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드 코로나'로 감염 급증 속 시진핑 모호 화법 주목

코로나19 감염 급증 간접 언급…中당국 역할·책임은 쏙 빼
인민대중 역할 강조…통계 비틀기로 민심 이반 차단 안간힘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에서 이달 초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코로나19 감염이 급확산하는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의 모호 화법이 눈길을 끈다.

지난 7일 중국 당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사실상 철회해 3년 가까운 코로나 통제를 푼 이후에도 관련 언급을 피해오던 시 주석이 26일 애국위생운동 70주년을 맞아 첫 언급을 했으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진료받기 위해 기다리는 中 시민들 (상하이 AFP=연합뉴스) 23일 중국 상하이 창닝구의 퉁런 병원 발열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중국 전역에서 코로나19 의심 환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면서 현지 방역당국은 병상 및 의료 인력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2022.12.23 clynnkim@yna.co.kr

우선, 시 주석은 "현재 코로나19 예방과 통제가 새로운 정세와 새로운 임무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이는 제로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 그에 따른 코로나19 감염 급증을 에둘러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다음 언급이다.

시 주석은 "애국위생운동을 더 맞춤형으로 전개하고, 인민대중이 주도적으로 건강 지식을 습득하고 좋은 개인위생 습관을 길러 전염병 예방과 통제를 위한 지역 방어선을 구축해 인민대중의 생명 안전과 건강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중국 당국의 역할은 미미해 보인다. 중국 인민대중이 할 일만 강조했다. 위드 코로나 이후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책임지고 극복해야 할 주체가 인민대중이라는 뉘앙스도 있다.

현재 중국 내 주요 도시의 병원·장례 및 화장시설 등의 상황을 보면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 이후 중국은 '코로나19 대혼란'을 겪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실제 대만 중앙통신사 등은 지난 22일 인터넷에 유출된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의 회의 문건을 인용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2억4천800만 명이 감염됐으며, 이는 중국 전체 인구의 17.56%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위건위조차 하루 신규 감염자가 3천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로 미뤄볼 때 수억 명의 고향 방문이 이뤄질 다음 달 22일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계기로 중국에 코로나19 감염 '대폭발'을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춘제 연휴 뒤 코로나 검사받는 베이징 시민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볼 때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 때 감염 증가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가 일정 준비 기간을 거쳐 위드 코로나로 진입해 큰 혼란은 드물었다.

그러나 중국은 사실상 코로나19 방역 통제가 원인이 된 우루무치 화재 사건을 기점으로 '반(反) 제로 코로나 시위'가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공산당·시진핑 퇴진 요구로 이어지자 이달 초부터 위드 코로나로 급전환하면서 코로나19 감염 급증 사태가 현실화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 당국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식의 통계 비틀기를 하고 있어 보인다.

중국 당국은 지난 7일부터 정기적 전수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중단한 데 이어 14일부터 무증상 감염자 통계도 잡지 않았다. 코로나19 관련 사망자도 감염 후 폐렴 또는 호흡부전으로 사망했을 때만 집계하고 있다. 25일부터는 일일 통계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민심 이반 차단을 염두에 둔 중국 당국의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제대로 전달될 경우 중국 최고지도부를 향한 반발을 커질 걸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코로나19 발원지를 두고 미국과 기 싸움을 하는 중국으로선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3년 가까이 감염자와 사망자 모두 '세계 최저'라고 강변해온 터여서 제대로 된 통계 공개를 꺼린다는 분석도 있다.

시 주석이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입을 다물고 있다가 26일 내놓은 첫 언급에서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기인 2020년 1월 28일 방중했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시 주석의 '코로나19=악마' 발언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시 주석은 당시 "우한 폐렴은 악마다. 우리는 악마가 활개 치고 다니게 놔두지 않겠다"는 언급하면서 '단 한 명의 코로나19 환자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이때부터 제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랬던 시 주석이 위드 코로나 전환 후 첫 언급에선 중국 당국의 역할은 쏙 빼고 중국 인민대중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일각에선 15년 이상의 장기 집권을 염두에 뒀던 시 주석이 이를 실현할 지난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확고한 지지를 받기 위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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