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H가 간다]그들이 '여성용 콘돔'을 만드는 이유

최연진 2022. 12.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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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용품 제조 스타트업 세이브앤코 체험기 1회

[편집자주]한국일보 스타트업랩의 인턴기자 H가 스타트업을 찾아갑니다. 취업준비생 또래인 H가 취준생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스타트업에 들어가 3일 동안 근무하며 취준생들의 눈높이에서 살펴본 관찰기를 매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스타트업들의 땀과 노력, 취준생들의 기대와 희망을 여기 담아 전달합니다.

2018년 박지원 대표가 창업한 세이브앤코는 여성들을 위해 정보기술(IT)을 활용하는 펨테크(femtech) 분야의 신생기업(스타트업)입니다. 세이브(saib)라는 사명은 세상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편견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bias를 뒤집었습니다.

이 업체는 독특한 제품을 만듭니다. 2018년 9월 처음 선보인 '세이브 프리미엄 콘돔'은 여성용 콘돔으로, 여성이 구입하고 사용하기 편한 제품이라고 소개합니다. 콘돔은 남성들이 사용하는 물건인줄 알았는데 여성용이라니 의아했습니다.

박 대표가 여성용 콘돔을 개발한 것은 2016년 한국소비자원에서 낸 조사 보고서 때문이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80% 이상의 콘돔에 니트로사민이라는 발암 물질이 들어 있어요. 또 합성 향료나 색소 등 유해 화학 물질이 첨가된 제품도 있죠. 이런 물질로 만든 콘돔이 여성의 몸 안으로 들어가요. 피부에 바르는 것보다 유해 물질 위험도가 42배 더 높아요. 따라서 유해 성분 없는 콘돔을 만드는 것이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죠."

세이브앤코에서 만든 여성용 콘돔 등 각종 제품들. 여성용 콘돔은 각종 국제 디자인상을 받았다. 세이브앤코 제공

우선 특이한 포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편의점이나 생활용품점에서 파는 콘돔의 대부분은 포장에 남성들을 자극하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세이브앤코의 콘돔은 납작한 은색 금속 상자에 들어 있습니다. 상자를 열면 분홍색 포장지에 들어 있어 콘돔처럼 보이지 않죠. 여성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특별한 포장을 고안했습니다.

덕분에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꺼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으면 콘돔인 줄 모르겠다", "디자인이 예쁘다"라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팸테크 스타트업 세이브앤코 사무실 풍경. 온통 분홍색이다. 박세인 인턴기자

서울 노량진로에 위치한 사무실 분위기도 남달랐습니다. 첫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습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대표의 미적 감각이 반영된 사무실은 온통 분홍색이었습니다. 직원들의 사무용품부터 의자, 시계, 연필꽂이, 액자, 심지어 휴지 상자까지 분홍색이죠. 회색빛이 가득한 여느 회사들과 달랐습니다.

분홍색 사무실 외에 특이한 풍경이 또 있습니다. 직원 5명 중 남자 직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여성을 위한 제품을 만들다 보니 여성 위주로 고용하고 있어요."

일부러 남성을 뽑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남성들도 지원을 합니다.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법에 따라 합리적 이유가 없는데 여자만 채용하면 불법입니다. 앞으로 고용을 더 많이 할 계획인데 남녀 성별을 떠나 회사 문화와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잘 맞는지 중요하게 보고 그런 사람들을 채용해요."

직원들은 모두 회사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합니다. "여성 건강을 위해 긍정적 변화를 주도하는 회사여서 여성 인권 신장이라는 공통된 목표 의식을 갖고 있어요.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회사를 알리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죠."

여성청결제와 여성 윤활제 등도 만들어 판매합니다. 그렇다 보니 제품 개발을 위해 보다 개방인 대화가 필요합니다. "여성 직원만 있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어요. 주변 지인들 반응이나 제품을 직접 사용해본 후기까지 이야기하다 보면 직원들의 성생활까지 알 수 있다는 농담도 해요." 그런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제품의 불편 사항을 개선하고 더 좋은 기능을 추가하는 노력을 하죠.

박지원 세이브앤코 대표는 "아직도 팸테크에 대한 편견을 갖고 악성 댓글을 쓰는 것을 보면 속상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세인 인턴기자.

다만 아직도 사회적 편견은 넘어야 할 산입니다. 위생용품을 만드는 기업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유통과 제조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콘돔이라면 "그런 물건 취급 안 한다"며 대뜸 거절부터 합니다. 직원들 역시 지인들에게 콘돔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부정적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네요.

펨테크를 표방하면서 악성 댓글도 많이 붙습니다. 댓글이야기를 하자 박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엄청나요. 제 인터뷰나 회사 기사가 나오면 댓글에 온갖 성희롱과 조롱이 가득해요. 처음에 너무 속상해서 댓글 창을 아예 열지 못했어요."

하지만 박 대표는 이 또한 감수해야 할 몫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포털의 기사 댓글 창에 닉네임과 댓글 이력이 공개되면서 악플이 많이 줄었죠. 기사를 통해 회사를 알리는 것은 스타트업 대표로서 악플을 감수하고 꼭 해야 할 일이죠."

다행인 것은 처음 사업을 시작한 2018년보다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보다 많이 달라졌어요. 여전히 포털사이트에 콘돔을 검색하면 성인인증을 해야 하는 등 바뀌어야 할 부분도 많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하나씩 바뀔 겁니다."

스타트업랩 H(박세인 인턴기자,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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