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반도체 ‘김’의 부활

2022. 12. 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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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알처럼 주렁주렁 김발 잘 되게 해주세요

고창앞바다의 풍어와 안전조업을 관하는 용왕님께 고하나이다. 만월어촌계의 모든 어업의 뜻을 모아 제사를 올리면서 저희 어민들은 시절 좋고 풍년이 들어 오직이 풍성하고, 우순풍조하도록 용왕님께 의지하며 후환이 없기를 바라옵니다. 삼가 주과포혜를 정성껏 올리오니 너그러이 흠향하시옵소서.

임인년 경술월 기축일 구월 팔일 조금 물때를 맞이하여 만돌마을 선창에서 ‘고창군 지주식 김양식 풍년 기원제’가 있었다. 풍어제는 어장을 시작하는 정월에 많이 지낸다. 특히 서해안은 대표어종이었던 조기잡이 시기에 맞추어졌다. 조기잡이 신으로 자리한 임경업 장군이 서해 바닷마을에 자리를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추석 명절이 지나고 시작되는 김 양식이 활발하고 어촌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완도를 중심으로 추석명절에 김발고사가 생겨났다.

전남 진도균의 부류식 김 양식 현장.

바다의 반도체 ‘김’의 부활

김발고사를 끝내고 두 달이 지나간다. 이른 곳은 첫물 김을 채취했다. 고창갯벌의 만돌 지주식 김도 채취를 시작했다. 김은 해의라고 기록했다. 나뭇가지나 바위에 붙은 김을 채취해서 말린 탓에 석태라고도 했다. 근대 이전에는 나뭇가지를 갯벌에 꽂아 양식했지만 1960년대 김발이라는 어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김발 전용 그물을 제작해 양식하는 방식이다.

일제강점기 대나무를 쪼개서 엮은 죽홍과 구별해 망홍이라 했다. 갯벌에 기둥을 세우고 김발(망홍)을 매달아 김 포자를 붙여 양식했다. 이 모습은 오늘날 갯벌이 발달한 서해와 서남해 내만에서 볼 수 있다. 흔히 ‘지주식 김’이라는 브랜드가 붙은 김이 이러한 시설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후 연안이 개발되고 서식환경이 나빠지고, 양식기술이 발달하고 규모화 되면서 깊은 곳으로 양식어장이 확대되었다. 기둥을 세우는 대신에 닻을 놓고 부표에 김발을 매달고 닻을 놓아 고정시키는 양식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 양식방법이 ‘부류식 망홍’이다.

김 양식을 많이 하는 고흥, 해남, 진도 일대에서 많이 하는 양식방법이다. 최근에는 세트식 김 양식이라는 새로운 양식기술도 등장했다. 바다에 거대한 사각형 틀(세트)이 구조화되어 있고 여기에 김발을 끼워 넣는 양식방법이다. 부산의 명지, 고흥이나 진도나 새만금 밖의 수심이 깊은 먼 바다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김 양식이 산업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유리사상체’라 부르는 김의 포자(씨앗)를 인공으로 증식하여 안정적으로 김발에 부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과 전라남도수산과학원의 역할이 컸다. 현재 잇바디돌김, 긴잎돌김, 모무늬돌김, 참김, 방사무늬김 등이 있다. 김밥용으로 많이 이용하는 김으로 대량생산되는 품종이 방사무늬김이며 흔히 돌김이라는 명칭으로 판매되는 양식 김이 잇바디돌김이다.

전북 고창군 지주식 김 양식 현장.

바다에 떠 있는 김 양식장의 모습이 청색의 큰 바다에 사각형 김 양식장들이 떠 있는 모습이 마치 반도체를 연상케 해 김을 ‘바다의 반도체’라는 별칭이 생겨났다. 한때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와 수출을 견인한 것처럼 김 수출이 증가하면서 어촌경제는 물론 수산물의 해외수출을 이끌고 있다.

지주식 김 양식장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신안갯벌, 고창갯벌과 서천갯벌은 지주식 김 양식을 많이 하는 곳이다. 이들 갯벌은 순천만갯벌, 보성벌교갯벌과 함께 ‘한국의 갯벌’이라는 명칭으로 2021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특히 고창갯벌은 바닷물이 빠지면 배를 타지 않고 경운기와 트랙터를 타고 갯벌로 나가 김 양식을 하고 바지락이나 동죽을 채취한다. 조차가 크다보니 갯벌에 대나무 기둥을 세우고 김발을 묶는 지주식이다.

고창갯벌의 만돌마을은 김 양식을 시작할 때 패각을 자루에 담아 김발에 매달아 설치하는 전통 방법을 이용한다. 이러한 방법을 택하는 것은 김 양식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과 조차가 크다는 점 때문이다. 이 마을 주민들의 김 양식 규모는 40줄 내외다. 부류식 양식을 하는 어가의 경우 1000줄이 넘는다. 이 경우에는 육상에서 김발에 포자를 붙인다. 경운기와 트랙터를 이용해 물이 빠진 갯벌을 가로질러 양식장으로 이동한 후 김발을 펼치고 포자붙이는 일을 한다. 이렇게 어장으로 나가기 전에 주민들이 선창에서 고창수협이 준비한 음식으로 고사를 지낸다.

민물도요와 고창갯벌의 김 양식장.

만돌 김 양식장에서 만난 민물도요가 이러한 환경을 대변한다. 민물도요는 물이 빠진 갯벌에서 떼를 지어 작은 새우나 갯지렁이 등을 섭취한다. 다른 지역보다 노출시간이 길어서 산처리를 하지 않아도 김 양식이 가능하다. 오히려 산처리를 하면 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김 양식장 밑에 저서생물들도 공존할 수 있다.

오히려 육상의 숲 아래 벌레들이 많이 서식하듯이 해조류 숲 아래 저서생물의 밀집도가 높을지도 모른다. 김 양식 장 주변에 유독 도요새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만돌 지주식 김 양식 장은 인간과 갯벌생물과 물새들이 공존하는 갯살림의 장소이기도 하다.

김 산업을 이끌 전문연구기관이 필요하다

김 양식의 성패는 종자산업에서 결정된다. 기후위기와 수온변화 그리고 날씨변화에 대응한 포자를 생산해야 한다. 최근 김 수출의 호황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내구성과 내파성에 강한 양식자재 개발은 물론 친환경 양식시설로 전환해야 한다. 김 양식은 서해에서 이루어진다. 그곳은 대부분 해양보호구역이며 지주식 김을 생산하는 신안, 고창, 서천 갯벌은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로 등재된 유산구역이다.

‘한국의 갯벌’은 생물다양성과 멸종위기종 서식처의 가치가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인정되었다. 이제 김 양식도 이러한 가치를 존중하고 지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미 김 양식에 사용되는 합성수지로프 대신에 바나나 줄기나 코코넛의 화이버에서 추출한 천연섬유로 만든 로프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전남 고흥군의 부류식 김 양식 현장.

최근 해조류의 블루카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염습지는 국제사회에서 블루카본으로 인정을 받았다. 국내연구에서 갯벌의 블루카본 역할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갯벌과 해조류의 가치는 ‘K-씨푸드’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김 양식 관련 연구는 국립수산과학원과 전라남도 수산과학원이 맡아 왔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 측면에서 역부족이다. 수산물 수출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의 위상과 미래가치를 생각하면 ‘국립 김 연구소’ 설립이 조속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김 산업은 종자, 시설, 인력양성, 유통, 수출 그리고 블루카본까지 확대되고 있는 뿌리산업이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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