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재벌집 막내아들' 사라진 효성 차남…檢 공소장에 드러난 민낯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2013년 경영수업을 받다가 돌연 그룹을 떠났던 데는 배우자 외도설 유포자로 친형인 조현준 효성 회장을 의심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전 부사장의 강요미수 혐의 사건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서 드러난 효성그룹 총수 형제의 민낯이다.
머니투데이가 27일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공소장에는 조 전 부사장이 조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촉발된 효성 일가 형제의 난의 숨은 얘기가 낱낱이 담겨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형제의 불화는 조 전 부사장이 2011년 그룹 계열사 감사를 실시한 뒤 조 회장이 계열사 부당지원에 관여했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친인 조석래 명예회장이 내부감사 결과 발표로 분란을 일으켰다며 조 전 부사장을 질책했고 조 전 부사장은 친형은 물론 부친과도 연락을 끊은 채 2013년 2월 퇴사할 때까지 출근하지 않았다.
불화는 조 전 부사장이 퇴사하기 직전인 2012년 말 조 전 부사자의 배우자가 사내에서 외도했다는 소문이 돌자 조 전 부사장이 소문 유포의 배후로 친형인 조 회장을 의심하면서 더 깊어졌다. 조 전 부사장은 조 회장이 그룹 홍보팀에 소문을 유포하도록 지시했다고 보고 퇴임 전달인 2013년 1월 홍보대행사 뉴스커뮤니케이션즈의 박수환 대표와 외도 소문 유포자 색출과 언론 대응을 위한 용역계약을 맺었다.
조 전 부사장은 또 같은 해 4월 조 회장을 압박해 그룹 내 비상장 부동산 계열사 지분을 고가에 사게 할 목적으로 박 대표와 추가 계약을 맺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그 해 2월 조석래 명예회장의 비서실장을 찾아가 '차남 조현문이 효성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보도자료를 주며 "배포를 안 하면 가방 5개에 꽉 차는 조현준 비리 자료를 들고 서초동(검찰)으로 갈 것"이라고 압박한 것으로도 검찰에 조사됐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당시 "사실과 다르다"며 조 전 부사장 측의 요구를 거부했다.
조 전 부사장의 대리인 역할을 한 박수환 대표는 같은 해 7월 조현준 회장을 호텔에서 만나 "조현문의 배우자 관련 지라시는 조현문을 내쫓기 위해 만든 것이 분명하다"며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서초동에 가게 될 것이라고 겁박했다. 조 전 부사장은 두 달 뒤 박 대표를 통해 다시 조 회장에게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비리를 하나씩 밝히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거듭된 도발에도 조 회장의 반응이 없자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효성 계열사 대표와 조 회장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조 명예회장은 같은 해 7월 차남인 조 전 부사장과 화해를 시도했지만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답을 듣고 지분 정리 협상을 하라고 장남인 조 회장 측 변호사에게 말했다. 다만 조 전 부사장의 요구는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조 전 부사장은 2015년 3월 박 대표의 조언에 따라 조 명예회장 부부를 찾아가 "부모라 할 자격도 없다"며 "조현준을 평생 괴롭히겠다"고도 경고했다. 형인 조 회장에게는 "부인 관련 지라시는 당신(조현준)이 재벌 부인들에게 소문 낸 거 아니냐"고도 말했다.
조 회장은 가족과 자신에 대한 동생의 압박이 계속되자 2017년 조 전 부사장을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부장검사 조광환)는 지난달 9일 조 전 부사장을 강요 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분쟁 해결 대가 등으로 매달 2200만원을 약정하고 3년여에 걸쳐 11억30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조사된 박수환 대표도 공갈미수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변호사가 아닌데도 돈을 받고 법률사무를 취급하면 변호사법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조 전 부사장은 2013년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로 시작된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에 대한 횡령·배임 혐의 재판 당시에는 형인 조 회장과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을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재벌가의 이단아, 내부고발자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당시 효성그룹에서 내부 사정에 밝았던 조 전 부사장이 국세청과 검찰 수사에 도움을 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자 조 전 부사장은 불법행위를 은폐하고 조 회장의 부정을 감싸기 위해 비리를 뒤집어씌운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에서 조 전 부사장의 변론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당시 민정수석을 지냈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맡았다. 우 전 수석은 2013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되면서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을 사임했는데 이후 효성 사건이 조사부에서 특수부에 재배당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조 명예회장에 대한 횡령·배임 혐의 재판은 2014년 1심이 시작해 2020년 대법원이 원심 판결 일부를 파기환송했고 올해 10월 파기환송심이 시작됐다. 조 회장 사건은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된 상태다.
조 전 부사장은 2016년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연임 로비 청탁을 받고 20억원대 특혜성 계약을 따낸 혐의)와 맞물려 터진 '박수환 게이트'로 조 회장 등에 대한 겁박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이 참고인 소환 조사를 요구하자 해외로 나가 잠적했다가 지난해 말 귀국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의 입국으로 소재가 파악되자 올 1월 조 전 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조 전 부사장은 1969년생으로 조 회장과는 한살 터울, 막내 조현상 부회장과는 두살 차이다.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고교 동창인 고(故) 신해철씨와 그룹 '무한궤도' 멤버로 활동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로펌 '크라바스, 스웨인 앤 무어'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와 삼형제 가운데 가장 늦게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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