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 유령이 사라진 완전자율주행 시장은 어디로

이균성 논설위원 2022. 12. 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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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溫技] 속도 조절 숙제 던져져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애플카는 세계 테크 시장을 배회하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실체가 없었지만, 매끈하게 생긴 콘셉트 이미지 하나 만으로도, 마니아들을 충분히 열광시켰고, 모든 자동차 기업을 극도의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운전대와 페달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차일 수만은 없는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만들 곳은 애플 밖에 없어보였으며, 그것이 나온 뒤 자동차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 유령을 잠재운 건 그런데 경쟁 자동차 기업이 아니었다. 미국의 언론 블룸버그였다. 블룸버그는 지난 6일(현지시간) 코드명 ‘타이탄’으로 명명된 애플카 개발 계획이 수정됐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운전대와 페달이 없는 완전자율주행차’ 구현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운전대와 페달이 달려 있는 모델 개발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또 고속도로에서만 주행이 가능하도록 개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런데 유령으로서의 애플카는 아니다. 그 정도의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여러 기업에서 확보했고, 현재 시판되고 있는 차에도 조금씩 구현되고 있다. 애플에 기대했던 것은 세상의 모든 자율주행 기술이 총 집약된, 그야말로 화룡점정으로서의, 완전자율주행이었다. 그것을 구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다들 어느 정도는 짐작하였기에 애플 아니면 안 된다는 기대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애플카 렌더링 이미지 (사진=iDropNews, Erick Martinez)

애플보다 먼저 두 손을 든 곳은 아르고AI다. 이 회사는 구글 웨이모와 함께 자율주행 분야 선두주자였다.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폭스바겐이 조(兆) 단위의 대규모 투자를 해 유명해졌다. 한 때 기업가치가 10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설립 6년 만에 사업을 중단했다. 이 회사가 사업을 중단한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투자해야 하지만 그럴 만한 투자자가 없기 때문일 테다.

아르고AI의 대주주인 포드의 존 롤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수익성이 있고 실현 가능한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또 비용도 수십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며 "이 기술을 직접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에 투자하겠다고 덧붙였다. 포드와 함께 투자한 폭스바겐도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에 대한 심상치 않은 소식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테슬라 모델S의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 Drive) 모드’는 안정성과 과장광고 문제로 계속해서 잡음이 일어나고, 차량 공유기업 리프트와 우버는 이미 수년 전에 자율주행차 개발사업부를 매각했다. 구글의 웨이모도 자율주행 개발에 나선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오히려 개발 초기보다 뉴스가 더 줄어든 듯한 느낌마저 드는 상황이다.

이 사례들은 모두 자율주행 기술이 큰 도전에 직면했다는 걸 뜻한다. 자율주행은 자동차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 틀림없다. 특히 알파고 출현 뒤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그 방향에 확신이 더해졌다. 하지만 실제로 그 방향으로 달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멀고 지난한 길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어쩌면 그 길은 인간의 뇌를 대체할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것과 맞먹을 지도 모른다.

애플카라는 유령이 사라진 것은 완전자율주행이 기술적으로 큰 도전에 직면한 것을 의미하지만, 역설적으로 비즈니스가 허공에서 땅으로 내려온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고금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기술기업에 대한 가치가 폭락한 여파가 이런 현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천하의 애플도 속도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명백해진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 정책 당국과 사업 주체들에게도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애플과 구글과 테슬라 그리고 그 관련 회사들의 빠른 속도에 뒤쳐질 게 두려워 황급히 따라가는 국면이었던 것 같다.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시급함이 정책과 비즈니스 판단의 최우선 요소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먼저 간 자들이 이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들조차도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쉽지 않고, 수익을 낼 비즈니스 모델도 마땅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라고 따로 챙겨놓은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꼭 그들의 속도에 우리를 맞출 필요는 없다. 다만 모든 사업 주체가 점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지금의 속도가 최선인지. 유령이 사라졌다는 건 꿈을 깨야 한다는 뜻이고 꿈을 깨는 건 차가운 현실을 마주보는 것이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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