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나갈 판"…여야 政爭에 멀어진 尹 '반도체 꿈'

장유미 2022. 12. 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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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특혜 논란에 얼룩진 'K-칩스법'…경쟁국 10~20% 세액공제 속 韓 고작 8% 그쳐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미국, 일본 같은 경쟁국에서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누가 한국 반도체 시장에 투자를 할까요?"

반도체 업계가 반도체특별법(K칩스법)의 국회 통과를 두고 언짢아 하고 있다. 치열한 전쟁터가 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정부가 현실과 동 떨어진 중재안을 내놓은 데다 야당이 '재벌 특혜'라는 시각에만 치우쳐 반도체 지원책에 대한 본질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초강대국'을 위해 승부수를 띄워 5년 후 글로벌 점유율 25%를 달성하겠다고 내놓은 목표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미국 대통령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27일 업계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 23일 밤 국회 본회의를 통해 대기업이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에 시설 투자하는 경우 투자금액의 8%를 세금에서 공제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현행 6%에서 8%로 확대됐으나,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는 그대로 유지됐다. 당초 여당이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를 제안했으나, 야당이 특혜라고 주장하고 나선 탓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야당이 낸 '민주당표 반도체 특별법'의 세액공제율에도 못 미쳤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 10%,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30%로 올리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는 야당의 반대로 심사가 지연된 사이 기획재정부가 여당이 내놓은 안에 제동을 건 탓이다. 여당 안이 통과되면 오는 2024년 법인세 세수가 2조6천970억원 감소할 것으로 판단되자, 정부는 이를 이유로 야당 안에서 2%포인트 더 줄였다. 결국 여야는 4개월을 끌다 정부안으로 합의를 이뤘지만, 최악의 결과만 도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업계에선 세액공제율 8%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 낮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8월 반도체과학법을 마련해 반도체 설비투자 기업에 세액을 25% 감면해주고 있다. TSMC가 있는 대만은 현지 기업의 연구개발,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5%로 높이는 법안을 최근 발의했다.

일본은 구마모토에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Foundry·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건립 비용의 절반을 대기로 했다. 또 20년간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정부 차원에서 5천억~1조 엔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 기금도 조성할 방침이다.

중국은 고급 반도체 생산 공정에 법인세를 면제하고, 향후 5년간 현지 반도체 기업에 1조 위안(약 183조3천400억원)을 지원하는 패키지를 내년 1월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반도체 투자 비용의 30~50%를 지원키로 했다. 반도체 생산 보조금도 미국 69조원, 중국 187조원, 일본 19조원에 달한다.

이 같은 지원책 덕분에 미국의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주도권을 잡는 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분위기다.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은 후 마이크론 120조원, 삼성전자 260조원, SK하이닉스 29조원 등의 대형 반도체 투자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여야가 이번에 내놓은 합의안은 지원책으로 삼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단기적인 세수 감소효과에만 매몰돼 이 같은 결론을 내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해당 법안을 발의한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반발이 크다. 양 의원은 법안 통과 직후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에 관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25%, 미국 25%, 대만 25%, 중국은 무려 100%인데 8%짜리 한국이 경쟁력이 있겠느냐"며 "벌써 미국으로 빠져나간 투자금만 300조원에 달한다. 코리아 엑소더스(탈출) 규모는 이제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민생은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던 여야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사망선고에 합심했다"며 "산업계와 학계, 정치권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배신감에 분노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고사시킨 이번 결정을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고 분개했다.

경제단체들도 이번 결정을 두고 유감을 드러내며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치열한 글로벌 첨단산업 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회 및 정부가 세액공제비율 확대 논의를 이어가야한다"며 "관련 대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적 관점에서 따져봐야 할 반도체 사업을 배터리, 2차 전지와 동일선상에 놓고 지원책을 마련하려는 것 자체가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와 글로벌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국회도, 정부도 반도체가 모든 첨단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먼저 이해하고 나서야 하는데 업의 특수성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하지만 정부는 대기업 세액공제율 8%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또 연구개발(R&D) 투자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이미 40%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기본공제 8%에 내년에 한시적으로 적용될 투자 증가분 세액공제율(10%)을 더하면 18%까지 혜택이 주어진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 찬성 의견을 낸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이 반도체 투자에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하는 것은 생산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라며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특수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4대 반도체학회와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 민간위원 전원은 이번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26일 성명을 내고 "이미 반도체 경쟁국 모두가 시장자율에서 국가의 적극적 지원과 개입으로 전환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간 기업도 정부의 적극적 지원 없이는 경쟁은 물론이고 생존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도체 학계 및 산업에 종사한 우리가 판단하기에 국회 결정은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단절시키는 것이고 후배들에게 희망 고문을 주는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현명한 논의를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무슨 근거로 20%, 10%의 숫자를 거론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반도체 산업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정쟁 도구로만 활용한 것"이라며 "정부가 단순히 내년에 한시적으로 적용될 투자 증가분 세액공제율 10%까지 포함해 단순 계산으로 18% 세제 혜택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 것도 셈법과 현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SK하이닉스 M16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률이 크다는 점도 반도체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봤다. 전경련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률은 지난해 기준 26.9%다. 미국(13%)과 대만(12.1%)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울러 국내 대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은 G5(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가 평균 17.6%인데 비해 한국은 최대 2%에 불과한 상태다.

각 기업별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 유효세율은 각각 25.2%, 28.3%를 기록했다. 반면 TSMC는 10.0%, 인텔은 8.5%, SMIC는 3.5%였다. 마이크론 역시 7.1%에 불과했다. 유효세율은 기업 재무제표상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한 값이다.

SK하이닉스는 TSMC(572억8천50만 달러), 인텔(790억2천400만 달러)보다 연 매출 규모가 절반 수준인 360억 9천740만 달러(지난해 기준)에 불과하지만, 법인세는 훨씬 더 많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법인세는 31억9천만 달러로, TSMC(23억8천350만 달러), 인텔(18억3천500만 달러)보다 각각 33.8%, 73.8% 많았다. 삼성전자의 법인세는 112억8천680만 달러로 100대 기업 중 가장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각국이 리쇼어링(해외로 진출한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에 공 들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개정안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되레 낮추는 행위"라며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생산의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비용 문제로 인해 해외로 나갈 경우 기술 유출 뿐만 아니라 인력 채용 문제에 있어서도 끝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가져오게 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반도체 전방산업에 대한 지원책이 부족하면 투자가 줄어 함께 하는 중소기업들 역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침체 사이클이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일이 엄청난 악재될 것으로 보여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빠르게 후속 조치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안에선 세액공제뿐 아니라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당초 첨단산업특별법 개정안에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와 무관하게 반도체 등 전략산업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린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당정 협의 과정서 '수도권 특혜' 논란이 일며 대학 내 정원에서 조정하는 방향으로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향자 의원은 "지역에 반도체학과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를 막아버린다면 인재들이 모두 해외로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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