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데뷔 25주년' 박기영, 팔색조 증명…"음악 아름다움은 변치 않죠"
기사내용 요약
'불후의 명곡 - 아티스트 패티 김'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무대 호평
신곡 '사랑이 닿으면'도 주목
내년 베스트 앨범·일렉트로닉 앨범 LP로 발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최근 방송된 KBS 2TV 노래 경연 예능 '불후의 명곡 - 아티스트 패티 김' 편은 은빛 만년설을 닮은 성성한 백발을 지닌 채, 여전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전설적인 디바' 패티 김(84·김혜자)에게 헌정된 무대였다.
패티 김의 노래를 재해석한 14팀의 출연진도 쟁쟁했는데, 순위와 별개로 음악 관계자들에게 제일 호평을 받은 무대 중 하나가 박기영(45)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무대였다.
박기영이 패티 김에게서 미국 가수 에타 제임스(1938~2012)를 떠올렸다며 스탠더드 팝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근사한 복고 풍의 R&B 솔 팝으로 편곡했다. '블루스의 여왕'인 제임스는 아레사 프랭클린과 함께 미국 여성 보컬의 양대산맥으로 통한다.
패티 김은 국내 서구적인 고급스런 터치를 녹인 스탠더드 팝을 꽃 피운 개척자다. 그녀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노래로 '왈츠의 여왕'으로 불린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의 이름을 활동명으로 삼았다.
지난 2015년 '불후의 명곡' 출연 당시 아코디언 명인 심성락과 함께 패티 김의 대표곡 '초우'를 재해석했던 박기영은 패티 김에서 시작된 국내 디바 계보의 적녀(嫡女)임을 분명히 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가창력만 뽐내도 그런 얘기를 들었을 텐데, 패티 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녀와 그녀가 부른 노래에 대해 공부하며 사흘 밤을 꼬박 세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편곡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보컬 팔색조(八色鳥)라는 사실도 새삼 증명했다. 1998년 1집 원(One)' 타이틀곡인 모던 록 스타일의 곡 '기억하고 있니?'로 데뷔한 박기영은 크로스오버, R&B 솔, 일렉트로닉 등 장르를 불문하고 각 영역에 맞는 색깔로 '천의 보컬'을 선보여왔다. 이런 가창 위주의 디바 모습뿐 아니라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제작자 역할도 겸하면서 국내 여성 가수들이 향후 걸어갈 수 있는 길의 발판도 꾸준하게 다지는 중이다. 내년 데뷔 25주년을 앞둔 박기영은 "저를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는 성실"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
-이번에 패티 김 선생님을 뵙고 어떠셨나요?
"음악이 흥이나 한으로 통하던 때에 음악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유일한 뮤지션이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대한민국 현대 대중음악사에서 '디바 1세대'로 칭할 수 있는 아름다운 분이시죠. 그 분의 음악을 두 번이나 연주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에요. 전 선생님을 뵈면, 에타 제임스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나라에 솔, 팝이라는 장르를 처음 들여온 분이시죠. 그래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도 거기에 초점을 맞췄어요. 선생님이 갖고 계신 솔적인 색깔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편곡 방향을 잡았고 블루스의 옷을 입힌 거죠."
-이번에 블루스 창법도 잘 소화하신 걸 보면서 정말 팔색조 같다는 걸 느꼈어요. 특히 경연 프로그램에서 부른 다른 가수의 노래를 마치 자기 것처럼 부르셔서 호평을 받으셨죠. 2016년 '불후의 명곡' 신년 특집에서 부르셨던 사라 브라이트먼의 '넬라 판타지아', 2014년 MBC TV '나는 가수다'에서 들려주신 나카시마 미카의 '눈의 꽃' 등이 대표적입니다.
"2010년 이후부터 국내에선 경연을 통해서 음악을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1990년대 후반에 데뷔한 저는 어떤 포지셔닝을 취해야 할 지,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음악에 접근을 해야 할 지, 제가 갖고 있는 메시지를 통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공감과 위로를 얻어낼 것인지를 가장 큰 숙제로 여겨왔어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방송 무대가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대중이 우리를 봐주는 게 경연이라면, 제가 그 경연을 통해 하고 싶었던 건 음악이었어요. 음악을 할 때가 없으니까 경연을 통해서 음악을 한 거죠. 그래서 이기기 위한 편곡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어요. 음악 자체를 위한 편곡을 했죠. 공부한 다양한 장르를 많이 펼쳐 보이고 싶었어요. 보석을 펼치는 것처럼요. 어릴 때는 클래식을 공부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R&B 솔에 심취했죠. 특히 휘트니 휴스턴은 모든 노래를 달달 외울 정도로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후반과 대학교 초반엔 록에 심취했고요. 그래서 모던 록 장르로 데뷔했죠. 이후엔 학교에서 배운 재즈, 보사노바를 계속 듣고 접했고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게 되면서 사이키델릭, 재즈, 보사노바, 솔 팝, R&B 하드록, 모던록 등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스펀지 같아요.
