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나이프 들던 애가 엉엉 운다, 갓난쟁이 밥 안 먹어 무섭다면서[나, 어린 엄마②]
육아휴직을 낸 스물한살 서연이 딸 은지와 시간을 보내던 올해 봄, 스물넷 성아는 대학에 막 입학해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경기 산골의 교정에 벚꽃이 폈다. 성아는 벚꽃길에 시선을 오래 두지 못했다. 열아홉에 낳은 민준이와 한 살배기 서준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성아는 빠르게 걸었다.
성아는 어릴 때부터 학대로 그늘진 집을 나와 떠돌았다. 교육과 복지가 외면한 바깥에서 잭나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서성거렸다. 받아 본 적 없는 애정을 갈망했고 어느 날 아이가 생겼다. 시설에서 막 아이를 출산한 2017년 어느 여름날, 원장 수녀님이 성아를 불렀다.
■목차
① 트리에 빛이 열렸네
② 잭나이프 들던 애가 엉엉 운다
③ 우리 같은 엄마들
“상담실로 잠깐 올래?” 원장 수녀님의 말에 성아는 요 며칠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부터 되짚어봤다.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엥? 저 뭐 잘못했어요?” 수녀님은 웃었다. “아니, 그냥 와봐.”
성아는 점심을 다 먹고 마당을 건너 상담실이 있는 본관으로 향했다. 품이 큰 반소매 티와 긴 치마가 나풀거렸다. 단발보다 약간 짧게 자른 머리카락엔 탈색의 흔적이 얼룩덜룩했다. 예년보다 이른 폭염특보가 내려진 2017년 6월, 경기 용인 산골의 한부모 생활시설 마당도 뜨거워졌다. 열아홉 성아는 갓 아이를 낳고 이 시설에서 지내며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본관 입구에 도착하니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의 석고상이 중천의 태양을 새하얗게 반사하고 있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은 성아에게 수녀님은 녹차를 건네며 물었다. “민준이 낳으니까 어때? 배 속에 있을 때랑 마음이 바뀌었어?” 성아는 말이 없었다. 수녀님은 물었다. “입양도 생각한다고 했었잖아. 지금도 그러니?”
침묵 속에서 성아는 녹차가 담긴 컵을 바라봤다. 입꼬리가 울먹거렸다. 성아가 입을 뗐다.
엄마는 저녁이면 술집으로 출근해 다음 날 새벽에야 돌아왔다. 예쁜 옷을 입고 나가서 술에 취해 돌아왔다. 아빠는 이혼해 따로 살았다. 어린 성아는 혼자 집에서 음악방송을 보면서 원더걸스의 춤을 따라 췄다. “테테레테데 텔미. 내가 필요하다 말해, 말해줘요!” 바디컨트롤. 꺾이거나 튕기거나 하면서 몸이 풀리는 그 감각이 성아는 좋았다. 춤을 추다 배가 고파지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성아는 엄마가 예쁘다고, 옷도 잘 입는다고 주변에 자랑했다. 엄마가 무섭게 소리 지르며 혼내고, 때리고, 용돈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성아는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무의식중에 자꾸 남의 물건에 손을 댔고 이내 반에서 왕따가 됐다. 정신을 차리면 말썽은 커져 있었고 성아는 오늘은 또 얼마나 두들겨 맞고 혼날까, 벌벌 떨었다.
엄마의 화는 점점 자랐고 성아는 자주 가출했다. 4층짜리 빌라 옥상에 숨어 며칠 버티면 엄마가 성아를 찾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성아는 생각했다. 엄마가 날 찾아주네, 날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조심스럽게 집에 돌아간 성아를 엄마는 예전보다 더 크게 혼냈다. “나가 죽어, 꺼져, 사라져!” 엄마가 심하게 화를 낸 열세 살의 어느 날 밤에도 성아는 옥상에 올라갔다. 난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리를 까딱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역시 무섭다’고 생각한 순간, 별안간에 휙 떠밀리듯이 성아는 난간 밖으로 떨어졌다. 1층 호프집의 두꺼운 파란 천막이 성아를 받았다.
