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보이지 않는 ‘보증보험 미가입’ 세입자들…낙찰돼도 원치 않는 ‘유주택자’ 된다

김동환 2022. 12. 27. 15: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서 ‘피해 임차인 기자회견’
HUG 보증보험 미가입자 등 또 다른 세입자들 나서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이른바 '빌라왕' 김모씨 사건의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오전 세종시에 있는 한 공유오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상황 및 요청사항 등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이른바 ‘빌라왕’ 김모씨(사망)의 전세 사기 피해로 속앓이하던 피해 임차인들, 그중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 미가입자 등이 용기를 내 마이크 앞에 섰다. 구제받을 길이 안개 속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형국이어서 답답한 마음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은 피해 구제 대책을 정부에 직접 요구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HUG의 대응책 설명회에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한 피해 세입자들이 참석해 설명을 들었지만, 우선은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였던 이유로 이 자리에 보험 미가입자 등은 초청받지 못했었다.

어디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미가입자와 일부 보증보험 가입자 등은 전전긍긍 끝에 별도 자리를 마련하고 나서야 답답한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드러낼 수 있었다.

27일 오전 11시부터 정부세종청사 인근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열린 ‘전세사기 임대인 사망 사건 피해 임차인 기자회견’에서 미가입자를 비롯한 또 다른 피해 세입자들은 적극적인 피해 구제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김씨가 보유한 주택(1139채) 세입자 중 HUG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보험 가입자는 614명으로 절반을 조금 넘는다. 나머지는 미가입자다.

보험에 가입한 피해 세입자는 임대인의 사망으로 이행청구까지 상속대위등기를 발급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HUG를 통해 대위변제 받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보험 미가입자는 직접 경매를 통해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기자회견 자료에 따르면 보험 미가입 세입자들은 경매에서 거주 중인 집을 직접 낙찰 받는 게 조금이나마 피해를 복구할 길이다. 하지만 김씨의 사망으로 경매 개시까지도 최소 1년6개월에서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향후 경매에서 집을 낙찰 받아도 해결해야 하는 여러 문제가 있다.

우선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피해 세입자들이 집을 낙찰 받으면, ‘생애 최초 주택구입 혜택 상실’이라는 결과가 따라올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경·공매로 집을 낙찰 받아 ‘유주택자’가 되면 향후 주택 청약 시 생애최초 특별공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거다. 전셋집을 디딤돌 삼아 내 집 마련의 꿈을 꿨던 피해 세입자들은 악성 임대인 등의 범죄 때문에 경매를 거쳐야 하고, 낙찰 시 원치 않는 유주택자가 된다.

이에 미가입 피해 세입자들은 경·공매로 임차 중인 부동산을 낙찰 받을 시 일정 기간 안에 해당 주택을 처분하면, 임차인의 생애 최초 주택구입 자격을 계속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공매 시 임차인의 확정일자 후 법정기일이 성립한 ‘당해세’ 배분 예정액을 세입자 보증금에 배분하도록 개선한다던 기획재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의 소급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지난 23일 경·공매 시 체납된 세금보다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국세징수법 개정안 등을 처리했지만, 법안의 소급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적용 시점을 매각기일 등으로 설정하고 법 취지에 맞게 피해자가 당해세로 인한 추가 부담을 떠안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가 제기된다.

만약 소급되지 않을 경우 임차인 1명 당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4000만원 가량의 추가 손실이 날 수 있다고 보험 미가입 세입자들은 주장한다.

이와 별개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상가시설을 불법 증축한 근린시설이 주택이라는 말에 속아 계약한 피해자, 김씨가 임대인 보증보험을 전세보증금 전액이 아닌 일부만 보증되는 상품으로 가입한 사례의 피해자들도 있어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피해 세입자들은 “대량의 주택을 갭투자로 매입한 전세사기 가해자가 사망한 사례를 추가로 알게 됐다”며 “전세사기 임대인 사망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비단 우리 문제가 아니다. 피해 임차인들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특히 “전세자금 대출도 은행마다 태도가 달라 일부는 대출 연장을 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해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며 “정부는 피해자들과 소통하고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라”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악성경제 사범에 대한 검찰의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 ▲임차인 상대 악성임대인 보유 주택 공지 의무화 법안 제정 ▲주택 매입 사전심의 강화 ▲피해자 전세자금 대출 연장 등을 요구했다.

세종=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