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구석방엔 시진핑 책 수십권이… ‘비밀경찰서’ 의혹 中식당 가보니

김소정 기자 2022. 12. 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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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비밀경찰서’ 의혹 중식당, 25일 방문 르포]
총 3층 규모 식당, 2층만 운영...손님은 기자 빼고 단 3팀
직원도 손님도 모두 중국인…한국어 소통 안 돼
주방서 사복입고 조리하다 나와서 주문 받아
요리도 메뉴판과 다르게 제공
도어락 설치된 룸엔 시진핑 통치 선전 서적 빼곡
식당측 “비밀경찰서 의혹 사실 아냐”

‘중국 공안 당국이 반체제 인사 탄압을 위해 최소 53국에서 102곳 이상의 비밀경찰서를 운영한다’는 폭로가 최근 스페인의 한 인권단체로부터 나왔다. 해당 단체는 2017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선언한 것을 신호탄으로 세계 곳곳에 비밀경찰서를 집중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 정부도 실태 파악에 착수했고,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이 지목됐다. 2017년 12월 3층 규모로 개업한 뒤, 수년째 억(億) 단위 적자를 보면서도 계속 영업을 하는 점 등을 수상하게 본다는 것이다.

조선닷컴이 크리스마스 저녁, 그 중식당에 손님으로 찾아가 내부를 살펴보고 식사를 해봤다.

종업원들은 사복 차림이었고, 주방 요리사팀들도 마찬가지였다. 매니저 1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5명 종업원은 접객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한국어 구사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요리의 질(質)도 낮았다. 자장면이 떡처럼 뭉쳐져 나왔고, 전자레인지에 돌린 듯 접시 바닥에 깔린 요리가 차가운 경우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대목이었지만 내부엔 기자를 제외한 손님이 3팀 뿐이었고, 모두 중국인으로 추정됐다. 식당 내부 특정 공간에선 ‘시진핑 통치 철학 선전 서적’이 가득 쌓여있었다.

중국 대사관은 “이른바 ‘해외경찰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고 있다.

◇조명 꺼진 1·3층… 2층 룸에만 손님을 받았다

12월25일 크리스마스 오후 4시57분. 기자는 한국 내 ‘중국 비밀 경찰서’라는 의혹이 불거진 서울 강남권 A중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2시간 뒤에 저녁 예약 가능한가요?”

“네. 오세요”

크리스마스 인파가 북적이는 잠실역을 거쳐 오후 6시50분, 강남권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흉흉한 분위기였다. 한강공원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바로 그곳에 ‘A중식당’은 세워져 있었다.

중국의 '비밀 경찰서'로 지목된 서울 송파구 중식당/김소정 기자

식당 건물 2층 외벽에 ‘Merry Christmas!’라는 전광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식당 1층은 출입구 주변에만 전등이 켜져 있을 뿐, 나머지 홀은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불켜진 출입구에도 보통의 식당처럼 맞아주는 종업원이 없었다. ‘알아서 들어오라’는 식이었다.

출입구를 통해 입장했지만, 여전히 종업원은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 주방이 보였다. 조리복은커녕 앞치마도 입지 않은 여직원 3명이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5분가량 기다렸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기요”라고 하니, 2층에서 롱패딩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내려왔다.

(왼쪽부터) 영업 중이나 불 꺼진 A중식당 입구, 손님 없는 1층 홀/김소정 기자

이 직원은 능숙한 한국말로 “오늘 1층은 운영 안 합니다”라며 2층 룸으로 안내했다. 이날 만난, 한국어가 가능한 유일한 직원이었고, 매니저라고 했다.

2층엔 룸이 4개였다. 한강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었다. 기자는 203호에 배정됐고, 이미 201호, 202호, 204호에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3층 연회장 역시 불이 꺼져 있었다.

A중식당 2층 복도 모습/김소정 기자

손님 연령대는 대부분 중년층이었다. 201호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들이 있었는데, 식사 중간에 노래방 기계로 한국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한 남성 손님은 방송인 박명수씨의 ‘바다의 왕자’를 서툰 한국어로 열창했다. 중국인인 것 같았다.

