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커리어 기로에 선 킴브럴, 마지막 도전에 나서다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투수 크레이그 킴브럴이 내년에도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는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년 10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 킴브럴의 통산 7번째 팀이다.
킴브럴은 성공한 마무리 투수다. 메이저리그 데뷔 때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다. 2011년 79경기 46세이브 ERA 2.10으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46세이브는 2006년 바비 젱크스(41세이브)를 뛰어 넘은 신인 최다 세이브 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킴브럴은 승승장구했다. 2013년 50세이브를 거두는 과정에서 통산 100번째 세이브를 수확했다.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였다(최연소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2014년에는 4년 연속 리그 세이브왕을 차지했다(63경기 47세이브 ERA 1.61). 세이브 기록이 공식 집계된 1969년 이후 4년 연속 리그 세이브왕은 브루스 수터(1979-82년)와 댄 퀴즌베리(1982-85년)에 이어 킴브럴이 세 번째였다. 그리고 킴브럴 이후 아무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애틀랜타를 떠난 킴브럴은 샌디에이고와 보스턴, 시카고 컵스,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거쳤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앞두고 LA 다저스로 이적했다. 데뷔 13년차에 접어든 킴브럴은 어느덧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 됐다. 화이트삭스에서 잠시 셋업맨으로 활약했지만, 여전히 마무리로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켄리 잰슨이 떠난 다저스는 마무리 자리가 공석이었다. 블레이크 트라이넨이 있었지만, 보다 믿을 수 있는 투수가 필요했다. 로버츠 감독도 "트라이넨은 더 다양하게 활용할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화이트삭스에서 보직에 불만이 있었던 킴브럴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무엇보다 최강팀 다저스는 킴브럴이 원하는 세이브를 가장 많이 챙길 수 있는 팀이었다.
실제로 킴브럴은 4월 9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개막전부터 마운드에 올라왔다. 로버츠 감독은 3점을 앞선 편안한 상황에서 킴브럴을 올렸다. 하지만 킴브럴은 2루타 두 방을 얻어맞고 실점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다저스에서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개막전은 올 시즌 킴브럴의 수난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킴브럴은 나올 때마다 외줄타기 피칭을 이어갔다. 세이브를 따내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다저스가 기대했던 피칭은 구경할 수 없었다. 특히 5월 중순부터는 결과마저 나빠졌다. 5월 17일부터 7월 8일까지 21경기 동안 19⅓이닝 17실점(14자책)으로 대책 없이 무너졌다. 그 사이 시즌 ERA도 1.04에서 4.82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포심 패스트볼 커맨드였다. 구속이 점점 떨어진 포심은 제구가 더 중요해졌다(2017년 98.3마일, 2021년 96.5마일, 2022년 95.8마일). 그러나 전성기 시절 구위로 윽박지른 투수에게 이제 와서 제구가 개선되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여기에 로버츠 감독은 시즌 중반 킴브럴의 딜리버리에 대해 "몸 회전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구위가 떨어진 투수가 기술적인 부분까지 흔들리면서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킴브럴이 마무리로 적합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승을 노리는 다저스의 마무리로는 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저스는 킴브럴에 대한 믿음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정규시즌 내내 순위 싸움에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킴브럴의 반등을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킴브럴은 나아지지 않았다. 잠시 'Let it go'의 가호를 받는 듯 했지만, 이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결국 킴브럴은 시즌 막판 마무리에서 물러났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다저스는 냉정해졌다.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킴브럴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는 파격적이 아니라 당연한 결정이었다.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커리어 최대 위기에 직면한 킴브럴은 필라델피아에서 재기를 노린다. 필라델피아는 애틀랜타 시절 자주 맞붙은 상대팀이었다.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홈팬들은 과거 킴브럴의 독특한 투구폼을 따라하기도 했다(정작 킴브럴은 경기 중 이 장면을 의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필라델피아 홈구장 시티즌스뱅크파크는 킴브럴이 아직 평균자책점 제로를 사수하고 있는 곳이다(통산 21경기 19⅓이닝 무실점).
올해 월드시리즈에 올랐던 필라델피아는 확실한 마무리가 없는 상태다. 강력한 후보 세란토니 도밍게스도 입지가 굳건하다고 보기 힘들다. 킴브럴이 원래 위력을 되찾는다면 충분히 마무리를 맡을 수 있다. 다만, 내년에 목표가 더 커진 필라델피아는 선수들이 당장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팀이다. 다저스처럼 무작정 오래 기다려주진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킴브럴이 필라델피아에서 마무리 쟁탈전에 실패한다면 더 이상 마무리 복귀는 어려울 것이다.
내년 시즌 킴브럴은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된다. 2021년 컵스에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을 당시, 그 때 남긴 말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내가 사랑하는 일과 내가 해야될 일을 하기 위해 나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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