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질병청의 개인정보 '과잉' 보호에 상처받는 유족들

남주현 기자 2022. 12. 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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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을 출입하다 보면, '○○○ 환자 국내 첫 확인' 같은 제목의 보도자료를 종종 접하게 된다. 2015년 5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 그랬고, 2016년 3월 지카바이러스, 2020년 1월에는 당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불렸던 코로나19 첫 환자 발생 보도자료가 나왔다. 올해에는 지난 6월 엠폭스(원숭이두창) 첫 환자, 지난 26일 파울러자유아메바 감염 국내 최초 사례가 나온 것을 알리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2015년 메르스 때 자료를 살펴보면, 첫 확진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68세 남자로 4월 18일~5월 3일 바레인에서 체류하며, 농작물 재배 관련 일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확진자를 상대로 역학조사가 시작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2016년 지카바이러스 당시에도 비슷했다.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해외 유입 사례 발생>이라는 제목 하에 43세 남성이 2월 17일부터 3월 9일까지 브라질 동북부 지역 출장 도중 모기에 물렸다고 기재돼있다. 메르스 때만큼 상세하지는 않았지만, 해외 체류 이유와 구체적인 지역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으로 국내로 들어온 날 배포된 자료도 비슷하다. <검역 단계에서 해외 유입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 확인>이라는 자료에는 확진자가 중국 우한시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의 35세 여성이며, 우한시 전통시장 방문력이나 확진 환자 및 야생동물 접촉력은 없다는 간략한 역학조사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질병청이 심층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라고도 설명했다.

올 들어 나온 자료 2건을 살펴보자. 엠폭스 첫 확진자에 대한 설명은 6월 21일 독일에서 귀국한 내국인이며, 인천의료원으로 이송됐고, 심층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내용과 입국 당시 미열, 인후통, 피부 병변 등을 보였다는 내용이 전부다. 파울러자유아메바에 감염돼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국내 첫 사례를 알리는 자료 중 확진자(사망자)에 대한 정보는 그보다도 더 적다. 태국에 4개월간 체류하다 귀국해 상급종합병원에 응급 이송됐다는 것이 전부다. 역학조사 내용이 없다.

질병관리청은 이에 대해 근거 없는 편견, 차별로부터 확진자와 확진자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도 있고, 해외에서의 이동 경로 등을 조사하느라 시간이 걸려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코로나19 초기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고 일부 확진자가 특정되고, 이런 과정에서 부당하게 비난받는 등 각종 부작용이 일어난 것도 보도자료 작성 방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질병청은 엠폭스 보도자료 말미에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확진 환자 정보 공개 지침을 첨부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국민이 알아야 하는 정보를 신속히 공개해야 하지만, 환자의 이름과 거주지 주소, 질병청장이 감염병 예방과 관계없다고 정한 정보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한다는 방침도 함께 기재됐다.

질병청이 비공개하는 걸로 정한 개인정보가 무엇인지 보자. 성명/성별/연령/국적/거주지 주소(읍·면·동 단위 이하) 및 직장명 정보는 비공개하는 게 원칙이라고 적혀있다. 역학적 이유, 법령상 제한, 확진자 사생활 보호 등의 다각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는데,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성별/연령(대)/국적까지 비공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출입기자들의 문의가 빗발치면, 경우에 따라 성별과 연령대, 국적을 공개하기도 하는데, 질병청이 스스로 과한 원칙을 만들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것도 비판받아야 하는 지점이다.

앞서 살펴본 주요한 감염병 첫 사례는 모두 해외 유입 사례인데, 이런 경우 해외 체류 기간뿐 아니라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체류 목적을 기재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너무 많은 개인정보가 공개돼 확진자가 특정되는 것도 문제지만, 정보를 너무 통제해 확진자에 대한 오해가 빚어지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파울러자유아메바 감염 국내 첫 사례자의 경우 교육공무원으로 태국에서 파견 근무하다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질병청 보도자료에는 태국에서 4개월 체류했다는 내용만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기사에 태국에 체류했다는 내용만 담기다 보니, 해외 여행 가지 말라는 식의 댓글이 달려 결국 유족들만 크게 상처 입었다. 유족들이 보도자료가 나오던 날 SBS와 인터뷰해, 고인의 직업과 출장지 등을 정확하게 알린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앞으로 심층 역학조사가 진행되겠지만, 보도자료 배포 시점에 최소한의 역학조사 내용조차 포함되지 않은 것도 보건의료를 취재해온 기자 입장에서는 안타까웠다. 고인은 방콕에서 주로 일하고 생활했지만, 최근 두 차례 동북부 국경 지역 오지 마을로 1박 2일 출장을 다녀왔다. 질병청이라면 유족이나 교육부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런 내용을 처음부터 보도자료에 포함했다면, 곧 태국에 갈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고,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않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메르스와 코로나19 당시 첫 환자나 특정 확진자에 대해 과도하게 관심이 몰려 각종 부작용이 생겼던 것은 분명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개인정보 보호 방침이 만들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개인정보 '과잉' 보호는 때로는 숱한 오해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남주현 기자burnet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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