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벌집' 김신록 "'지옥' 박정자인 줄 몰랐다 반응 좋아"

황소영 기자 2022. 12. 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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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재벌집 막내아들' 진화영이 곧 김신록이었다.

배우 김신록(41)이 인생 캐릭터 경신에 성공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에서 박정자 캐릭터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며 제58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던 그는 JTBC 금토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진화영으로 180도 다른 연기 변신을 꾀했다. 탄탄하게 다져진 연기력으로 믿고 보는 배우 면모를 입증했다. 진화영이라는 사람이 가진 욕망, 그걸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 집중해 열연을 펼쳤고 이는 시청자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공감을 이끄는 연기로 강렬한 인상과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국 기준 26.9%(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30.1%로 올해 최고의 미니시리즈 성적을 거두는데 한 축을 담당했다.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2위로 끝났다.

"대본이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좋은 배우들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접했고, 현장에서도 공들여서 찍어 잘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도 잘 되어서 기분이 좋고 신기하고 그렇다. 지난 8월에 모든 촬영이 끝났다. 방송이 됐을 때는 촬영할 때는 아니라서 배우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랬다."

-진화영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정했나.

"아버지, 오빠들 그리고 남편 사이에서 자기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스스로는 정당하다고, 내가 가지는 것이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있으면 주지 않으니까 얻어내기 위해 악을 쓰고 울고 애교 부리고 매달리고 가진 전략을 구사하는 서바이벌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어떤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나.

"시청자분들이 미워할 수 없다, 밉지 않다는 표현을 해줘 좋았다. 과거 욕구와 욕망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봤는데 욕구는 하고 싶은 마음, 욕망은 부족하다고 느껴서 더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더라. 진화영은 욕망에 가깝다. 무언가 결핍되고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그걸 성취하기 위해,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나.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정서라 시청자들이 공감한 것 같다. '지옥'의 박정자인 줄 몰랐다는 그 반응이 가장 좋다. 진짜 '지옥'과 비교하면 극적인 신분 급상승이었다."

-최창제 시장 역의 배우 김도현과의 호흡은 어땠나.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하는 신이 많았다. 정보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관계성을 어떻게 보여줄까 둘이 고민하다가 어부바를 하거나 다리를 주물러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관계를 선명하게 만들고자 했다. 1회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신에서 남편이 핸드백을 들고 따라온다고 쓰여 있었다.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서 항상 핸드백을 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후반에 전세가 역전되고선 내가 든다. 핸드백을 이용해 관계의 변화를 표현하고자 했다."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이해인에게 피팅 모델을 시킨 장면이다. (웃음) '주제넘게 굴지 마!' 이 대사도 정말 좋아하는데 그전까지는 도준이가 아웃파이터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면서 서서히 옭아매지 않나. 그런데 그 신에서 처음으로 다이렉트 하게 도준이에게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분수 지키라고 똑바로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신을 찍을 때 짜릿하고 시원했다. 진도준이 할 수 있는 리액션이 대본상으로 많지 않았다. 근데 그걸 송중기 씨가 단단하게 받아내더라. 덕분에 신의 밀도가 잘 살았던 것 같다. '괜히 주연 배우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김신록
-스타일링도 화제였다.

"20%는 드라마 팀에서, 80%는 저와 스타일리스트가 협의하며 스타일링을 해갔다. 보통 일반 재벌집에서 보는 명품 옷보다 백화점 사장인 진화영은 입점 업체를 직접 선정하거나 공간을 디스플레이하거나 관여를 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의 브랜드나 이제 막 떠오르는 스트리트 브랜드를 스타일링에 믹스 매치하곤 했다. 메이크업은 특정인을 의도한 건 아니고 감독님과 테스트 촬영을 했는데 감독님이 강렬한 느낌을 원해서 강렬한 아이라인이나 셰도우를 추구했다. 드라마 분장팀 실장님 덕분에 시대 고증의 느낌이 살 수 있었다."

-어떤 점에 집중해 연기했나.

"욕망이 큰 캐릭터니까 결핍과 원하는 것 사이의 진폭을 보여줄 수 있도록 역동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연기적으로 소리, 움직임, 감정의 폭 같은 걸 설계했다. 사실 도장 찍으며 '잉' 우는 신이 있는데 그건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는 상황에 차마 손이 안 뻗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송중기 씨가 코앞에 인주를 가져다 대는 건 어떠냐고 했고 그런 상황에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 같은 리액션이 나왔다."

-촬영하며 어려웠던 점은.

"1년을 찍었기 때문에 띄엄띄엄 찍어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았다. 연결되는 신인데 한 달 정도 텀을 두고 찍는 경우도 있어서 감정선 유지가 쉽지 않았다."

-연기할 때도 재밌다고 느낀 장면이 있나.

"사실 엘리베이터 타고 이어폰 끼는 장면은 공간이 엘리베이터가 아니었지만 작가님이 시위하는 군중 사이를 뚫고 이어폰 꽂는 신을 써줬는데 절묘하게 잘 썼다고 생각했다. 도준이가 절 찾아왔을 때 '저렇게 사니까 여태 저 모양이다, 지긋지긋한 인간들'이라고 하는데 그 대사도 잔인하게 잘 써준 것 같다. 뼛속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기 결핍은 크게 느끼면서 상대의 결핍, 살아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결핍에 대해선 이토록 잔인하고 무방한 사람이란 걸 신랄하게 보여준 느낌이다."

-2000년대 배경이었는데 추억을 떠올릴 만한 사건이 있나.

