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병에도 효자는 있지만.. '간병'의 뒤안길
"어머님을 더 편안하게 모시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50대 직장인 A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효자로 유명하다. 어머님을 10년 동안 간병했다. 뇌졸중(뇌경색·뇌출혈)으로 쓰러진 80대 어머니는 나중에 치매까지 발병해 최근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전담 간병인을 채용해 집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다 치매까지 발병하자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는 거의 매일 어머님을 찾아뵙고 간병인이 못 챙긴 것을 살폈다. 어머님이 남긴 조그만 집 한 채는 간병비로 다 썼다.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는 그의 월급에서 간병비를 부담했다. 그래도 그는 친구들을 만나면 어머니 걱정만 했다.
A씨의 간병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부모나 조부모가 중병에 걸려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 젊은 자녀와 손주가 케어(돌봄·간병)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른바 '영 케어러(Young Carer)'들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어린 나이에 부모-조부모를 기약 없이 간병하고 있다. 학업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의 '영 케어러'(11~18세)를 18만4000~29만50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8세에 불과한 어린이가 아버지는 암, 할머니가 고관절 수술로 거동이 어렵자 혼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할 고등학생은 아버지 사망 후 어머니도 건강이 악화되자 집안일은 물론 어린 동생까지 돌보는 소년 가장이다. 이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도움을 요청한 사례의 일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청년들이 생계를 책임지며 가족 돌봄까지 떠안은 것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령화와 함께 뇌졸중, 치매 환자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간병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간병은 이제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기 보다는 국가,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어린이가 할머니를 종일 간병하는 이야기는 세계 10대 경제강국 대한민국의 그늘이다. 이런 '영 케어러'들이 30만 명에 육박한다는 수치에 놀라움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간병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고 간병 인력의 법적 근거 및 관리체계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에 지난 6일 권고했다. 간병으로 인한 가족 전체의 삶의 질 저하는 물론 생존마저 위협받는 실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영 케어러'들이 학업에만 전념하게 하고 사회 전체가 장애, 질병을 돌봐야 한다는 인식도 깔려 있을 것이다.
8세 아이가 가족을 2명이나 간병하면서 가사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이 든 부모가 조금만 아파도 요양병원을 떠올리는 세태가 아닌가. 간병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세대들이 어린 이웃의 아픔에는 무심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가족만 간병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꾸고 정책적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들은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어렵다. 의사나 간호사가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진료·간호 서비스는 어떨까? 보건복지부가 이달부터 1년 동안의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재가 장기요양 수급자(1·2등급 우선)를 대상으로 한다. 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팀을 이뤄 의사 월 1회, 간호사 월 2회 가정 방문과 돌봄 등으로 환자를 관리한다. 비용은 기존 건강보험 시범사업 수가에 재택의료 기본료(장기요양보험) 등을 더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성남시는 저소득 1인 가구에 하루 간병비의 70%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경기지역에서 최초로 기준중위소득 90% 이하(월소득인정액 194만4812원 이하)의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연간 42만원까지 간병비를 지급하고 있다. 저소득 1인 가구의 경우 입원치료 시 간병인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선정기준에 맞으면 시에서 본인 계좌로 간병비를 입금한다. 아직 지원 규모는 적지만 출발이 좋다.
우리도 이제 의회,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간병 전반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시스템화를 서둘러야 한다. 언제까지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않은 간병인에게 내 부모의 몸을 맡겨야 하나... 간병인 채용부터 주먹구구식이다.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를 보고 소개 업체에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간병비 12만~15만원 시대에도 성실하고 유능한 간병인을 구하기가 어렵다. 아직도 간병인의 법적 근거, 관리체계가 없어 "사고라도 나면..." 늘 불안감이 드리우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때도 여러 항목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교사의 품행, 건강까지 살피는 세상이다. 그런데 나를 낳아준 부모의 건강과 안전을 돌보는 간병인 선택은 너무 허술하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간병 정책 수립은 그 중요성에 비해 매번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 나중에 내가 아프면 자식들도 광고 전단지를 보고 간병인을 붙여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제 정부가 직접 나서 간병인에 대한 자격제도와 교육훈련 등을 단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간병인 소개도 사설업체 위주에서 벗어나 법적 틀 안으로 끌어들여 관리해야 한다. 내 부모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간병만큼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세상이 와야 한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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