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33) 등자
발걸이 발명후 기마병 큰 활약
자동차와 기차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말(馬)이 없었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 자동차가 없다고 가정할 때 겪어야 할 불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인간과 말의 인연은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대략 기원전 5000∼6000년 전으로 보지만 인간이 길들여 가축화한 것은 기원전 3000년 전이란 것이 정설이다.
말은 사자 같은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황소 같은 뿔도 없는 초식동물로 기껏해야 자기방어 수단으로 뒷발질이나 하는 유순한 동물이지만 민첩성과 끝없는 지구력으로 인간의 이목을 끌었다.
말의 힘으로 연자 맷돌을 돌리고 쟁기를 끌고 말 등에 짐을 싣고 때때로 잡아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말 등에 타고 길을 가자 신세계가 열렸다. 그 속도감과 안락함을 주는 말은 곧바로 인간의 발이 됐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칼과 창을 들고 달려가 적을 찌르고 베고 달아나고 하는 전쟁에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존재가 됐다. 사냥을 나가서도 인간은 사슴을 따라갈 수 없지만 인간을 등에 태운 말은 사슴을 쫓아갈 수 있었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 인간과 사냥감의 싸움에 말이 끼어듦으로써 전세가 급격히 기울어졌다. 말이 누구 편에 서느냐가 승패를 갈랐다.
말 타는 솜씨도 전세를 좌우했다. 당연히 유목민의 승마솜씨가 빛을 발했다. 중국이 수세기에 걸쳐 온 나라의 힘을 기울여 만리장성을 쌓은 연유도 따지고 보면 기마솜씨가 뛰어난 몽골족이 중국으로 내려와 가축과 곡식 그리고 여자를 약탈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물론 중국에도 기마병이 있었지만 몽골 기마병과 격차가 너무 커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말은 너무나 역동적인 동물이라 말 등에 올라탄 기마병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말 등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화한 것이 전차(戰車)다. 말을 여러필 마차에 묶어 달리면 마차 위의 병졸은 활도 쏠 수 있고 창도 휘두를 수 있는 데다 지휘관은 전차 위에서 지도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차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으니 바로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전차는 서양에선 기원전 2500년 전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사용됐고 중국에선 기원전 진시황도 타고 다녔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험로에서 맥을 못 추는 전차가 자연스럽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혼자서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 칼을 빼 들고 옆구리에 창을 끼고 상대방을 죽이려면 우선 말을 타고 내리는 게 자유로워야 한다. 왕이야 말 등에 탈 때 마부가 땅을 짚고 엎드리면 그의 등을 밟고 오르면 되지만 모든 사람이 마부를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누군가 말 등 한쪽에 발걸이를 달았다. 전장에 나간 기마병은 먼저 말 등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하기에 양 허벅지를 힘껏 조여서 말 등에 밀착해야 한다. 한손은 말고삐를 잡고 한손은 가까스로 칼이나 창을 들고 나면 몸동작은 쪼그라들었다.
여기서 인간은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을 한다. 말안장에 달려 양쪽 말 배에 밀착되는 양쪽 발걸이, 바로 등자(鐙子)를 발명한 것이다. 인류 역사를 바꾼 이 단순한 마구(馬具)가 인간이 말을 이용한 지 4000년이 지나서야 발명됐다는 건 역사의 수수께끼다.
등자의 효과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우선 말을 타고 내리는 것이 자유로워졌다. 아녀자조차 혼자서 쉽게 말을 타고 내렸다. 또 말이 달릴 때 균형을 잡을 수 있어 말 등에서 떨어질 염려가 없어졌다.
전투할 때 기마병은 자신이 말 등에서 떨어지는 낭패를 당할 염려가 사라지자 창칼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활까지 쏘게 됐다. 달리는 말 위에 앉아 뒤돌아서 활시위를 당길 수 있다는 것은 등자가 없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전투에서 보병이 주류를 이루고 기마병은 통신ㆍ연락ㆍ운송에 국한됐던 양상에서 기마병이 전투 선봉장으로 재편됐다. 유럽에선 긴 창을 들고 말을 탄 기사의 위상이 갑자기 높아져 봉건제도가 형성됐다. 조그만 마구 한쌍이 사회제도를 바꾼 셈이다.
도대체 등자는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언제 발명했을까? 똑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등자가 나타난 초기에는 나무로 만든 것, 나무에 철판을 부분적으로 덮은 것, 헝겊으로 엮은 것, 신발처럼 발 전체를 덮는 것 등 각양각색이었다. 5세기 고구려 등자가 세계 최초의 금속 등자라는 유력한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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