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전 위기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변상근 2022. 12. 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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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한국전력공사는 어떻게 해서 올 한 해 30조원에 이르는 적자에도 여전히 생존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대단히 놀랍게도 한전의 신용등급이 초우량 등급인 '트리플A'(AAA)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들은 투자자들이 한전에 돈을 빌려 주더라도 떼일 염려가 매우 낮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전은 올해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한전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많은 민간기업이 자금 경색으로 도산하거나 도산 위기에 처한 현재 한전이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에도 도산하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은 신용평가사들의 오류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신용평가사들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했다. 한전에는 민간기업들이 결코 누릴 수 없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 특권이라는 것은 한전이 우리나라 전기공급 책무를 부담하는 공기업으로서 '국가의 암묵적 보증'을 통해 국가로부터 신용 보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전은 재무상태 그 자체만 보면 언제 도산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투자자 신뢰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전이 공기업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전기가 '공공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기가 공공재라는 생각은 모든 국민에게 언제 어디서든 전기를 값싸게 공급해야 한다는 신념에 기인한다. 더욱이 과거 우리 정부의 지상 목표는 산업 성장을 통한 경제 발전이었고, 전기는 산업 성장을 위한 필수재로 여겨졌다. 그에 따라 전력산업에서의 제1 덕목은 전기를 안정적·경제적으로 공급하는 것이었다. 전기요금은 물가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했다. 이렇듯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기공급을 위해 전력산업은 정부에 의해 관리돼야 했다. 현실적으로도 한국전쟁 직후 국내 민간자본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국가가 경제주체로서 전면에 나서 전력산업을 이끌어 가는 공기업 체제 외에는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전이 무한정 적자를 보더라도 국가 신용도와 동급의 한전채를 발행해서 무한정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상 공기업 한전이 값싼 전기를 계속 공급하는 것이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물가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안이 아닐까? 얼핏 그럴듯 해 보이는 이 주장은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인지하는 것처럼 한전채의 대규모 발행에는 매우 심각한 대가가 따른다. 한전채 발행은 재원이 한정된 금융시장에서 민간기업 회사채의 수요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한전이 원가 미만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동안 민간기업은 고금리를 주고서도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해 도산 위기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나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 재정이 마르지 않는 샘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가 역시 세금만으로 충당되지 않는 정부 지출을 위해서는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국가도 투자자 신뢰를 얻어야만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국가가 함부로 자금을 탕진해서 재정을 악화시킨다면 투자자 신뢰는 곧 사라질 것이다. 공기업 부채는 국가가 암묵적 보증을 제공한 이상 투자자들에게는 실질적으로 국가 부채와 다를 바 없다.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 부채 급증은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공적연금·사회보험 위기와 더불어 국가 신용도를 갉아먹고 궁극적으로 국가 재정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그 위험이 현실화되면 공공 서비스 중단, 나아가 국가 기능 마비를 초래할 것이다.

결국 국가 기능을 유지하고 공공 서비스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국민 욕구와 불만을 국가 재정에 의존해서 해결하려는 포퓰리즘 정책을 거둬야 한다. 그동안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한 대표적 분야가 전력산업이다. 세계가 에너지 위기에 떨고 있는 이 겨울에 우리나라만이 홀로 추위를 걱정하지 않고 도심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휘황찬란하게 빛난 것은 공기업 '한전의 성공'이 아니라 공기업 '한전의 실패'를 증명한다. 이와 함께 오늘의 즐거움과 안락함을 위해 내일의 위기를 개의치 않는 정부 정책의 무모함 또는 무책임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 겨울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지낸 대가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청구될 것이다. 그 대상은 미래의 전기 소비자이거나 미래의 납세자일 것이다. 이제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전기요금, 전력산업 구조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때가 됐다. 이와 동시에 전기요금 정상화,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가 왔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chinpyo.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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