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카펠라의 신화’ 펜타토닉스 “음악으로 팬데믹 장벽 허물고 싶었다”

김재희 기자 2022. 12. 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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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카펠라 그룹’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5인조 혼성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 왼쪽부터 베이스의 맷 샐리, 바리톤의 스캇 호잉, 소프라노의 커스틴 멀도나도, 비트박서 케빈 올루졸라, 카운터 테너의 미치 그래시. 소니뮤직코리아 제공

2011년 미국 NBC 아카펠라 오디션 프로그램 ‘더 싱-오프’ 시즌3 무대에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얼굴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텍사스에서 유년시절부터 함께 어울리던 바리톤의 스캇 호잉, 카운터 테너의 미치 그래시, 소프라노의 커스틴 멀도나도와, 이들이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영입한 베이스의 아비 케플런, 비트박서 케빈 올루졸라.

핑크색 티셔츠 차림으로 케이티 페리의 ‘ET’를 부르며 어색한 춤사위를 선보이던 이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들이 그래미 트로피를 세 번 들어 올리고 빌보드 메인차트인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뒤, 유튜브 구독자 2000만 명을 거느린 세계적인 팝 스타가 될 거라고.
이들이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의 곡을 혼합한 ‘Daft Funk’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3억6500만 회, 11세기부터 2010년대 곡들을 부른 영상 ‘Evolution of music’ 조회수는 1억4200만 회를 넘는다.

신보 ‘Holidays Around the World’를 발매하고 세계투어 ‘Pentatonix: A Christmas Spectacular!’에 나선 호잉과, 케플런의 탈퇴 후 2017년 합류한 베이스의 맷 샐리를 12일 화상으로 만났다.

검정색과 회색 체크 무늬 자켓을 걸친 호잉, 검정색 자켓 차림의 샐리는 11월 17일 오클랜드에서 시작해 하루걸러 하루 공연을 하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녁 있을 내쉬빌 공연은 이번 투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며 신나 했다.
호잉은 “한국에서 했던 공연은 내게 최고의 공연 중 하나”라며 “이번 투어에선 한국을 가지 못했지만 곧 한국 팬들을 만나고 싶다”고도 했다. 이들은 미국을 시작으로 내년 5월까지 세계투어를 이어간다.
● “팬데믹이 만든 국가간 장벽, 음악으로 허물고 싶었다”

펜타토닉스의 새 앨범 ‘Holidays Around the World’의 수록곡 ‘Last Christmas’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캡쳐.

10월 28일 발매된 새 앨범은 장벽을 허무는 시도였다.
아시아계 여성 최초 토니상 수상자인 필리핀 가수 레아 살롱가를 비롯해 콩고 가스펠 가수 그레이스 로크와,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일본 비트박서 히카킨&세이킨 등과 협업했다. 아프로비트(서아프리카 전통음악에 재즈, 펑크 등이 혼합된 음악 장르)부터 가스펠, 라틴음악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코로나 19로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녹음 파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곡을 완성했다.

“팬데믹으로 국가 간 장벽이 공고했던 시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앨범을 만들며 그 장벽을 허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녹음 과정은 서로 다른 음악과 문화, 그리고 각 문화권 사람들이 연휴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실험을 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살롱가는 제 약혼자가 굉장히 좋아하는 가수라서 직접 필리핀에 가서 그녀를 섭외했죠.” (호잉)

스무 살을 갓 넘긴 대학생 때 만났던 멤버들은 이제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부모가 됐다. 멀도나도는 올해 딸을 낳았고, 올루졸라도 지난해 득녀해 아빠가 됐다. 맷은 올해 1월 결혼했다. 가족들도 이들과 함께 투어 길에 올랐다.

