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기준 100억 상향 불발... 1.5조 ‘매도 폭탄’에 개미들 운다
야당이 부자 감세라고 막았는데
주가 하락으로 개미가 운다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를 피하려는 증시의 ‘큰손’들이 연말에 주식을 대량 매각하는 현상이 올해도 반복됐다.
27일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1조1331억원을 순매도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개인 순매도가 4039억원에 달했다. 이날 하루 개인들의 순매도 규모는 1조5000억원을 넘었다.
증시에서는 이날이 연말 대주주 지정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거래일이었기 때문에 보유 금액을 줄이기 위한 개인투자자 매물이 쏟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종목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가 이날까지 주식을 팔지 않으면 대주주로 지정돼 내년에 22~33%(지방세 포함)의 주식양도세를 내야 한다. 반면 대주주로 지정되지 않은 개인 투자자는 주식양도세를 내지 않는다.
정부는 국내 증시에 신규 자금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의 기준을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리려고 했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증권가에서는 “야당에서는 ‘부자 감세’라고 반대하지만,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는 매물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면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 등도 힘 못 써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순매도세를 이어갔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23일 450억원 순매수를 기록한 것을 빼면 같은 기간 개인들의 매도 공세가 이어졌다. 개인 투자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사실상 예견된 것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연말마다 대주주로 분류되어 양도소득세를 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파는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8일에도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1조9976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1조1611억원을 순매도했다.
그간 정부는 대주주 기준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코스피 주식을 기준으로 2018년 15억원, 2020년 10억원으로 강화됐다. 2021년에는 3억원까지 낮출 계획이었는데, 투자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윤석열 정부는 “연말 주식 매도 현상으로 인한 시장 왜곡 문제를 완화하겠다”며 대주주 기준을 100억원으로 완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야당 반대 등으로 실패한 것이다.
대신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5000만원이 넘는 국내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한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2025년으로 2년간 미뤄졌다. 또한 정부는 ‘현대판 연좌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대주주 판정 시 가족 등 기타 주주 합산 제도’는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주주 기준 완화라는 결정타 없이 이런 보완책만으로는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매도 폭탄에 개미들이 운다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시점 등을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주식을 대량 보유한 고액 자산가들이 시장을 떠나면 나머지 투자자들이 보는 피해가 크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매매 차익 등 소득이 있다면 과세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접근이 소액 투자자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주주 기준 완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코스피 시장에서 특정 주식을 10억~100억원 보유한 사람은 6316명(중복 포함)이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5129명이다. 이들이 코스피 시장에서는 16조5137억원어치, 코스닥 시장에서 14조5593억원어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대주주 기준을 완화하면 이들 소수에 대한 과세를 면제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대주주가 되지 않기 위해 주식을 내다팔면서 발생하는 시장 왜곡 현상을 막을 수 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국내 증시는 변동성이 유독 크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 정책에서 상장사들이 소극적이라 투자자들이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세제까지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계속 바뀐다면 고액 자산가들이 대거 해외 증시로 이탈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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