"데뷔할 당시엔 그게 단점이었어요. 저를 특정할 수 있는 개성이 부족하다는 거였죠. 너무 유연한 것이 굉장히 큰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이미 제가 데뷔할 당시엔 개성 강한 보컬 분들이 잘 되던 때라 저는 애매했거든요. 근데 이제 스펙트럼이 넓어져 장점이 됐죠. 제겐 팝과 솔의 정서가 깔려 있고 록밴드를 오래 해서 그 정서도 있어요. 클래식은 어릴 때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고 2012년엔 tvN '오페라 스타'(크로스오버 서바이벌로 박기영은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했다. 이후 크로스오버 앨범을 내면서 팝페라 가수로도 영역을 넓혔다.)에 출연하면서 성악 공부를 했죠. 그걸 제가 하는 음악에 잘 믹스했다고 생각해요. '오페라 스타'는 생방송 경연이라 더 힘들었는데 진짜 많이 배웠어요."
-지난 2010년 2월 미국 팝 디바 휘트니 휴스턴의 첫 내한공연이자 마지막 공연 당시 휴스턴이 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패티 김 선생님에게 악수를 청했던 현장에서 이를 지켜봤다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뮤지컬 '보디가드'에선 원작 영화에서 휴스턴이 맡았던 배역인 '레이철 마론' 역도 잘 소화하셨죠.
"휴스턴이 스트레스 요인들을 적당한 때에 잘 쳐내지 못한 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그녀의 음악 인생을 앗아간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번에 패티 김 선생님을 보면서 저보다 40세가 많으신데 아름답고 꼿꼿한 디바의 모습을 유지하고 계셔서 새삼 감탄했어요. 저도 그렇고 싶기 때문에, 무엇보다 음악을 할 때 힘들게 하는 요인은 놔두고 싶지 않아요. 사실 제가 가진 재능은 제 것이 아니잖아요. 주어진 것이에요. 가수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건 90이에요. 그런데 음악을 하려면 나머지 10을 엄청난 노력으로 채워야 하죠. 10을 위해 90의 100배만큼 노력을 해야 그 10이 완성됩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제가 제일 못했어요. 제일 열등한 학생이었죠. 만회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어요. 교수님들이 인정하실 정도로요. 데뷔를 하고 나서 잘해가고 있을 때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기영이 성실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했다'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아요. 음악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죠."
-워낙 노래를 편하게 하시고 우아한 이미지에, 데뷔하자마자 성공을 하셔서 고생을 하지 않은 듯한 인상이 짙어요.
"근데 그런 시선이 좋아요. 저를 디바로 만드는 좋은 시선이죠. 굳이 힘들게 고생하고 우울했던 걸 드러낼 필요.가 있나 생각해요. 앞으로 40년 더 한다고 하면 목, 몸 관리도 잘해야겠지만 멘털 관리도 정말 중요하죠. 정신적으로 절 힘들게 하는 걸 빨리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은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는 길이에요. 제가 감성적인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일이 있을 때 무대도 힘든 경우가 많은데 그걸 배제시키면서 음악을 하는 게 제 음악과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해요. (내면의 치열한 싸움으로 외로울 거 같다고 하자) 다행히 외롭지 않은 게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이 알아주거든요. 같이 편곡하고 녹음하는 친구들이 제게는 가족이에요."
-벌써 내년이 데뷔 25주년이십니다.
"25주년 기념 베스트앨범(제목 미정) 작업을 하고 있어요. 기타 녹음까지 끝냈고 내년 1월에 피아노, 스트링, 노래를 녹음하고 3월까지 믹싱을 마무리해야 내년 안으로 LP로 낼 수 있어요. 총 16곡이 실리는데 마지막 사랑, 블루스카이, 산책 등 히트곡을 재녹음해요. 지난 9월에 발표한 '버터플라이'부터가 베스트앨범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어요. 최근 발매한 디지털 싱글 '사랑이 닿으면'도 실리고 '꽃잎'이라는 곡도 발표할 겁니다. 또 신효범 선배님의 '난 널 사랑해'를 리메이크해 실을 거예요. 또 이와 별개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시는 백중현(Brandon Paik) 선배님과 작업한 전자음악 8곡이 있거든요. 그 중 '터프 걸(Tough girl)'을 재편곡해서 MC 메타님께서 랩을 해주세요. 이 곡들을 모아 또 LP로 낼 겁니다. '매직트로니카'라는 프로젝트예요. 또 다음 행보는 크로스오버 곡들을 LP로 냅니다. '넬라 판타지아'를 재녹음하고 '불후의 명곡'의 조수미 선생님 편에서 부른 '아이 드림트 아이 드웰트 마블 홀스(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도 싣고 일본에서 크게 히트친 클래식 곡 '주피터'를 개사해서 또 불러요. 여덟 곡이 실린 LP로 내후년 봄 즈음에 내지 않을까 합니다. 30주년까지는 계속 달려 보려고 해요. 이것저것 하면서 만 50세가 됐을 때 댄스 한번 해볼까 해요. 하하."