사춘기를 지나며 성아는 더 멀리, 더 오래 가출했다. 떠돌이 성아는 주인 없는 차 문을 열고 돈을 슬쩍하며 살았다. 멀리 떠날 때면 싸구려 잭나이프나 일회용 면도칼을 꼭 챙겨서 다녔다. 곳곳의 청소년쉼터에서 잠깐씩 지내고, 여러 가출팸을 돌며 언니·오빠들의 거처를 전전했다. 2012년의 겨울, 원주역 철로를 가로질러 한 언니의 집으로 향하던 중에 언니·오빠들은 성아를 데리고 다닐 수 없다고 선언했다.
“언니, 내가 뭐 실수했어요?” 철로 자갈밭에 성아의 무릎이 퍼석하고 떨어졌다. “말해줘요. 고칠게요, 언니 제발, 나 버리지 말아요….”
언니·오빠들은 철로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애정을 오래 굶은 거리의 아이들은 생존본능처럼 사랑했다. 빼앗길세라 불같이 연애했고 오래가지 못했다. 열여덟의 성아가 만난 남자는 성아가 구해오는 돈으로 술을 먹고, 월세를 대고, 친구들을 만났다. 개새끼,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벌어오는데. 성아는 자주 화가 났다. ‘나는 왜 이러고 살까’ 한숨 쉬다 보면 ‘누가 나를 좀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휘감아왔고, 홧김에 아는 오빠와 자버린 그 날 민준이가 생겼다. “왜 지금이야, 왜, 너무 힘든데…”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그 날 성아는 울었다.
원장 수녀님이 내준 녹차를 마시는 성아의 손끝이 떨렸다. 성아는 울먹이며 말했다. “못 보낼 거 같아요. 손잡아보고 안아보니까 못 보내겠어요….”
시설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종종 입양을 갔다. 처음 입소할 땐 아이를 직접 키울 작정이었던 성아도 출산이 다가오자 흔들렸다. 내가 애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보니까 미국의 지위 있는 분들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거 같은데, 그게 민준이에게도 낫지 않을까. 성아는 생각했다.
오후 4시18분에 태어난 민준이는 통 울지를 않고 밥도 잘 안 먹었다. 성아는 무서웠다. 시설 선생님을 붙잡고 선생님 아기가 밥을 안 먹어요, 크게 아픈 건 아니겠죠? 펑펑 울었다. 막 출근한 수녀님들이 그런 성아를 보며 웃었다. 야, 쟤가 운다. 성아가 운다. 잭나이프 갖고 다니면서 입에 욕을 달고 살던 성아가, 밥 안 먹는 갓난쟁이가 걱정돼서 으아아앙 운다.
그 모습을 다 기억하는 원장 수녀님이 상담실에서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성야야, 너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수녀님은 이어 말했다. “성아 네가 여기 올 땐 눈에 독기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눈에서 독기고 살기고 쏙 빠지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구먼.”
용인 수녀님들과 지낼 수 있는 기간이 끝나고 성아는 성남의 다른 시설로 옮겼다. 성아는 자기 안의 화가 아이에게 가지 않기를 바랐다. 오은영 박사님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화내지 않는 법,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법을 메모했다. 어떤 강사들은 화가 나면 자리를 잠시 벗어나 보라고 말했다. 웃기시네, 성아는 뒤로가기를 눌렀다. 제가 자리를 피하면, 혼자 남은 아기는 박탈감만 느끼겠죠. 선생님. 그건 성아가 가장 잘 알았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을 가면 간호조무사학원이 있었다. 아이 키우려면 자격증 하나는 따야겠다는 마음으로 등록한 학원이었다. 첫 수업시간, 40명쯤 되는 중년 학생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성아입니다. 저는 스무 살이고 아이가 한 명 있는데 미혼모입니다.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성아가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옆 사람들이 말을 걸었다. “아유 고생한다, 혼자 키우느라 고생이 많네.”
