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규제, 구글·애플은 놔두고 카카오만?
IDC법, 두 달 만에 본회의 만장일치 통과
공정위, 플랫폼정책과 신설…심사지침 제정
글로벌 빅테크 관련 법안은 ‘제자리걸음’
“국가 경쟁력 위해 성장 산업 키워야”
정부와 정치권이 플랫폼 규제 강화에 나섰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놔두고 국내 기업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업계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카카오 먹통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마련된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규제 법안은 사태 발생 두 달 만에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반면, ‘망 사용료 의무화 법’ 등 글로벌 빅테크 규제 법안은 수개월의 진통 끝에 해를 넘기게 됐다. 지난해 ‘인앱결제 강제 금지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단락될 줄 알았던 구글, 애플 등 애플리케이션(앱) 장터 사업자들의 갑질 논란도 방송통신위원회의 관련 사실조사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달 초 임시 조직이었던 온라인플랫폼팀을 확대·개편해 온라인플랫폼정책과를 신설했다. 신설 과는 공정위 시장감시국 산하에 배치되며, 운영 기간은 1년(기본 6개월·행정안전부 협의 없이 한 차례 6개월 연장 가능)이다. 정원은 현재 4명에서 7명으로 순차 보강할 예정이다. 수행할 업무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 문제 해소, 경쟁 촉진과 관련된 정책 수립 등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 규율을 위한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도 제정 중이다. 애초 지난 21일 전원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상정 직전 관계부처 협의 요청이 들어오면서 내년으로 미뤄졌다. 해당 지침에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의 시장지배력 평가 기준 등과 함께 경쟁 플랫폼 방해, 유리한 거래조건 요구,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 위반행위의 구체적 사례가 담길 전망이다.
심사지침은 그 자체로는 법적 효력이 없지만 법 해석 시 준칙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업계에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이른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법(온플법)’ 등 관련 법 제정 움직임이 이번 심사지침 제정을 시작으로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플랫폼 자율규제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던 정부가 이처럼 180도 태도를 바꾸게 된 데에는 지난 10월 판교 SK C&C 데이터센터에 발생한 화재로 카카오 주요 서비스가 대규모 장애를 일으킨 영향이 컸다. 해당 데이터센터에 입주한 카카오 서버 전원이 차단되면서 메신저를 비롯한 이메일, 택시·대리운전 호출, 웹툰·웹소설 등 국민의 삶 깊숙이 파고든 카카오 서비스가 127시간 넘게 멈춰선 초유의 사건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계기로 ‘독과점 플랫폼’의 폐해에 주목하게 됐고, 공정위는 나아가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 연내 제정 방침을 밝혔다. 국회는 이른바 ‘카카오 먹통 방지법’으로 불리는 복수의 법안을 통과시켜 카카오와 같은 대형 플랫폼의 데이터 보호에 대한 의무를 기간통신사업자 수준으로 강화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정감사에 플랫폼 기업 고위 경영진이 줄줄이 출석해 의원들의 질타를 받은 데다 정부의 정책 변화 조짐까지 겹치면서 업계는 ‘규제 한파’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빅테크 이슈도 함께 불거지면서 ‘만만한 국내 기업만 때린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여야 가릴 것 없이 입법을 추진하던 망 사용료 의무화 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유튜브, 트위치 등 반대 진영의 여론전에 부딪히면서 법안 심사가 연기됐다. 국내 업계가 요구하는 추가 공청회는 여야 이견으로 3개월째 일정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8월 앱 장터들을 상대로 사실조사에 착수한 방통위는 4개월이 넘도록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구글과 애플이 올해 3월부터 시행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우회하자 돌입한 사실조사였다. 구글의 경우 사실상 인앱결제를 강제하면서 외부 결제를 위한 아웃링크를 게재하는 앱은 자사 앱 장터에서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는 음원, 웹툰·웹소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콘텐츠 앱의 이용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카카오톡은 이모티콘 구독 서비스와 관련한 공지 화면에 아웃링크를 유지했다가 한동안 앱 업데이트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 적도 있다.
정부는 글로벌 빅테크와 관련된 사안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글 등 빅테크를 규제하면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대 기업과의 소송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이에 대해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지난 14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조사 결과는) 결국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글로벌 빅테크를) 제재하고 처분하는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소송 관련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국가 경쟁력 강화, 소비자 후생 증진 관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국내 기업에 보다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자국 내 플랫폼 기업을 키우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들의 영향력 확대를 제한하려는 법안을 추진 중인데, 한국은 전방위 플랫폼 규제를 통해 토종 기업들의 경쟁력까지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며 “국내 시장에서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도 세계 시장에서는 구멍가게에 불과하다. 이제는 규제 대신 지원을 늘리는 방향을 고려해야 할 때다”고 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플랫폼 규제가 소비자에게 어떤 긍정적 효과를 내는 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며 “글로벌 빅테크가 시장을 잠식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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