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올릴까 고민하다 폐업합니다”...한숨 가득한 노량진 컵밥거리
“가스비만 20만원↑...손님은 줄어”
공시생 감소에 고물가 영향
“500원을 인상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그냥 가게를 내놨습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에서 무한리필 뷔페를 운영하는 50대 박대명(가명)씨가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직전인 2019년 가게를 인수해, ‘한끼 6000원’이란 가격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고물가 여파에 가격 인상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내 단념했다. 박씨는 “이 동네는 학생들 사이 입소문도 빨라서, 가격을 올리거나 반찬이라도 줄였다간 바로 손님이 줄어든다”며 “그냥 밑지며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돼지고기 반찬을 그나마 싼 닭고기로 대체하고, 일주일에 4회 나가던 고기반찬을 3회로 줄이며 버티던 그는 결국 지난달 가게를 내놨다.
27일 오후 헤럴드경제가 찾은 노량진 고시촌 일대 상권 일대에는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공무원 준비생 (공시생) 수가 줄어든데다 불황까지 겹친 탓이다. 30년차 슈퍼마켓 사장 A씨는 매장 밖, 성인 보폭 다섯 걸음 남짓의 골목을 가리키며 “9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저기를 지나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며 “월세 내기가 힘들어 가게 바로 앞 술집이 폐업을 했는데, 1년째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질 않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학원과 독서실이 집중된 만양로는 상점 5곳에 1곳 꼴로 ‘임대문의’가 붙어 있었다. 메뉴판 가격을 변경한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는 곳들이 적지 않았고, 아예 청테이프를 붙여 가격을 가린 곳도 있었다. 이곳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김진명(35)씨도 고민이 크다. 김씨는 “다른 번화가와 달리 이곳 일대는 밤 늦게까지 있는 손님들이 많이 없어 밤 10시면 문을 닫는다”며 “심야 장사를 못하는게 가장 아쉽다”고 설명했다.
한때 노량진의 상징과도 같았던 ‘컵밥거리’ 역시 과거의 활기를 찾기 어려웠다. 10년째 분식 포차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60)씨는 “한창 손님이 많았던 때와 비교하면 3분의1 정도는 사람이 줄은 것 같다”고 했다.
예전과 달리 영업을 하지 않고 있는 가게도 많다. 전재수 노량진 컵밥거리상인회 지역장은 “손님은 줄고, 물가는 오른 여파로 점포들이 문을 많이 닫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량진역 인근 도로에 인접해 늘어선 컵밥가게 부스 23곳 중, 이날 절반 이상이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노량진 상권 침체는 공시생이 자체가 줄어든 탓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청년층(15~29세) 취업준비자 70만4000명 중 일반직 공무원 준비생은 29.9%(21만명)으로 나타났다. 비중만 보면 가장 높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6만8000명이 줄어들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공무원 채용 인원이 줄어 든데다, 하위직 공무원의 처우도 ‘기대 이하’라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컵밥거리는 3000원 이하의 가격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함이 가장 큰 강점이었지만, 올해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량진 컵밥가게들은 올해 1월, 8년 만에 가격을 모두 올렸기 때문이다. 현재 컵밥가게 가격은 대체로 5000원 안팎이다. 박씨는 “500원 인상으론 당연히 매출 보전이 안 된다”며 “불을 5개를 쓰니 아마 우리 가게가 여기(컵밥거리)에서 가장 많이 쓸텐데, 아무래도 가스비가 제일 부담된다”고 했다. 박씨 포차가 한달 지출하는 가스비는 올초 50만원에서 최근 70만원으로 올랐다. 다만 상인들은 수험생들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컵밥의 추가 인상은 없다고 했다. 전 지역장은 “상인들이 여전히 힘들어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주요 고객들의 사정도 살필 수밖에 없는데 고시촌 학생들에겐 500원 인상도 부담이 크다”며 “내년엔 인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고시식당과의 경쟁도 컵밥거리 상인들에겐 부담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한때 컵밥가게들이 들어서며 가격경쟁을 이기지 못한 분식 프랜차이즈가 많이 사라졌는데, 고시식당들이 들어서면서 다시 위축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준비생들도 물가인상의 부담을 토로했다. 올해 소방직렬 시험 준비를 시작한 정유영(26)씨는 고시촌 생활 초반, 컵밥거리와 고시식당을 주로 오갔지만 최근엔 편의점 삼각김밥 등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아졌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는 날엔 하루종일 눌러앉아 공부를 한다. 정씨는 “컵밥도 5000원은 드니, 사실상 요즘 저렴한 식사란 불가능한 말 아닐까 싶다”며 “공무원도 박봉이라지만 적어도 취업을 하면 밥값 걱정을 그만해볼 수 있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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