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소녀가 손흥민 선수에게 부탁한 ‘7’ 세리머니…소아암 어린이 응원 ‘세리머니’로

김현수 기자 2022. 12. 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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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양(15)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 왼손 엄지와 검지를 펴 검지가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는 ‘7’자 모양의 자세를 취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자세는 김양이 손흥민 선수에게 부탁한 ‘골 세리머니’다. 김재은양 SNS 갈무리.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선수에게 골 세리머니를 부탁하는 등 밝은 모습으로 완치 의지를 드러낸 백혈병 투병 소녀의 사연(경향신문 12월5일자 19면 등 보도)이 알려지면서 소녀가 원했던 세리머니가 소아암 어린이 응원에 사용된다.

경북 칠곡군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이 지난 26일부터 왼손으로 숫자 ‘7’ 모양을 만드는 ‘포즈’로 기념 촬영을 하며 소아암 아동을 격려하는 챌린지를 시작했다고 27일 밝혔다.

첫 번째 주자는 서선원 백혈병어린이재단 사무총장이다. 서 총장은 챌린지를 이어갈 다음 참여자로 이만수 전 SK 감독, 강백호·김상수 KT위즈 야구선수, 김연경(흥국생명) 배구 국가대표, 전준영 천안함 예비역 전우회장 등을 지명했다.

챌린지는 손가락 ‘7자 포즈’ 사진을 촬영해 소아암 어린이를 응원하는 글과 함께 챌린지를 이어갈 두 명을 지명하고 SNS에 올리면 된다. 한국 야구 레전드와 가수·배우·참전용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명 인사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챌린지는 경북 칠곡군에 사는 김재은양(15)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연에서 비롯됐다.

김양은 지난 3일 SNS에 당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활약 중이던 손흥민 선수에게 특별한 골 세리머니를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왼손 엄지와 검지로 숫자 ‘7’자 모양을 만들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긴 글을 썼다.

김양은 “뼈가 녹아내릴 것 같은 항암치료의 고통은 10대인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요”라면서 “손흥민 선수님이 골을 넣고 (손가락으로) 7을 그려주신다면 행운과 용기가 생길 것 같아요”라고 썼다. 지난 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는 태극전사들처럼 포기하지 않고 기적의 드라마를 써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도 다졌다.

손 선수의 ‘세리머니’는 한국 대표팀이 16강전에서 패배하면서 무산됐다. 하지만 김양이 바랬던 ‘세리머니’는 소아암 아동을 격려하는 ‘세리머니’가 됐다.

백혈병 치료 중인 김재은양(15)과 아버지 김동진씨(43)의 지난 7월 모습. 아버지 김씨는 머리카락이 빠져 우울해하는 김양을 위로하기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김동진씨 제공.

김 양의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400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칠곡군 관계자는 “(김양의)사연을 접한 기업가와 백혈병으로 가족을 하늘나라에 보낸 어머니, 김양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공무원, 학교 친구 등이 성금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칠곡 출신인 서울의 한 기업인은 “치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면서 ‘초등학교 후배’인 김양에게 1000만원의 성금을 보냈다.

서선원 백혈병어린이재단 사무총장은 “하루에 3~4명의 어린이가 소아암 진단을 받지만 적절한 치료를 하면 80% 이상의 완치율을 보인다”며 “소아암 어린이들의 건강하고 밝은 내일을 위해 이번 챌린지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김양은 올해 1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키가 172㎝로 커 초등학교 시절 투포환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건강했던 터라 충격이 컸다. 지난 2월 본격적인 항암치료 후 62㎏였던 체중이 51㎏까지 줄었다. 요즘은 일주일에 2~3차례 칠곡과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차상위계층인 김양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 김씨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간병에 전념하다 보니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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