이모뻘인 중년 여성 학생들은 육아가 뭔지 알았다. 2018년 6월, 성아가 민준이의 돌잔치를 연다고 하니 이모 삼촌들은 “아이고 아기 돌이에요?”하며 현금을 쥐여주거나 아기 옷을 성아에게 내밀었다. 조촐하게 연 민준이의 돌잔치에도 우르르 찾아왔다. 민준이는 5만원권 세 장을 양손에 잡았다. “아 이거~ 엄마가 시킨 거 아닌가요?” 진행자의 농담에 좌중이 폭소했다. 성아는 민준이가 실을 잡길 바랐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부모교육을 들으러 다녔다. 어느 날엔 안경을 쓴 중년 여성 강사가 시설에 와서 엄마 혼자서는 힘들다며, 누군가의 지지가 필요하고 아버님들이 어떤 식으로 지지해줘야 한다며 교안을 읽었다. 한부모시설에서 왜 아빠 이야기를 꺼내는지 성아와 엄마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새로 마음먹은 게 있기는 했다. 대학에 가야겠다고, 아이가 크면 점점 돈이 많이 들 테니 학위를 따서 더 좋은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성아는 생각했다. 마침 퇴소일도 다가와서 성아는 고향인 부천의 시설로 옮겼다. 입시에 쓸 검정고시 점수부터 올려볼 계획이었다.
“아, 그럼 출퇴근이 좀 힘드신가요?”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려고 찾아간 대학교 앞 번화가 국숫집에서 사장은 성아에게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아의 자기소개를 열심히 메모하던 사장은, 성아가 혼자 아이를 키운다고 말하자마자 펜을 잡지 않았다. “아뇨 가능한데, 근무시간표를 1주일 전에만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성아가 말했다. “네 뭐… 일단 고생하셨고,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국숫집, 편의점, 카페…. 다섯 번의 알바 면접이 연달아 “다음에 연락드릴게요”로 끝났다. ‘아 씨, 가뜩이나 검고 점수도 잘 안 오르는데….’ 짜증 나고 예민해진 채로 집에 오면 민준이가 “엄마~” 하면서 다가왔다. “엄마 힘들어, 저리 가 있어.” 성아는 낮은 톤으로 대꾸했다. ‘아 씨, 엄마처럼은 안 되려고 했는데….’
그맘때 성아의 눈에 들어오는 뉴스는 ‘한부모 A씨 아이와 숨진 채 발견’ ‘생활고에 모텔에서 극단적 선택 추정’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댓글 창에서 사람들은 “애 엄마가 일도 안 한 거야?” “못 키우면 입양시키지, 왜 쓸데없이 거기서 죽냐” 떠들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매도할 일인가, 성아는 숨이 자주 턱턱 막혔다. 유모차에 민준이를 태우고 나가면 모두가 성아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눈앞이 하얘지고 숨이 헉헉 빨라졌다. 성아는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바닥만 보며 경보하듯 걸었다.
지인의 소개로 한 카페에서 일하며 성아는 악착스럽게 생활비를 벌었다. 남자친구도 생겼다. 사실은 백수면서 경호 일을 한다며 거짓말하고 바람도 피워댔지만, 성아는 꾹 참고 1.5룸 반지하에서 그와 함께 살았다. 잘해보고 싶었고 민준이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배 속에 아이도 생겼다. 성아는 대학 지원도 포기하고 새 삶에 전념했지만 남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을 구하지 않았다. 보증금을 다 깎아 먹어가던 2021년 4월, 둘은 성아의 엄마 집으로 돌아갔고 두 달 뒤 둘째 서준이가 태어났다.
