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지구 살리는 농업” 친환경농업 자긍심 높다
친환경농산물자조금 설문조사
농가 51% “신념·자부심 때문”
“비용·판로 지원 필요” 목소리
“충북 단양군 영춘면 유암리 OO가 제 마늘밭 주소입니다. 정말 친환경으로 농사짓는지,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이 어떻게 재배되는지 궁금하다면 언제든 확인하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만큼 농사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친환경농업은 잡초·벌레와의 싸움이다. 생산 뒤에도 문제다. 일반 농산물보다 비싼 데다 벌레 먹고 못생긴 과일이라는 이유 때문에 판로도 한정돼 있다. 강한 신념이 없다면 친환경농업을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가 7∼8월 451농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1%가 ‘신념·자부심’ 때문에 친환경농업을 한다고 답했다. ‘경제적 이윤 추구(27%)’ ‘정부 지원(12%)’은 그다음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신념과 자부심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대답은 ‘살기 위해서’다. 제주에서 가업을 이어 20여년 감귤농사를 짓는 고동균씨는 “맹독성 농약에 중독돼 건강이 크게 악화했다가 우연히 친환경농업을 접했다”고 했고, 경기 안성에서 친환경포도를 재배하는 백이남씨 역시 “농약중독으로 농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고 했다.
가족 건강이 계기인 사례도 있다. 단양에서 2만7000㎡(8170평) 규모로 벼·배추·마늘 등을 재배하는 정철영씨다. 한평생 농사지은 아버지가 말년에 급성간염·부동맥·위암을 앓았는데 2006년 아버지가 출연했던 TV 건강프로그램 피디(PD)가 건강을 위해서라도 친환경으로 농사지어보길 권유한 것. 그 후 그는 ‘힘들고 돈도 안된다’는 주변 반대에도 친환경농사에 뛰어들었다.
안전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자부심 외에도 그가 친환경농사를 지속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친환경벼를 재배하고 2년째 되던 해 그는 논물에서 올챙이처럼 생긴 생물이 헤엄치며 흙탕물을 일으키는 모습을 목격했다. 농약 등을 쓰지 않는 논에서만 발견돼 농가 사이에서 친환경증표로 통하는 긴꼬리투구새우였다. 바로 붙어 있어도 농약을 조금이라도 친 논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단양군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지역 친환경농가들은 토양이 살아나면서 기존에는 없던 생물들을 발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경험을 한 건 정씨만이 아니다. 인천에서 초록통쌀(일반쌀 수확기보다 2주 앞서 벼가 초록색일 때 수확하는 쌀)을 재배하는 한성희씨는 농한기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우연히 친환경쌀을 접하고 친환경의 길로 들어섰다. 늦은 나이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했을 정도로 농사에 열정이 컸던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는 그에게 친환경은 특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친환경 전환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생태계가 다양해진 것이다. 한씨는 “생협 소비자들이 체험을 와서 우렁이와 메뚜기를 관찰하고 건강한 농촌을 체험하고 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친환경농사를 짓는 데는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농업’이라는 자부심이 크게 작용한다. 실제 정씨가 농지 주소를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만 자부심만으로는 농사짓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친환경농업의 어려움을 묻자 농가는 ‘파종부터 수확까지 일련의 노동과 농사관리(36%)’ ‘제반비용(23%)’ ‘판매(22%)’ 순으로 답했다. 비용과 판로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로 읽힌다.
이에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의 역할이 주목받는다. 농가 거출금에 정부 지원을 더한 재원으로 운영되는 자조금관리위원회는 ▲친환경농가 자긍심 고취와 역량 강화 ▲미래세대 육성과 연구 지원 ▲가치 홍보와 소비 촉진 등의 역할을 한다. 특히 광고·카드뉴스 등을 활용한 친환경농업 가치 전파와 박람회 등을 통한 소비 촉진에 힘쓰고 있다. 주형로 자조금관리위원장은 “지구를 지키는 친환경농업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중심에 있다”면서 “지속가능한 먹거리가 우리 국민에게 공급되도록 친환경농업 가치 확산과 소비 촉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양석훈 기자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