 등 급격하게 늘어난 발사체 연구개발 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직 사퇴자를 설득하고 있다.

이 같은 개편 취지에 대해서는 항우연 내부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항우연 내부 갈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과학계에서 커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소관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사실상 손 놓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함에도 이종호 장관과 오태석 차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항우연 차원에서 논의해 원만히 해결할 것"이라고 말해 책임을 회피하는 거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발사체, 위성, 항공 등으로 나눠져 있는 항우연 사업과 조직뿐 아니라 내년 설립 예정인 우주항공청 출범에 맞춰 우주개발 거버넌스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해 온 국가 우주개발 사업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발사체 전문가인 채연석 전 항우연 원장은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목표를 달성한 만큼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위한 새로운 조직과 인력,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발사체 개발은 10년이 넘는 긴 기간이 요구되는 만큼 지금부터 우수한 인력과 리더를 키워 발사체 인력의 세대교체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황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장은 "프로젝트 단위로 흩어져 있는 항우연 인력을 모아 조직 간 시너지를 내고, 내부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자체 기술력이 축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발사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개발 수요는 급증하는 만큼 정부도 항우연에만 맡겨놓을 게 아니라 인력 확보와 사업 체계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중 등 선진국뿐 아니라 우주 후발국들도 장기 그림을 세워 우주에 투자하고 있다. 신흥 우주강국으로 주목받는 아랍에미리트(UAE)는 2117년 미국 시카고 규모의 '화성도시'를 만들겠다는 100년 장기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우주자원계획'을 세워 국가 우주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장기 우주 프로그램 없이 30년 간 프로젝트 단위 개발에 머물러 왔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은 "우주청 설립을 계기로 긴 안목의 우주개발 사업 청사진을 세워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시너지를 내는 구조로의 전환도 필수"라고 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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