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이 관행이었다? ‘국민통합’ 아니라 ‘여권통합’ 특별사면
정부는 27일 국정농단에 가담한 공직자들을 대거 특별사면·복권하면서 “이들이 직책·직무상 관행에 따라 범행에 이르렀다”고 했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국정농단 범행을 ‘관행’에 따른 것으로 규정해 면죄부를 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사면 대상에 포함돼 ‘셀프 사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신년 특별사면·복권 대상에는 공직자 66명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번 사면·복권이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면면을 보면 윤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 확장을 위한 ‘여권 통합’에 가까워 보인다.
사면·복권 대상에는 고위공직자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을 억압하고, 공정한 선거를 저해하며, 직무의 공정성을 저해한 이들이 다수 포함됐다. 보수단체를 불법 지원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조윤선 전 정무수석,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불법사찰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대표적인 예다.
예산안 증액 등 현안 처리를 대가로 국정원장의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받거나, 제공한 이들도 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다.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댓글을 조작해 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사건 관련자들도 포함됐다.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군 댓글공작 사건에 관여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이 그렇다. 군사기밀 문건 유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를 받은 김태효 현 국가안보실 1차장도 있다.
정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들을 사면·복권하는 이유로 ‘잘못된 관행’을 들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정수행 과정에서 당시 직책과 직무상 잘못된 관행에 따라 불법행위를 저질러 법의 심판을 받았던 공직자들”이라며 “이들을 특별사면에 포함시켜 다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고 했다. 정부는 “과거 경직된 공직문화를 청산하고자 한다”며 “국정농단 사태라는 국가적 불행을 극복하고 하나로 통합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체로 윤 대통령이 2017년 5월~2019년 7월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수사해 재판에 넘긴 이들이다. 한 장관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검찰은 국정농단·적폐청산 수사를 하면서 형법상 직권남용죄를 적극 활용했고, 공무원 조직 내 벌어진 일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관행이었다’며 사건에 대한 평가를 바꾼 것이다.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내세워왔다.
2018년 12월 국정원 특활비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한 2심 법원은 ‘관행이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 “그런 관행은 정보기관과 정치권력 사이 그들만의 관행일 뿐이고, 국민이 알고 시인하는 관행은 아니다”라며 “청산돼야 할 불법적인 관행을 행위의 기준으로 삼고 따를만한 것은 결단코 아니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들 사면은 가장 큰 책임이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된 점을 가장 크게 고려했다”며 “사면권자인 현직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그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고 해서 특별히 사면에 포함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의 경우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에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법원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면·복권 조치로 15년의 잔여 형기와 82억원의 벌금 납부가 면제된다. 이씨는 지난 6월부터 형 집행이 정지된 상태로, 전체 형기의 8분의 1 가량만 복역했다. 법무부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신분과 박근혜씨가 벌금 미납 상태로 사면된 전례를 고려했다고 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을 확정받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사면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정부가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여야 균형을 인위적으로 맞추려 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범행이 관행이었다’며 국정농단 사범들을 대거 사면·복권하면서도 김 전 지사에 대해선 범행의 중대성을 이유로 잔여 형 집행만 면제하고 복권은 하지 않았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균형을 맞춰도 정치인 사면은 호평을 받은 적이 별로 없다”며 “누구는 복권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는 식으로 형평성도 맞지 않기 때문에 국민 통합에 기여를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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