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동지(冬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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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1월과 12월, 동지와 섣달은 일년 가운데 가장 춥다.
밤은 길고 날은 춥고 마음은 시린 동지섣달만 잘 넘기면 또 다른 한해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
밤이 가장 긴 날이니 동지만 지나면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어쨌든 밤이 가장 긴 동지를 지나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니 옛사람들은 동지를 축제의 날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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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사람들에겐 고마운 소식
숨죽이던 생명체들도 ‘기지개’
인생도 최악일때 회복의 신호
결국 따뜻한 봄날은 돌아온다
음력 11월과 12월, 동지와 섣달은 일년 가운데 가장 춥다. 밤은 길고 날은 춥고 마음은 시린 동지섣달만 잘 넘기면 또 다른 한해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
동지(冬至)는 겨울이 지극하여 끝에 다다른 날이다. 밤이 가장 긴 날이니 동지만 지나면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론상으로는 추위 끝, 더위 시작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추운 날이며 동지가 지나면 섣달이 막아서고 소한과 대한 추위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어 만만하게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어쨌든 밤이 가장 긴 동지를 지나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니 옛사람들은 동지를 축제의 날로 여겼다. 춥고 긴 밤이 이제는 점점 줄어들고 따뜻한 낮의 기운이 점점 상승하기 시작한다 하니, 추위에 지치고 어둠에 고달픈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소식이었을까? 그들은 동지에서 태양의 부활을 보고, 따뜻한 봄기운의 싹을 상상한 것이다. 그래서 동지를 한해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설날 명절로 지내거나 작은설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도 신라에 이어 고려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가 정월이었고 한해를 시작하는 설날이었다.
동지를 <주역>의 괘에서는 ‘복괘(復卦)’라고 한다. ‘복’은 돌아온다는 뜻이다. 지금은 춥고 어둡지만 따뜻하고 밝은 세상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제 동지가 지나면 얼었던 땅은 녹고, 숨죽이며 겨울을 나던 생명체들이 기지개를 켤 것이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만 그럴 뿐, 기나긴 겨울이란 차가운 강을 건너야 한다. 절망이 무너지는 데도 시간이 걸리듯이, 희망이 싹트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세상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변화 이전에 작은 진동과 파장이 여러번 반복돼야 한다.
<주역>의 24번째 괘인 복괘는 ‘지뢰(地雷)’ 형상이다. 땅(地) 깊은 아래 조그만 양의 움직임(雷)이 느껴지니 작은 희망의 싹이 트고 있는 형상이다. 지금은 비록 온 땅이 꽁꽁 얼어 있지만 지하 세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따뜻한 양의 기운 하나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작은 불씨 하나가 온몸으로 세상에 불빛을 전하려고 애쓰는 듯하다. <주역>에서 ‘지뢰복(地雷復)’은 절망 속에 희망이 보이는 점괘다. 아직은 문제도 많고 어려움도 크지만 저 멀리서 희망 하나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해의 절기에 동지가 있듯이 인생의 여정에도 동지가 있다. 절망이 너무 깊어 더이상 버틸 힘조차 없다면 그때가 바로 희망이 싹트는 동지다. 아직은 되는 일도 없고 넘어야 할 산도 많지만 바닥은 시작의 첫번째 계단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세상의 모든 것은 극에 다다르면 반드시 돌아온다. 권력도 극치에 다다르는 시점이 몰락의 시점이다. 겨울도 가장 추울 때가 봄의 시작점이다. 인생도 가장 절망적일 때가 회복의 신호다. 경제도 가장 호황일 때가 불경기의 시작이고 최악의 경기가 회복의 시작점이다. 세상은 최악의 상황(窮)을 지나면서 변화(變)가 시작되고, 변화가 무르익으면 형통(通)의 곡선을 지나고, 그것이 오래가면(久) 결국 바닥(窮)을 만나게 된다. ‘궁·변·통·구(窮·變·通·久)’, <주역>에서 말하는 우주의 변화 모델이다.
동지를 마주한 농촌은 여전히 춥다. 새벽에는 웃풍으로 입김이 절로 나고, 난로에 아무리 장작을 많이 넣어도 주변만 뜨겁지 실내는 한기로 썰렁하다. 그래도 웃음이 나오는 것은 내일부터는 낮이 길어진다는 우주 진리 때문이다. “네가 아무리 추위로 나를 괴롭혀도 결국 따뜻한 봄날은 돌아올 거다. 복(復)!”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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