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 성장률 전망치 1.6%, 한은보다 낮아도 여전히 낙관적이다

세종=박소정 기자 2022. 12. 2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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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각각 1.7%, 1.8%인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치보다 낮다는 점을 은연중 강조했다. 정부가 한은보다 낮은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다는 사실은 모든 언론이 제목으로 뽑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내년 경제 상황을 냉철하고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 시장에선 되레 ‘낙관적’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한 달 일찍이 한은이 1.7%라는 전망치를 제시했을 때와 비교하면 0.1%포인트(P) 차이는 변화된 경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사이 목도한 우리의 경제 상황은 생각보다 더 악화했기 때문이다.

10월 전(全)산업 생산은 전월 대비 1.5%나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극심했던 2020년 4월 이후 30개월 만의 최대 감소 폭이었다. 수출도 곤두박질쳤다. 11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하며 두달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8개월째 멈출 줄 모르는 무역적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의 가장 긴 적자 행진이란 기록을 쓰게 됐다.

한 금융회사 소속 이코노미스트는 “11월 이후 경제지표 악화를 반영했다면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 초반 정도로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보다 엿새 늦은 27일 내년 경제 전망을 발표한 LG경영연구원의 성장률 전망치는 1.4%까지 내려왔다.

정부는 우리나라 내년도 경제 방향이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상반기에 수출·민생 등의 어려움이 집중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대외 여건이 개선돼 회복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시나리오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당국 관계자들이 거듭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근거는 금리 인상 영향 완화와 세계경제 및 반도체 경기 회복 기대감이 전부인데도, 그들의 발언은 왠지 ‘확언’처럼 느껴진다.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은 막연하게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금시장의 ‘블랙홀’이자 금융시장 위기의 근원인 한전채 발행 규모를 내년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전력의 구체적인 자구책과 요금 인상안이 나오기 전까진 실현 가능성이 의심쩍다. 한전채 발행량을 대폭 줄이는 대신 요금은 급격히 인상해야 할 텐데, 향후 4년에 걸쳐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로드맵은 굼뜨게만 느껴진다. 결국 국제 유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정부의 내년도 금융시장 안정 방안에 대해 혹자는 ‘6개월 정도 시간을 번 것’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상반기에 벌어준 시간 동안 크레딧 스프레드가 안정화되면 이후엔 시장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리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부실 사고가 터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리한 PF(프로젝트파이낸스) 사업을 벌인 건설사와 금융회사의 부실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 등 근본적 대책 없이 시간이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성장률 전망에 부동산 시장 경착륙 시나리오를 전제로 두지는 않았다”는 최고위급 당국자의 발언을 보면, 정부 전망치에는 부동산 가격의 추가 하락이 매우 제한적으로 반영된 것 같다. “국민에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게 현재 시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에, 해당 전망치에 정책(을 통한 부양) 효과는 반영돼 있지 않다”는 말이 빈말처럼 보인다.

말로는 여느 때보다 경제가 엄중하다면서, 실상 말의 근거는 빈약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려는 것만 같다. 1.6%란 숫자를 보고 새해에는 경제가 예상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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