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의 황당 결말로 인해 새삼 돋보인 '약한 영웅'의 각색 능력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웹 콘텐츠 특유의 속도감 있고 흥미로운 전개와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드라마의 강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과장된 캐릭터 중심의 웹 콘텐츠를 드라마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 드라마는 살아 있는 배우가 연기하며, 시청자는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웹 콘텐츠 각색에서 사람의 이야기와 사람의 고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와 웨이브 <약한 영웅>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각색됐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드라마의 성공과 별개로 각색 때문에 설왕설래가 오가는 작품이다. 일단 워낙에 원작 진도준(송중기)이 월드클래스 기업 접수의 달인으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각색되면서 드라마의 스케일이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작의 진도준은 윤현우 시절의 가난한 집에 마음 아파하는 존재도 아니다. 하지만 낡은 감성이라도 진도준이 원래 가족에게 지닌 안타까운 감정들은 의미가 있다. 빤하긴 하지만 시청자가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 특유의 '못된 놈이지만 알고 보면 착한 놈' 설정은 시청률을 위한 안전한 카드다.
다만 원작의 진도준과 드라마 진도준 사이의 괴리는 방영 내내 이어졌다. 그 때문에 두 영역에서 진도준이 급격하게 성격이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억지로 들어간 진도준과 서민영(신현빈)의 로맨스 역시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재벌집 막내아들> 정도의 재미가 있는 드라마라면 과감하게 상투적인 로맨스쯤은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게다가 몇몇 조연들을 통해 보여주는 추억팔이 코미디도 그리 웃기지는 않았다.
반면 순양가의 각색은 성공적이었다. 순양가 사람들을 조금 정리하고, 남은 인물들의 성격을 드라마적으로 부각시킨 게 효과가 컸다. 여기에 진양철(이성민)이 경상도사투리를 쓰는 지역색을 드러내면서 보수적인 재벌가의 현실적인 회장으로 생생하게 부활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대성공에는 이 진양철을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부각시킨 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원작이 지닌 재미를 막판에 교훈극으로 뒤집으면서 시청자의 원성을 샀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는 윤현우의 부활과 재벌가의 위선을 꼬집는 전개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간 회귀한 진도준의 성공에 박수를 보낸 시청자들에게는 김빠지는 전개였다. 아무리 포장한들 'X발'꿈으로 다가오는 결말이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다. 윤현우가 진도준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그 기억을 잃은 이유를 어설프게 넘긴 이유 역시 치명적인 약점으로 다가왔다. 감동도 없고 논리도 없고 시즌2에 대한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만든 결말이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시청자가 원하는 건 닳고 닳은 재벌 세습 비판이 아니었다. 재벌가 판타지 위를 신나게 뛰어노는 평범한 주인공의 역동적인 서사였다. 어쩌면 결말이 이렇게 된 건 현실 판타지의 주인공은 판타지 아닌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리얼리티 강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메타버스와 SNS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재벌집 막내아들>은 진도준이 현실의 윤현우로 돌아오지 않아도 충분히 각색의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다. 어차피 회귀된 진도준이나 SNS 속 성공한 인플루언서나 현실인 동시에 판타지 아닌가?
한편 <약한 영웅 Class.1>은 원작 웹툰보다 드라마적 리얼리티를 잘 살린 각색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원작의 웹툰이 예쁘장하고 공부도 잘하는 연시은(박지훈)과 일진들의 고등학교 '짱'먹기 싸움의 빠른 전개라면, <약한 영웅 Class.1>은 이 과정의 속도감은 살리고 영화 <파수꾼>같은 소년들끼리의 우정과 오해의 서사도 적절하게 녹여 넣는다. 또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10대의 문제는 물론 사회적 계급의 문제에 대한 통찰도 보여줬다.
이렇게 잘 각색된 드라마 안에서 배우 박지훈의 감정 없는 무표정한 감정 연기가 돋보이면서 <약한 영웅 Class.1> 원작 각색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물론 원작 웹툰의 은장고가 배경이 아닌 프리퀄의 성격의 이야기라서 좀 더 자유로운 각색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약한 영웅 Class.1> 각색은 <재벌집 막내아들>의 <파리의 연인>스러운 황당한 결말과 대비되면서 원작의 캐릭터도 살리고 드라마의 완성도까지 살린 좋은 예로 남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웨이브]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웅’을 압도적 역작으로 만든 윤제균 감독의 몇 가지 기막힌 선택 - 엔터미디어
- 거침없던 ‘재벌집 막내아들’ 작가님, 대체 왜 그러셨어요? - 엔터미디어
- 아직도 이효리 브랜드를 의심하는 사람 있습니까? - 엔터미디어
- 유재석과 ‘놀면’ 제작진이 봉인 해제된 기안84에게 배워야 할 것 - 엔터미디어
- 이들의 지식 수다는 어째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걸까(‘알쓸인잡’) - 엔터미디어
- ‘아바타2’에 대응하는 귀염뽀짝 ‘젠틀맨’ 주지훈의 자세 - 엔터미디어
- 분가한 며느리 도발 잠재운 트롯 원조집의 위용(‘미스터트롯2’) - 엔터미디어
- 무슨 치장이 필요하랴, 최민식은 역시 최민식이다(‘카지노’) - 엔터미디어
- 아동 성추행 논란 ‘결혼지옥’, 어째서 오은영에게도 질타 쏟아질까 - 엔터미디어
- 대중들이 알빠임?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 - 엔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