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바둑학 박사 1호 “바둑학과 폐지 땐 한국 바둑문화 뒤처질 것”
교육부 승인 땐 24학번 끝으로 사라져
1997년 창설된 명지대 바둑학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둑을 학사부터 박사과정까지 학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명지대 바둑학과가 폐지 위기에 놓였다. 명지대는 지난 1일 바둑 인구 감소와 젊은 층의 참여 비중이 10% 미만인 ‘사양 산업’이라는 이유로 학과 폐지를 결정했다. 교육부 승인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이르면 2024년도 신입생이 바둑학과의 마지막 학번이 된다.
다니엘라 트링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45)는 지난 23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의) 바둑학과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독점적 위치에 있다”며 “25년 동안 바둑 전문 인재를 배출하며 해외에 명지대를 알리는 간판 역할을 충실히 해온 바둑학과가 폐지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서 ‘바둑 유학’ 온 트링스 교수
“한국 바둑에 해외 진학 문의 늘고
중국선 바둑 인공지능 육성 계획···
지금 폐지한다면 오히려 큰 손실”
2006년 명지대 바둑학과에 편입한 트링스 교수는 외국인 1호 바둑학 박사이자 2015년에는 외국인 최초로 바둑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바둑 모임에 참여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10살 무렵 바둑에 입문했다. 좋아하는 바둑을 알리고 싶어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나 초등학생들을 모아 바둑을 가르쳤다. 독일 최강 아마추어 여성 선수를 가리는 독일 여자 바둑 챔피언십에 출전해 1999·2000·2005년과 2006년 총 4회에 걸쳐 우승하기도 했다.
뤼네부르크대 환경과학 석사학위를 받고 카셀대 연구조교로 지내면서도 바둑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그는 우연히 명지대 바둑학과에 대해 알게 됐고 그길로 바둑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독일에서 바둑을 제대로 가르치고 보급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며 “처음에는 2년만 공부하고 돌아가려는 계획이었지만 바둑과 한국 문화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명지대 바둑학과는 바둑 전문인력 배출은 물론 아시아, 유럽, 미국 등 18개국에서 온 91명의 학생이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쳐 자국에서 한국의 바둑 문화와 교육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트링스 교수는 “최근 한국 바둑선수들의 활약으로 해외에서의 진학 문의가 늘었지만 학과 폐지 소식에 입학 신청을 취소한 예도 있었다”며 “저는 바둑학과에 입학해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그런 기회를 드릴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또 그는 바둑학과 폐지로 바둑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콘텐츠를 개발하는 인재 양성이 멈춰 한국의 바둑 문화가 뒤처질 것을 우려했다. 중국 상하이 건교대학에서는 명지대 바둑학과를 모델 삼아 2018년 바둑학과를 신설했다. 트링스 교수는 “중국 내 또 다른 대학에서도 바둑학과 신설을 계획할 정도로 중국은 바둑 인공지능 개발 및 인재 육성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명지대 바둑학과는 25년간 세계 바둑계의 허브 역할을 하며 한국바둑을 전 세계에 알려왔는데 지금 폐지한다면 오히려 더 큰 손실”이라고 꼬집었다.
바둑학과 폐지 소식에 한국프로기사협회를 비롯해 대한바둑협회, 한국여성바둑연맹, 대학바둑연맹 소속 바둑동아리 등이 바둑학과 폐지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명지대 측에 전달했다. 중국 상하이 건교대학 순더창 교수를 비롯해 독일, 캐나다, 미국, 스페인 등 15개국에서 바둑학과 폐지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트링스 교수는 “저를 비롯한 바둑학과 교수진은 바둑학과의 지난 25년간의 성과와 국내외 바둑계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 등을 널리 알려 학교의 폐과 결정이 바뀔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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