"저도 2002년에 대학생이었다. 월드컵 때 광화문 나가서 월드컵 응원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를 보면 굵직한 현대사 사건들이 중간중간 영상 자료로 다큐멘터리식으로 등장하지 않나. 그러니까 즉각적으로 그 시대를 떠올리게 되더라. 아마 그 시대를 거쳐간 전 연령대 사람들이 드라마를 재밌게 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만약 회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댓글 중 제일 재밌던 게 현대사 너무 몰라서 돌아가도 할 게 없다는 댓글이었다.(웃음) 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은 때가 전혀 없다. 다만 분당 땅을 샀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선배 이성민과의 연기는 어땠나.

"진양철 회장님과 1대 1로 연기한 건 딱 한 장면이었는데, 1400억을 빌려달라고 바짓가락을 붙잡는 장면이었다. 이성민 선배가 가진 밀도, 에너지, 진실감 같은 것들이 그 신을 함께하는 내게도 영향을 미쳐서 처음에 계획하고 갔던 것보다 더 믿음직하게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성민 선배와 함께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나 싶다."
김신록

-오빠들과의 장면도 많이 기억에 남는다.

"오빠들이 다 못 됐다. 첫째 영기 오빠는 날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늘 서운하게 하고 둘째 동기 오빠는 얄미우면서도 티키타카가 재밌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찍었다. 난 오빠가 없다. 딸만 넷 있는 집 둘째다. 리허설할 때 진양철 회장과 오빠들이 걸어가면 따라가면서 최 서방 좀 잘 봐달라고 하지 않나. 오빠들이 날 밀치고 지나간다. 이런 관계겠구나,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악을 쓰고 가진 수단과 방법을 동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겠다 싶었다. 촬영 초반이었는데 그때 확 진화영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순간이었다."

-주변 가족들의 반응은.

"첫 방송 후 조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윤현우를 누가 죽였냐'라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귀엽지 않나. '지옥'도 반응이 좋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경우 친구의 어머니, 아버님들이 더 크게 반응해 줬다. 금토일 밤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서 함께 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 박경찬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과감하게 연기한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했다. 김도현 배우의 연기를 본 남편이 맛깔스럽고 디테일하게 잘 살려줬다고 저런 디테일한 부분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실제 남편과도 그런 티키타카가 잘 된다. 남편도 배우니까 제안 들어온 대본들을 같이 읽어보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장면 아이디어도 얻곤 한다. 진화영을 연기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부부 관계에서 느끼는 복잡 미묘함 다양한 관계들은 남편과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게 많다."

-주 3회 편성이었다.

"금토일 편성이 너무 좋은 것 같다. 16부작 드라마를 본방사수 해봤는데 요새 워낙 시간성이 빨라져서 그런지 일주일을 기다리기가 힘들다. OTT 올라오는 걸 미뤄놓고 기다렸다고 보곤 하는데 금토일 3일을 하니 본 방송을 기다릴만하더라."

-해외 반응을 체감하고 있나.

"'지옥'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보니 순위나 해외에서 얼마큼 구독자가 유입되는지 지표에 대한 피드백이 왔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국내 팬들이 좋아하고 지표상으로 몇 십 개국에서 1위란 지표를 봤다. '진짜 글로벌한 세상이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지옥'은 내 인생의 2막을 열어준 작품이었다. 갓 마흔을 넘기도 했고 영상 매체에서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았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배우로서 계속 변신을 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심어준 작품이다."

-무대와 매체 연기의 틀이 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다.

"콘텐트 숫자가 일단 많아지면서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섞이고 있는 것 같다. 연극 쪽에서 영상 매체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영상 매체 하는 분들이 연극 무대로 넘어가고 가수들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이것 자체가 업계에도 활력을 주는 것 같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도 신선함을 주는 것 같아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달라진 일상을 느끼고 있나.

"어느 날 전철 타고 가는데 사람들이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그래서 인기를 실감했다. 평소에 전철, 버스를 탄다. 화장을 지우니까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다만 촬영하는 날수가 많아졌고 개인적으로 어떤 컨디션을 유지하거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루틴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역발상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두 시간 전 일어나서 미리 계획하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게 제게 달라진 점이다."

-촬영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하나.

"촬영 없을 때 주로 쉬고 책 보고 공부를 한다. 요샌 연기에 대해 다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에서 연기 공부하며 봤던 책들을 다시 보려고 꺼내놨다.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보려고 한다. 작품의 세계관과 연결된 책을 읽으면 연기할 때 도움도 되어서 관련 책을 읽거나 철학 공부를 하고 있다. 주식, 코인, NFT 체험도 해보고자 해서 조금씩 다 해보고 있다. 근데 다 망했다. 소멸 직전이다."

-연기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원형으로 돌아가서 하는 걸 좋아한다.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서사는 흘러가지만 근본적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가 무엇인가, 마음속 코어는 무엇인가 찾아보려고 하는 편이다. 진화영을 만났을 때도 현실적인 전사를 쓴다기보다 그 안에 있는 코어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김신록은 어떤 사람인가.

"나 역시 진화영처럼 역동적인 사람이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움직이고 부딪치는 사람이다. 욕망이란 말에 부정적인 느낌이 따라오지 않나. 부정적이지 않은 걸로 원한다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순수하게 원한다는 마음을 가지고자 생각했다."

-내년 계획은.

"지금 찍고 있는 작품들을 계속 잘 찍어서 잘 마무리를 하는 게 목표다. 연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별로 없고 좋은 작품에서 내가 마음이 가는 역할을 만나 재밌고 어렵게 연기를 해내고 싶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저스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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