식당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수선했다. 룸에는 직원을 부를 수 있는 ‘벨’이 없어, 직접 문을 열고 나가 직원을 불러야 했다.

그랬더니 방금까지 1층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던 여성이 올라왔다.

그에게 “예약한 코스 요리 달라”고 요청했더니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뒤이어 들어온 다른 종업원도 마찬가지였다. 종업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아까의 그 매니저를 불렀다.

A중식당 203호/김소정 기자

식당에서 본 직원수는 총 6명으로 나이대는 20~30대였으며 모두 사복 차림이었다. 심지어 한 여직원의 외투는 기자가 있던 203호 의자에 걸려 있었다. ‘비밀 경찰서’ 의혹을 몰랐던 일행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식당 내부와 중국인 직원들을 본 뒤 “‘중국 패키지’ 여행을 온 것 같다”며 설레어 했다.

◇시키지도 않은 요리, 절반은 차가운 상태로…

이날 주문한 메뉴는 이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5만8000원짜리 코스 요리였다. 10여가지의 중국 요리와 베이징덕, 후식 등이 나오는데, 블로거들은 이 코스를 두고 “그나마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를 남겼다.

음식이 나오기 앞서 콜라 2개를 주문했다. 그랬더니 한국말이 서툰 다른 남직원이 콜라 1개와 사이다 2개를 가져오며 “콜라가 1개뿐이라, 1개는 사이다로 드려도 되겠냐. 1개는 서비스다”라고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 큰 식당에 콜라가 1개뿐이냐”고 웃자, 이 직원도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은 뒤 방을 나갔다.

코스 요리는 순서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나왔다. 메뉴판을 보면, 분명 전채요리로는 사품냉채와 삼선수프가 나와야 하는데 메인요리인 유산슬, 생선, 편육, 호박 푸딩이 처음부터 한 번에 등장했다. 이어 곧바로 파인애플 탕수육, 깐쇼새우, 야채볶음, 베이징덕이 나왔다.

기자가 “수프는 안 나오냐”고 물었으나 직원들은 웃기만 했다. 말이 안 통해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A중식당 5만8000원짜리 코스요리에 나온 음식들. 메뉴판과 상관없이 요리들이 제멋대로 나왔다. 전채요리인 냉채와 수프는 제공되지 않고 (왼쪽 상단부터) 생선 요리, 편육, 탕수육, 유린기, 야채볶음, 깐쇼새우, 베이징덕, 굴 요리가 순서대로 나왔다./김소정 기자

심지어 ‘메인요리’조차 메뉴판과 달랐다. 분명 팔보채, 매콤맛가리비볶음, 중식가지볶음, 햄피클볶음이 제공된다 적혀 있었지만, 그 대신 익힌 굴과 유린기가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후식인 과일이 나왔고,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장면과 짬뽕이 나오며 식사가 마무리됐다.

맛은 온라인 리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악평을 받았던 자장면은 후기대로 탱탱 불어 양념과 잘 비벼지지도 않았다. 탕수육과 편육에는 고기 비린내가 났다. 유린기는 온도가 제각각이었다. 위쪽에 있는 닭고기는 따뜻했으나 밑에 깔린 닭고기는 차가워 씹을 수도 없었다. 유일하게 다 먹은 메뉴는 굴과 깐쇼새우였다. 깐쇼새우는 학교 앞에서 먹던 불량식품이 떠올랐다. 케찹과 설탕의 맛이 강했다.

(왼쪽)식사 보다 먼저 나온 후식 과일, 오른쪽은 퉁퉁 불은 자장면/김소정 기자

식사 후 기자는 직원에게 “요리가 왜 제멋대로 나오냐”고 물었다. 직원은 “최근에 셰프가 바뀌어서 그렇다”고 민망해했다. “수프는 왜 안 나오고 메인요리부터 나왔냐”고 하자, “수프가 안 나왔냐?”고 되물으며 “미안하다. 음식값을 할인해주겠다”고 했다. “직원들이 아예 소통이 안 돼 불편했다”고 하자 직원은 “우리 식당이 중국 오리지널리티라 그렇다. 이해해달라. 그래서 중국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이날 기자가 A중식당에서 결제한 금액은 5만8000원짜리 코스요리 4인 가격인 23만2000원+백주(百酒) 장군왕 2병 13만6000원+베이징덕 서비스 비용 1만원을 포함해 총 37만8000원이었다.

