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료 결정 정치권서 독립시켜야” 전문가 한목소리

김형욱 2022. 12. 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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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등 에너지시장 정상화 긴급토론회
한전 최악 적자 속 “현 체제 지속불가” 결론
소비자단체도 “어느 정도 인상 필요” 목소리
산업부 “개편 검토 중…내년 중 구체적 방안”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한국전력공사(015760)·한국가스공사(036460) 등 에너지 공기업이 최악 적자 위기를 맞은 가운데 이를 계기로 정부 통제 아래 있는 전기·가스요금 결정 구조를 정치권 의사결정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공기업 부실화를 막기 위해 에너지 요금 인상을 추진하는 중이지만, 현 가격결정 구조 아래에선 요금 현실화에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전력시장 다원화와 전기요금 결정 주체인 전기위원회의 독립·전문성 강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내년 중 이를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에너지 요금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해 2026년까지는 한전·가스공사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패널들이 27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열린 ‘에너지 시장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김영산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전영환 홍익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안정희 한국 YWCA 부장,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 과장, 최한수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장원재 라이스태드 한국지사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독립적 규제기관이 에너지요금 결정하는 체계 필요”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이데일리와 에너지전환포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이 27일 서울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연 ‘에너지시장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에서 “현 에너지 위기의 해법은 요금 정상화”라며 “결론은 간단하지만 실제론 번번이 제때 요금 정상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금 현실화가 늦어지는 사이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가스공사채 발행량이 늘며 채권·자본시장이 왜곡되고, 에너지 수요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요금을 결정하는 현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이 에너지 요금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전문·독립 규제기관을 만들어 정치적 압력을 안 받도록 한 후 장기적으론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한전과 가스공사가 정부 결정만 바라보고 정부는 괄과에 대한 책임이 없는 전문가에 의사결정을 미루는 현 상황은 결국 전 국민적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대폭 늘려야 하는 현 상황에서 송·배전망 건설을 도맡은 한전이 적자에 허덕이는 현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당장 급한 에너지 (비용) 위기 대응에만 치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이란 중장기 위기 요인도 함께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현 에너지 위기가 전력산업이라는 ‘아이’에게 닥친 ‘교통사고’라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DNC)를 위한 에너지 전환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심장병”이라고 비유하며 “전력시장 개방이라는 처방은 이미 나와 있는 만큼 ‘친권자’인 정치권이 교통사고 치료와 함께 심장병까지 함께 치료하는 대수술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유수 선임연구위원도 현 에너지 위기 상황은 앞으로 계속 반복할 수 있다며 정부 통제 아래 놓인 에너지 시장 개방으로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현 에너지 위기를 촉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화석연료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변동 폭이 커질 전망”이라며 “한전·가스공사가 독점하는 현 에너지 수급 체제를 유지하는 게 앞으론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낮은 수준의 요금을 고수하는 현 체제에서 벗어나 독립 규제기관이 전기료를 제때 반영하고 전력시장 개방을 통해 분산 에너지를 확대하고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는 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떨어진다면 정치권이 결정하지 못하더라도 소비자의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9월 30일 서울 시내의 한 오피스텔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사진=연합뉴스)
이날 토론회에선 소비자단체 관계자도 제한적으로나마 에너지 요금 현실화 필요성에 동조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안정희 한국YWCA연합회 부장은 “현 한전 적자와 한전채 발행은 결국 시한폭탄이 돼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어느 정도의 전기·가스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안 부장은 다만 이 과정에서 에너지 요금이 ‘시장재’ 성격을 띤 산업용 요금을 우선 원가 수준으로 올린 후 ‘공공재’ 성격의 가정용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정부가 이 과정에서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예산을 충분히 확충하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인센티브를 늘려 에너지 소비 효율을 함께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이 올 8월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청정에너지 전환과 소비자 에너지 효율 개선에 다양한 세액공제 혜택이 포함됐다”며 “우리도 에너지 요금 결정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는 것과 함께 이 같은 지원 방안을 추진해야 (요금 현실화라는) 정책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산업부 “내년 중 체계 개편 위한 구체적 방안 내놓을 것”

정부도 내년 중 전력시장 개편과 전기요금 결정 독립·전문성 강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강경택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은 “현 위기는 우리 전력산업 구조와 시장, 제도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온 문제점이 유럽발 에너지 위기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며 “산업부와 관계부처는 나름대로 이 문제를 더는 남겨놔선 안 된다는 상황 인식 아래 구조 개편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올 5월 출범과 함께 전력시장 개편과 요금·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전문성 강화로 경쟁시장 원칙의 전력시장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산업부는 이에 따라 전문기관에 연구 용역을 맡겨 놓은 상황이다. 연구 용역 결과는 내년 상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강 과장은 “일례로 모든 발전 자원이 계통한계가격(SMP)이란 하나의 시장에 들어와 변동성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 거래 (도매) 시장을 선도시장과 하루 전 시장, 실시간 시장 등으로 다원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당장 내년부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제주 지역부터 실시간 시장을 시범 운영하기 위해 관련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기료를 결정하는 전기위원회가 좀 더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질 수 있도록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내년 중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법 개정을 추진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당장 한전 적자와 가스공사의 미수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전기·가스료 현실화도 추진한다. 한전은 올해 34조원의 적자를 예상하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고강도 자구노력과 함께 1킬로와트시(㎾h)당 51.6원의 추가 전기료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요금이 약 120원이란 걸 고려하면 약 43%의 인상이다. 강 과장은 “요금 인상이 경제에 끼칠 충격을 고려하면 앞으로 1~2년 내 이를 당장 해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다만, 2024년까지는 (한전에)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 수준, 2026년까지는 지금껏 쌓여 온 누적 적자를 해소해 2027년엔 한전을 대규모 적자 이전 상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오는 30일께 내년도 전기료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폭과 시점을 발표한다. 한전은 51.6㎾h 인상안을 정부에 승인 요청한 가운데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의 협의 아래 이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강 과장은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인상 계획을 발표할 순 없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정부가 어떤 계획을 갖고 내년 요금을 조정하고 누적 적자를 해소할 계획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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