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이 그린 ‘안전한 통학길’, 메타버스에서 현실로 구현[현장에서]
“아파트 앞 신호등 녹색 점멸 시간이 짧음.” “광희중학교 앞차가 많이 다니는데 신호등이 없어서 위험.” “초록길 경사가 심하고 좁음.” “중랑천 자전거길이 험하고 어른들이 너무 쌩쌩 다님.”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접속해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게임을 마친 서울 성동구 응봉초 학생들이 최근 적어낸 의견들이다. 좁은 보도, 오르막길, 오토바이가 지나는 골목길…. 실제 지형을 기반으로 구현된 메타버스 통학로를 지나며 응봉초 4·5학년 12개반, 학생 259명은 평소 느꼈던 등하굣길의 위험한 구역을 실제 지도에 표시했다.
아파트 단지 앞 초·중학교 2곳이 위치해 보행량이 많은 응봉초 앞은 길이 좁아 골목길 입구와 교차로 등에서 사람과 차가 뒤엉키는 일이 잦다. 언덕이 이어져 차량 접근을 늦게 발견하는 사각지대도 있다.
지난 26일 오후 찾은 응봉초 하굣길은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인도 분리대와 차로 곳곳에 어린이 보호구역 안내가 붙었고, 옐로우카펫과 교통안전지킴이가 건널목을 지켰다.
2019년 이른바 ‘민식이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제정 전후로 초등학교 주변 통학로 안전장치는 강화되는 추세다. 성동구도 2018~2020년 관내 21개 초등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학부모·교직원·상인 등 참여 논의(리빙랩)를 진행했다. 교통안전지도사가 초등학교 1~3학년생과 함께 등하굣길을 걷는 ‘워킹스쿨버스’도 8년째 운행 중이다.
이대로 충분할까. 성동구는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에게 자문해보기로 했다. 매일 등하굣길을 오가는 당사자, 응봉초 학생들에게 직접 물은 것이다. 성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닌 상황이 학생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학교 앞에서 만난 4학년 전연수양은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위험하지만, 눈이 오고 기온이 떨어져 학교까지 오는 지름길 계단이 얼어 미끄러운 것이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통학로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10대들에게 친근한 메타버스(로블록스)다. 성동구와 학교가 사회 교과 과정(사회문제 해결)에 맞춰 4~5학년 전 학급의 정규 수업(3회)을 꾸렸다. 지난 9월 진행된 수업에서 학생들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을 지도에 표시하고 해결책을 궁리했다.
구청은 발굴된 항목을 취합해 ‘신호등 시간 연장’ ‘보행자 수동 작동 신호등 설치 필요’ ‘인도 확장’ 등 구역별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응봉초 옆 응봉개나리공원으로 가는 폭 4~5m 이면도로는 언덕에서 내려와 샛길로 빠지는 차들이 오갔다. 세 갈래 길이 만나는 작은 교차로. 바닥에서 경보등 불빛이 점멸되더니 ‘차가 접근하고 있으니 주의를 확인하라’는 안내가 나온다. 지능형 폐쇄회로(CC)TV가 골목에 접근하는 차량은 인지해 바닥 경보등과 스피커 경고를 작동한 것이다.
응봉산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골목에 들어서자 전봇대 위 반사경 테두리가 번쩍인다. 전방의 사각지대에 차가 진입하면 이를 인지해 경고하는 스마트 반사경이다. 골목길에 설치된 이 같은 안전장치도 메타버스에서 많이 지적된 구역에 마련된 것이라고 성동구는 설명했다.
메타버스에서 광희중 앞 신호등을 제안했던 4학년 표한솔 학생의 어머니 정현화씨는 “책으로 배우는 학습뿐 아니라 실제 통학로를 개선해 정책화하는 의미 있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조은아 학부모회장은 “교과와 연계해 자신의 지역사회를 둘러보는 기회가 됐다”며 “통학길 위험한 구역은 한 번 더 인지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최근 학교 주변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워킹스쿨버스 등으로 등하굣길 안전을 지원하는 한편 기술을 활용한 교통안전 시설물도 추가로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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