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정부와 지방 공약
[한겨레 프리즘]
[전국 프리즘] 송인걸 | 전국부 선임기자
웨스트프론티어호는 지난달 17일 오전 10시 대천항을 떠나 호도~녹도~외연도 노선에서 정기여객선으로서 마지막 항해를 했다. 선사인 신한해운이 ‘정부 지원금이 줄어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여객선 면허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충남 보령시가 유류비 인상분 등 적자를 보전하겠다고 약속하자 이틀 뒤인 19일 임시로 운항을 재개했다. 보령시는 이 노선을 국가보조항로로 지정받아 나랏돈으로 운영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인천, 전북은 연안여객선이 흑자사업이라고 한다. 변인규 웨스트프론티어 선장은 “인천 등은 지방정부가 섬에 낚시·관광객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성수기에는 반값 운임제를 시행해 여객선 이용객을 늘렸다. 여객선 운항 중단은 지방정부가 미래를 준비하는 행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중앙정부 행정은 미래지향형일까?
윤석열 대통령의 충청권 대표 공약인 중부권 동서횡단철도(서산~천안~청주공항~증평~영주~울진, 330㎞)가 임기 안에 착공할 수 있을지 짚어 봤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동서횡단철도는 충청내륙철도와 함께 충청권 메가시티를 위한 필수적인 기반이자 국가균형발전의 중요한 축이다. 서해안의 관광 여건이 중부 내륙과 연계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며 공약했다.
철도 전문가들은 취임 초기이긴 하지만 정부 의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진심으로 이 철도를 건설하려 한다면 먼저 노선 주변에 기초물류망과 관광지 개발 정책을 추진해 이 철도의 건설 필요성 등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데 선행 사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지난 정부도 공약했으나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 제4차 국가철도망계획에 들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SRT)를 운영하는 에스알(SR) 통합을 유보하고 경쟁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결정도 일반 철도의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흑자 철도는 고속열차(KTX)뿐인데, 고속열차 이익은 코레일과 에스알이 나누고, 일반열차·화물열차 등 적자 철도는 코레일 몫인데 동서횡단철도를 건설한다면 운영 적자를 고스란히 코레일에 떠넘기는 꼴이라는 얘기다. 경쟁체제에서 코레일은 적자를 줄인다며 일반열차를 감축하고 노선을 폐쇄했다. 정부의 경쟁체제 유지 결정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일까.
김태흠 충남지사는 윤 대통령이 지방선거 출마를 권유하자 국민의힘 원내대표 출마 뜻을 접고 충남지사로 방향을 트는 등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실제 지방선거 당시 김 지사의 선거 구호는 윤 대통령과 관계를 강조한 ‘힘센 충남’이었다. ‘힘센’ 김 지사도 대통령실에 동서횡단철도 공약을 신속히 이행하자고 건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의 충남 공약은 예상 항로를 벗어나 항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병원 분원 충남 아산 이전 사업도 그런 사례다. 정부가 이전지를 아산으로 정하면 될 줄 알았던 이 공약은 공모·경쟁 과정을 거치는 등 충남의 애간장을 태운 뒤인 14일에야 확정됐다. 김 지사는 “정부가 기관 이전 공약을 이렇게 결정한 것은 문제”라며 “인수위에서 (동서횡단철도) 로드맵을 짰어야 했는데 (…) 지금 하는 것으로 안다. 로드맵이 나와도 다음 총선 등 정치 일정에 맞춰 발표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대선·총선은 지방이 후보자들의 공약을 통해 활로를 찾는 기회다. 공약이 지켜져야 지방이 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래를 위해 지방을 배려하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말한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소 소장은 “지방이 사는 길은 서울·수도권보다 살기 편하고, 일자리 많고, 교육환경이 우수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을 꾀하는 길은 정부가 지방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지방을 대상으로 한 국비 사업은 정부가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잣대를 조정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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