◇ 2층 구석 의문의 방… 거기엔 시진핑 이념 선전 서적 가득

A중식당 2층 사무실로 추정되는 방 입구에 걸린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 ‘한화중국화평통일촉진회’ ‘중국재한교민협회’ 명패/김소정 기자

A중식당 2층 룸에서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호(號) 수가 적히지 않은 방이 하나 있었다. 도어록이 설치된 방 입구에는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 ‘한화중국화평통일촉진회’ ‘중국재한교민협회’ 명패가 붙어 있었다. 이 식당의 실소유자인 중국 국적의 왕모(44)씨는 이들 단체에서 ‘회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도어록이 풀려 있어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A중식당 2층 사무실 내부 모습. 왕씨와 중국 인사들의 기념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김소정 기자

방 내부는 중국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고풍스러운 테이블 위에는 중국 전통 다기(茶器)가 올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노래방 기계도 있었다. 벽면은 왕씨가 중국 안팎의 여러 고위급 인사들과 찍은 사진들로 가득찼다.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2018년·2019년에 열린 세계한인의날 행사장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왕씨가 악수하고 있는 사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찍은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벽면에는 2018년·2019년 세계한인의날 행사장에서 왕씨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기념사진도 걸려 있었다./김소정 기자

한쪽 벽에는 시진핑 주석의 통치를 선전하는 책 ‘시진핑 국정 운영을 말하다 3부(Xi Jin Ping, The governance of China III)’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수십여권 쌓여있었다.

책장에 꽂힌 해당 서적 ‘3부’는 시 주석의 2017년 10월18일~2020년 1월13일 사이 주요 발언과 서면 지시 등을 담은 책이다. 2017년 10월18일은 스페인의 인권단체가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설치의 배경’으로 지목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시작된 날이다.

바로 그 대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시 주석의 집권이념을 수정된 당정에 삽입했다.

실내에는 태극기와 오성홍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국내 정치인도 있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김 의원은 2020년 11월 A중식당에서 열린 ‘코로나 시대 한중 문화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했는데, 시 주석 책 앞에서 왕씨와 찍은 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A중식당 2층 사무실 한쪽에는 시진핑 주석의 자서전 수십여권이 전시돼 있었다. 그 앞에는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김소정 기자

◇ A중식당 직원 “비밀 경찰서도 아니고, 폐업도 안 한다”

식사를 마친 뒤 기자는 신분을 밝힌 뒤, A중식당 직원에게 비밀 경찰서 의혹에 대해 물었다. 직원은 한숨을 푹 쉬며 “정말 아니다. 왜 그런 기사가 나간지 모르겠는데 우리 직원들은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그 기사 때문에 연말에 잡혔던 단체 손님 예약이 다 끊어졌다. 오늘도 봐라. 크리스마스인데 손님이 없지 않냐”고 했다.

12월31일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관계자발 보도엔 “사실이 아니다”라며 손사레를 쳤다. 홈페이지에 1월1일부터 1월31일까지 인테리어 공사로 임시 휴무하겠다고 공지한 것에 대해선 “그건 맞다”며 “2월부터는 정상 영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2층 의문의 방에 대해 “귀빈을 모실 때 쓰는 룸이다. 그곳에서 식사도 한다” 설명했다. ‘도어록은 왜 있는 거냐’는 질문에 “저 안에 있는 그림 하나가 3억원이 넘는다”며 보안을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A중식당 3층 연회장 올라가는 계단. 3층 연회장은 불이 꺼져 있었다./김소정 기자

이어 다른 질문을 하려하자, 직원은 말을 끊은 뒤 “일단 우리 회장님에게 기자가 왔다고 말해야 한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뒤 “지금부터는 어떤 답변도 할 수 없다. 미안하다”며 “궁금한 게 있으면 우리 회장님에게 연락해봐라”고 했다. 27일 조선닷컴은 왕씨에게 ‘비밀 경찰서’ 의혹에 대해 묻기 위해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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