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정치인 대거 포함된 신년 특사, 국민 통합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부는 27일 정치인 9명, 공직자 66명, 선거사범 1천274명 등 총 1천373명 규모의 특사를 발표했다. 정부는 "새 정부 출범 첫해를 마무리하며 범국민적 통합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저력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광복절 특사가 코로나 사태로 가라앉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신년 특사는 정치적 통합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관심을 끌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정치인들이 대거 사면됐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과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도 특사에 포함됐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 최구식·이병석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신계륜 전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정치인들 역시 명단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면이 "국력을 하나로 모아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면권은 헌법 제79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자 국가 원수로서의 통치 행위이다. 하지만 삼권분립이나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절제 있게 행사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정한 범죄에 대해 일괄 적용하는 일반사면과 달리 특별사면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자의적 판단으로 재량권을 남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사를 단행할 때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잠시 양보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훨씬 큰 보탬이 된다는 확신이 전제돼야 한다. 뚜렷한 원칙 없이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특별 대우하고, 그것이 각 진영의 공고한 결집에만 기여한다면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 사면의 경우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국민 통합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상식과 기대를 배신하는, 국민 통합에 오히려 저해되는 특혜 사면"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은 또 사면·복권된 이 전 대통령과는 달리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김 전 지사에 대해 복권 없이 형 면제만 한 것을 두고 '들러리'나 '구색 맞추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들도 대체로 정치인 사면에는 부정적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 전 대통령이든 김 전 지사든 사면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사면 대상자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국가와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 중대 범죄자들이다. 이 전 대통령은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소송 비용을 사기업에 떠넘기는 등의 범죄로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형기는 겨우 2년여를 채웠고, 벌금 130억 원 중 82억 원은 미납 상태인데 이번 특사로 이마저 면제받게 됐다.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은 김 전 지사 또한 아직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드는 범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국가 사법 체계까지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 권력을 이용해 댓글 공작을 한 혐의로 징역 14년 2개월을 선고받은 원세훈 전 원장이나 이런저런 부패 범죄로 단죄됐던 여야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도 특사를 단행한 것은 과거의 상처를 그냥 둔 채로는 미래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고령의 전직 대통령을 앞으로도 10여 년 동안 교도소에 가둬 놓는 것이 국민 화합이나 국격 측면에서 바람직한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다만 이번 사면이 각 진영의 마음을 얻는 도구로만 쓰이지 않고 국민 대화합의 계기로 기능하려면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우선 여야를 막론하고 적극 지지층만 바라보는 '죽기살기식' 정쟁부터 자제해야 한다. 새해에는 정치권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상생과 협치를 모색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이번 사면의 의미와 취지를 흔쾌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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