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폭설피해] 비닐하우스·축사시설 ‘폭삭’…농심도 ‘와르르’
폭설후 한파 몰아쳐 복구 난항
내년 봄농사에도 차질 불가피
“영농재개 위한 지원자금 시급”
22∼24일 전북·전남 지역에 집중된 기록적인 폭설로 영농시설물 피해가 속출했다. 한창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의 천장이 내려앉고 축사가 붕괴돼 농민들은 망연자실해 있다. 폭설 피해 현장을 찾아 막막한 상황에 처한 피해 농민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농작물 얼어붙고, 농심 무너지고= 22∼24일 광주광역시·전남 지역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농가 피해가 잇따랐다. 폭설 이후 한파까지 이어지면서 내린 눈이 얼어붙어 복구작업도 여의치 않아 농가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폭설이 지나간 26일, 전남에서 가장 많은 농가 피해가 접수된 담양군. 너른 들녘에는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내려앉은 비닐하우스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담양에서 쑥갓·대파 농사를 짓는 안춘호씨(72)는 “비닐하우스 천장이 바닥까지 내려앉아 쑥갓이랑 대파가 냉해를 입었다”면서 “쑥갓은 지난 토요일부터 수확을 시작하려고 포장상자까지 준비해놨는데 허사가 돼버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안씨는 쑥갓과 대파를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3동이 전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인근 오리농장에서는 사육사가 무너지며 오리가 폐사할 뻔한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다행히 피해를 일찍 발견해 오리를 대피시키면서 그나마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전남도에 따르면 25일 기준 시설하우스는 84농가 137동, 8만184㎡(2만4245평)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축사는 13농가 35동, 1만2647㎡(3826평)에서 피해가 났다. 도 추산 피해액은 11억6200만원에 달한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복구작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폭설 이후 한파가 이어지면서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어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을 치우지 못하고 있고, 농로 통행도 원활치 않아 농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송정기 담양농협 상무는 “천생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닐하우스 철거를 시작해야 하는데 추위가 계속되고 있어 작업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복구가 늦어질수록 내년 봄농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피해 농가 안춘호씨는 겨울작물이 끝나면 내년 3월 멜론을 정식하려고 모종을 주문해뒀는데 비닐하우스가 망가지면서 내년 봄농사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에 도와 농협은 영농활동에 차질이 없도록 복구 지원을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 김범진 담양농협 조합장은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피해 복구와 영농 재개를 위한 자금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폐허처럼 변한 축사, 허탈한 웃음만= “그냥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이젠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서 10년째 오리농장을 경영하는 최민석씨(57)는 폐허처럼 변한 축사 9동을 바라보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는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를 듣고 전날부터 시청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런 전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손을 쓰지 못해 폭설에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피해를 복구하려면 어림잡아 수억원이 들 텐데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며 “보상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 쉬었다.
이평면에서 양돈장을 운영하는 김영규씨(52)도 폭삭 무너져내린 돈사 지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돼지 2500마리를 키우는 김씨는 이번 폭설에 돈사 2동이 크게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김씨는 “순식간에 30㎝가 넘는 폭설이 쌓이는 바람에 철골구조물이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면서 “돼지 300여마리가 한때 고립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이웃들이 도와줘 무너진 돈사에 비집고 들어가 3시간 만에 겨우 구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사람도 가축도 직접적인 피해를 면해 그나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북도에 따르면 26일 오전 기준 정읍·순창·부안 등에서 비닐하우스 239동이 무너지고 축사 54동이 파손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또한 폭설에 발이 묶였던 농가들이 속속 현장을 확인 중에 있어 앞으로 전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담양=이상희, 정읍=박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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