-말씀 하셨던 것처럼 더 오래 노래하시기 위해서 다양한 판을 펼치시는 걸까요?
"제가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지만(백석예술대 실용음악 보컬 전공) 국내 대중음악계는 이제 아이돌 말고 중간이 없어요. 자본력이 있는 대형 기획사가 양성하는 아티스트들은 살아 남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아티스트들이 자급자족 할 수 있는 판이 없어진 거죠. 그래서 제 위치가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잘하고 있으니까요.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걸. 패티 김 선생님을 뵈면서 저렇게 쭉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는 60세까지만 음악 하고 그만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을 뵙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음악의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고 목 상태가 전과 같지 않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죠. 선생님 계보를 잇는 디바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후배들이 제가 갔던 길에 대해 물어보면 충분히 알려줄 수 있어요. 지금도 많이 물어보고 있고요."
-이번에 발표하신 '사랑이 닿으면'(작곡 가수 정인·작사 래퍼 키비)도 보컬만 있는 버전, 보컬과 피아노가 함께 한 버전, 보컬과 스트링이 함께 한 버전 등 다양한 버전이 실려 있어 역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한다는 걸 또 새삼 느꼈습니다.
"(현 소속사인) 에스피케이엔터테인먼트 김승필 대표님 아이디어였어요. 목소리에 힘이 있으니 목소리만 녹음해도 괜찮고, 다른 어쿠스틱 악기를 추가한 버전도 내면 좋겠다고 하셨죠. 콘서트는 베스트앨범, 크로스오버 앨범 두 장을 내고 열까 생각 중이에요.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랑 같이 서는 방식 등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과 내후년이 정말 중요한 해 같아요.
"2012년 '오페라 스타'에서 우승한 이후 혼자 남아 회사를 운영하고 아이를 키우니 상황이 되니, 아이가 클 때까지 음악을 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시간이 지나면 제가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고, 다시는 음악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일단 직업을 바꾼 것처럼 아이를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키웠어요. 사실 저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어는 성실이에요. 뭐든지 열심히 하고 항상 끝을 보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요. 안주하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 뻔한 거, 이미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걸로 접근하면 저는 오히려 못해요. 항상 설레고 기쁘려면 조금이라도 더 새로워야죠. 이번에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편곡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떤 걸 선생님이 좋아해주실까 고민을 했고, 진짜 좋아해주셨죠. 녹화 끝나고 뵀을 때 '곡도 쓰냐고' 물으셨고 '너무 멋있다. 노래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음악도 이렇게 멋있게 하네. 애기도 잘 컸더라'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아이가 클 때까지 음악이 뒷전이었는데 이제 제가 음악에 집중해도 될 만큼 아이가 잘 컸어요. 25주년을 앞두고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아이에게도 고맙고요. 모든 관계엔 허니문이 있잖아요. 부부, 연인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친구 모든 인간 관계가 다 그렇죠. 그런데 우리는 알잖아요. 스스로가 얼마나 별로인지. 근데 사랑이 와서 닿으면 온전해지고 빛이 나는 거죠. 별로였던 자신이 반짝반짝 빛이 나죠. 근데 그것 또한 영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아름다워요. 그 순간의 찰나를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자 한 노래가 '사랑이 닿으면'이에요. 뮤직비디오는 남녀 관계로 그걸 표현했지만 일종의 은유예요. 사랑 자체가 주인공이죠. 모든 관계에서 사랑이 닿았을 때가 가장 빛나는 때라는 걸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관계를 뜻하는 여러 버전으로 발매한 것이 의미가 있죠."
-그러면 올해는 기영 씨에게 어떤 해였나요?
"잠에서 깨어난 해였어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오랜 기간 힘들었잖아요. 계획할 수 있어서 감사했죠. 음악가들에게 기쁨은 간단해요. 많이 불러주시면 거기서 기쁨을 얻고 불러주시는 대가로 음악을 만들고… 그게 선순환이 돼야 하죠. 지난 2년은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육아 말고는 단 한번도 음악 외에 다른 걸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도 25년 간 선순환을 잘해왔고 굉장히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열심히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경력 단절의 시간이 분명 있었는데 그 때 절 다시 찾아준 분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신 한 분 한 분을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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