아이 아빠는 사라졌다. 일 좀 하라는 성아 엄마의 잔소리를 견디기 힘들다며 도망쳐 연락이 끊겼다. 알코올 의존이 더 심해진 엄마는 거의 매일 성아와 부딪혔다. “내가 너 때문에…” 8월의 어느 날에도 엄마는 주정했다. “알았다고, 그만 좀 해!” 성아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가자 엄마가 따라왔다. “나가! 이럴 거면 나가라고!” 성아도 한계였다. 손가방에 기저귀와 아이들 여벌옷을 마구 구겨넣은 성아는 네살 민준이와 신생아 서준이를 데리고 무작정 나왔다. 성아는 핸드폰을 꺼냈다. 성남 미혼모시설 때 옆방에 살던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오만원만…”
“오만원? 무슨 일이야?” 유진이 답했다.
“엄마한테 쫓겨났는데…흐흐흑.” 성아는 눈물이 터졌다. “모텔이라도 가서 흑, 자려고. 흑, 자고 시설 들어가려고.”
“야 너 울어? 네가 울 정도면 진짜 무슨 일이 있나 보네.” 유진은 말했다. “무슨 모텔이야 모텔은. 우리 집이 더 나으니까, 택시비 줄게 우리 집 와.”
성아는 아이들과 택시를 잡아타고 유진이 사는 성남으로 향했다. “분유 얼마나 챙겨왔어? 기저귀는?” 유진은 택시에서도 전화로 계속 물었다. 미터기가 5만을 넘겼다. 울면서 택시에서 내린 성아에게 유진은 젖병을 사줬다.
유진의 집에서 십여 일을 지내고 성아는 서울 한부모시설 애란원에 들어갔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새 분위기에 적응도 어려웠던 성아는 선생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대학 준비하다 말았던 거, 다시 해보는 게 어때?” 선생님의 제안에 성아는 그해 11월의 어느 토요일 성남 동서울대 체육관을 찾았다. ‘2022학년도 수시 2차 전문대학 입학정보 박람회’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지나 체육관에 들어서니 60개가 넘는 입학상담 부스들이 체육관을 꽉 채우고 있었다. 수백 개의 말소리가 서로 부딪히며 왕왕거렸다. 교복에 입시 팸플릿을 안아 들고 떠들며 지나다니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서준이를 업은 스물세 살 성아도 부스들을 돌아다녔다.
성아는 집과 가까운 B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서울권은 조금 어려워도 경기권까지는 해볼 만할 정도로 검정고시 점수를 올려뒀었다. B대학 부스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성아를, 맞은편 D대학 부스에서 한 교수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거기 아기엄마, 여기도 한번 와볼래요?”
수시원서를 막 내고 B대학 부스를 나서는 성아를 교수가 불렀다.
“무슨 과 보고 있으신가요?”
“저…재활스포츠 쪽이요.” 성아는 정형외과에서 간호조무사 실습을 할 때부터 인체에 호기심이 많았다. 뼈와 근육을 움직여 건강하게 잡아주는 일이 특히 좋았다. 바디컨트롤처럼, 꺾이거나 튕기거나 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 움직임이 성아는 참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다.
“재활스포츠? 잘됐네, 우리 학교에도 학과 있어요.” D대학 교수는 팸플릿들을 꺼냈다. 알고 보니 큰 대학병원의 관련 과에서 일한 경력도 있는 교수였다. 성아는 D대학 부스에서도 원서를 썼다. “다른 학교도 더 둘러보고 넣어봐요.” 교수는 말했다. “학교가 경기도 광주라 셔틀이 다니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멀어서 힘들 수도 있으니까 다른 학교도 더 봐요.” 교수는 강요하지 않았다. 배려해주되 불쌍해하지 않았다.
성아는 그날 원서를 넣은 학교 중 네 곳에 붙었고 D대학을 선택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2251425021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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