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한일, 조심스럽게 또 과감하게
日은 좀더 적극적으로 나와야
韓은 보상의 최종완결성 확약
'다시 오지 않을 기회' 붙잡으라
한일관계의 정상화는 한국 외교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핵심 고리다. 한일관계가 좋아지면 한미관계도 돈독해지고, 아태지역으로의 외교 지평도 넓어지는 동시에 북한과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도 생긴다. 역으로 한일 간에 틈새가 벌어지면 한국은 고립되고 중국이나 북한 등 제3국이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한일 외교는 늘 살얼음판과 같다. 양국 당국 간 협상과 더불어 국내 단체들과 끊임없는 협의를 해야 한다. 전형적인 투레벨 게임 외교인데 어찌 보면 국내 정치가 많이 작용하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의 유례없는 군사적 도발 때문에 한·미·일 안보 협력은 불가피한 과제로 자리매김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세적, 수정주의적 외교 행태도 한일 협력을 촉진하고 있다. 엄중한 국제 정세가 한일 간 협력을 추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일이 한 발짝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한일관계의 근간을 흩뜨리지 않기 위한 해법 마련에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대법원의 판결에 역행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으며, 일본 측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안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중첩적 또는 병존적 채무 인수'라는 방안을 통해 정부가 아닌 한일 기업이 참여하고 정부 산하 재단이 나서서 피해자들을 보상하는 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일관계를 다시 미궁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한일 양측 모두 조심스럽지만 과감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 한국 정부가 기금 조성 과정에 일본 기업의 참여를 포기시켰다는 주장은 사실과 어긋난다. 우리 측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기업이 입장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의 참여를 촉구한 것은 정부의 주장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측은 한국 정부의 노력에 상응하여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먼저, 일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금 조성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고민하다가 너무 늦게(too late), 너무 조금(too little) 대응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참여가 없이는 피해자들도, 한국 국민들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와 기업은 식민지 지배로 인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통절한 반성을 표시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는 역대 일본 정부의 방침을 계승할 것을 요구하는 것일 뿐, 새로운 사죄 요구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조약의 기본 정신을 훼손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주장을 관철하려 하면 국가 대 국가의 대립, 국민 대 국민의 감정 싸움은 막을 수 없다. 다만,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상 개인 피해 청구 권리는 살아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둘째, 피해자 한정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차적으로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되,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며 1심에서라도 승소할 가능성이 있는 피해자들은 구제 대상에 포함되어야 옳다. 피해자의 규모를 한정하지 않고는 언제 끝날 게임일지 알 수가 없다. 셋째, 보상 이후 나중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보상에 나서는 측을 안심시킬 수 있다. 즉, 보상의 최종 완결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 세미나에서 일본 지식인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Now or Never) 기회'라는 각오로 한일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관계 개선에 최선을 다할 때다. 서로 국내 정치적 부담이 있더라도 결단해야 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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