“아이들이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합니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아이들이 꺄르륵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투어를 다니죠. 이건 새로운 다이내믹이면서도 굉장히 특별한 다이내믹이에요. 이런 일이 지금 이 시기에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인생의 이런 계절에 와 있는 건 정말 아름다워요.” (샐리)

펜타토닉스가 2013년 선보인 곡 ‘Daft Punk’의 뮤직비디오.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인 다프트 펑크의 곡들을 혼합한 이 곡으로 첫 그래미상을 받았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3억6500만 회를 넘었다. 유튜브 캡쳐

가족들과 다 함께 투어버스에 몸을 싣고 미국 전역은 물론 영국, 호주, 독일, 프랑스, 스위스, 체코, 일본, 싱가포르까지 대륙을 옮겨다니며 공연을 하는 스타가 된 펜타토닉스.
이들은 인기 팝송들을 독창적으로 편곡해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했고, 일렉트로닉 장르를 접목하는 참신한 시도로 아카펠라의 대중화를 이뤄낸 그룹이 됐다. 호잉은 유튜브와 아카펠라의 붐, 멤버 간 케미를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유튜브가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주된 매체가 된 시대에 저희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를 커버해 올리면 유튜브만으로 그 영상은 세계에서 입소문을 탈 수 있게 됐죠. ‘글리’와 ‘피치 퍼펙트’, ‘싱 오프’의 성공으로 아카펠라가 굉장한 르네상스를 맞은 것도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저희 멤버들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음악을 만들 때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며 창의적인 에너지가 생겨나요. 지금도 여전히 ‘한 번 놀아볼까? 악보 없이 음악을 만들어 볼까?’라며 저희의 뿌리로 돌아가려고 해요.” (호잉)
● “펜타토닉스는 ‘언더독’, 모든 장벽들을 부수고 뛰어들었다”

2011년 NBC의 아카펠라 오디션 프로그램 ‘더 싱-오프’ 시즌3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는 비트박서 케빈 올루졸라와 멤버들. 빌보드 홈페이지 캡쳐

“다섯 명이 스무 명의 목소리를 낸다”는 심사위원들의 극찬 속에 거머쥔 오디션 우승 트로피, 2015년 두 번째 정규앨범 수록곡 ‘Daft Punk’로 받았던 첫 번째 그래미상, 2016년 스티비 원더와 가졌던 그래미 시상식 데뷔 무대까지.
12년차 그룹 펜타토닉스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맷이 저희 그룹에 합류했던 날이 제겐 최고의 기억이에요. 그때는 그룹이 격변하는 무서운 시간이었어요. 맷이 들어왔을 때 모든 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고, 여전히 저희를 지지해주는 팬들이 있었어요. ‘그룹이 끝날 수도 있겠구나’에서 ‘오, 이게 새로운 시작일 수 있어’라고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었죠. 아, 얼마 전 필라델피아 공연에서 관중들에게 비틀즈의 ‘헤이 주드’ 후렴구를 베이스, 테너, 알토로 가르치고 화음을 맞춰 부르도록 한 순간도 못 잊어요. 1만2000명이 ‘나나나’를 떼창하던 순간은 마치 영화 같았어요.” (호잉)

“팀에 합류한 뒤 처음 가진 토론토 공연을 절대 못 잊어요. 그때 정말 긴장했는데, 팬들이 잘할 수 있다며 저를 응원했죠. 그 때 저희가 노래를 정말 잘 했어요. 뜻밖의 발견이었죠. ‘이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야’라고 생각한 순간이에요. 고등학교 때 펜타토닉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평범한 학생이 그룹의 일원이 된 거죠.” (샐리)

펜타토닉스 멤버들. 펜타토닉스 공식 홈페이지 캡쳐.

이들에게 음악을 포기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오디션 우승 뒤 멤버 전원이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와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얼마 못가 갈등으로 계약이 파기됐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새 레이블을 찾아야 했고, 소니뮤직과 계약하기까지 유튜브에 커버곡 영상을 올리며 팬들을 끌어 모았다. 2017년 케플런의 탈퇴도 그룹에게는 해체 위기였다.

“음악은 제게 치유이자 북극성과도 같습니다. 제가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죠. 그와 동시에 음악은 사람들에게 해방구가 되고 즐거움을 줍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제게 목적의식을 심어줍니다. 그 두 가지 만족감 때문에 음악을 만드는 일을 절대 그만둘 수 없어요.” (호잉)

“제가 펜타토닉스를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언더독’ 스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카펠라 장르에서 시도한 적 없던 것에 도전하고, 모든 장벽들을 부수고 뛰어들었습니다. 문화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에게 가닿는 그룹의 일원이라는 건 정말 멋져요.” (샐리)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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