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정상화'된 외교만이 대한민국 미래 책임진다
1991년 12월 21일 옛 소련 해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된 후 대한민국은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단일 초강대국이자 굳건한 동맹인 미국은 국제사회에 안전하고 자유로운 바다와 하늘길을 열어 주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자원 부족의 불리함을 딛고 수출 중심 경제를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물론 발전의 길에 국제금융기구(IMF) 구제금융이라는 걸림돌도 있었지만 이를 더욱 앞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보건 재난 속에서 이루어 낸 성과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 하지만 또다시 우리는 신냉전이라는 시계 제로의 폭풍 앞에 서 있다.
◇신냉전 시대 도래
미국은 중국에 불공정 무역과 불법적 기술 탈취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신장위구르 인권유린 문제, 타 국가 내정 침투 문제, 남중국해 불법적 해상 영토 확장 문제 등을 들이밀며 중국이 국제적 규범을 지키도록 압박을 시작했다. 이어 대만 독립 유지라는, 중국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문제로까지 공세가 번지자 남중국해에서 양국의 군함이 대치하는 군사적 긴장 상황을 넘어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대만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정치적 상황까지 이르렀다.
또 2월 24일 발생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불법적 우크라이나 침공은 신냉전 시대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 됐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적·군사적 분야를 넘어 사람들이 먹고사는 경제 영역까지 넘어왔다. 글로벌 자유무역 기조 아래 촘촘하게 짜여 있던 공급망과 가치사슬은 신냉전 앞에서 기초부터 흔들거리며 각국이 생산기지를 모두 자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촉발했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자원 부국이자 군사 강국은 자신들의 자원 수출을 일방적으로 통제, 외교적 무기화하고 있다. 2021년 요소수 대란 사태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중국·러시아발 에너지·물류 대란은 우리 삶에까지 파고들어 왔다. 에너지·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은 우리의 의식주 전 영역에 강력한 인플레 요인으로 작용, 국회의원 임기 내내 가위 월급 빼고 모든 것이 오른다며 내쉬는 국민의 한숨 상황이 필자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고 있다.
◇혼란 틈탄 북한의 도발
국제적 혼란을 틈타 북한은 도발 수위를 강화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극초음속 대륙간탄도미사일부터 300㎜ 미만의 재래식 방사포까지 다양한 종류의 도발뿐만 아니라 북한은 핵무력 법제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로서 더욱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북한과 중국·러시아의 군사적 공조가 눈에 띄게 일어나는 점이다. 그 예시로 5월 2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방일 직후 북한이 러시아·중국과 연계, 무력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이렇게 극동에서 동맹 블록 간 실질적인 대결이 일어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세계는 전략적 모호성이 훌륭한 외교적 방침으로써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엄혹한 상황임에도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지난 7개월 동안 사력을 다해 대한민국호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실용외교 복원
먼저 윤석열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권의 '전략적 모호성' 기조 아래 신뢰의 근간부터 흔들리던 한·미 동맹을 단시간 반석 위에 올려놨다. 양국 정상의 첫 공동선언문은 좋은 내용·단어들을 다 따와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놓아서 이른바 '뭔가 있어 보이게' 하려 한 지난 정권과는 달랐다. 매번 다르던 한·미 선언문 사후 해석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비로소 서로 일치된 해석을 공유했다.
또한 북한이 노리는 주한미군 약화, 더 나아가 철수 위험까지 보이던 이전과 달리 한·미 동맹의 기본인 여러 실질적인 안보 공조가 재개됐다. 4년 8개월 만에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했고,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정상적으로 재개했다. 북한 도발에 대한 한·미 동맹군의 대응도 일사불란하게 추진됐다. 대한민국 경제와 직결되는 자유로운 항행 문제에 대해서도 양국은 다시금 일치되었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경제 안보 체제에도 더 이상 정해진 질서에 종속되는 Rule-Follower가 아닌 그 규범을 만드는 Rule Maker로서 발돋움하게 됐다.
한·중 관계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리 당당하고 실용적인 외교를 복원했다. 한국의 외교적인 원칙과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자세를 통해 중국과의 외교를 정상화했다. 이는 중국이 불편해하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표현을 윤 대통령이 아세안 순방 때 사용했음에도 한·중 정상회담이 이뤄진 것과 문화적 콘텐츠의 한한령 완화, 지속적 양국 외교장관급 접촉이 증대된 것 등으로 증명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과거 사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언급은 없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에 대한 중국의 호응을 끌어내는 등 지난 3년 동안 기울어져 있던 한·중 외교 운동장을 단 25분 만에 바로세워 놓고 3년 묵은 국민의 체증을 쑥 내려가게 했다.
냉담을 넘어 거의 단절에 가깝던 한·일 관계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정상화의 길로 진입했다. 한·일 군사정보에 대한 실시간 공유는 물론 한·미·일 해상연합훈련을 5년 만에 재개했으며, 보호 협정을 정상화해 북핵 위협에 대한 한·일 군사협력의 불길을 되살렸다. 정식 정상회담 또한 3년 만에 재개됐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최근 필자가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일하면서 면담한 일본의 여야 중진의원들은 물론 일본 외무성 고위 관계자들 또한 동의하는 바임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바탕으로 강제징용 문제는 물론 전반적인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에 대해 일본 자국 내의 총괄적인 반성이 필요하다는 일본 지도자들의 전향적인 견해까지 확인했다. 물론 최근 독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한·일 간 공통된 안보적인 목표 의식 확인을 바탕으로 난해한 정무적인 부분을 풀어 나가는 '외교'의 기본 틀을 복원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북한 문제에 매몰된 외교를 펼치던 지난 정권과 달리 윤석열 정부는 세계 10대 군사·경제 강국인 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의 행보를 보였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증액은 세계를 휩쓴 보건 위협에 대한 협력을 증대했고,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4년 만에 복귀하는 등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또한 중상주의적이고 제한되었다는 비판을 받던 외교 전략에서 벗어나 '글로벌 중추국가'에 맞는 지역 외교 전략인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최초로 발표, 관련 국가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복잡한 외교 현안 국익 우선해야
물론 아직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외교적 현안은 산적해 있고, 그 복잡성은 리만가설조차 쉬워 보일 정도다. 현 정부는 근시안적인 정책 결정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외교 대전략을 수립하고, 과거의 비정상적 부분을 정상화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작은 차질은 과감하게 이겨 나가겠다는 뚝심 있는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는 정교하고 확실하며, 큰 그림을 보는 '정상화'된 외교만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사사로운 정치적 이득을 위한 발목 잡기를 삼가고 국익을 위한 국론 일치를 보여야 할 것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onekorea2025@gmail.com
〈필자〉태영호 의원은 평남 평양 출신으로, 서울 강남구갑 국민의힘 소속 21대 국회의원이다. 북한 외교관으로서 우리나라에 귀순한 뒤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중국 베이징외대 영문과 출신이며, 덴마크·스웨덴·벨기에 등 유럽 지역 중심으로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2016년 탈북 이전에는 주영 북한 공사로 활동하면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서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귀순 이후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 문재인 정부 통일부 국제안보행정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외교안보특별위원회 소속으로서 주영 북한 공사로 있으면서 축적한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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