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엔 나이지리아 이보족이 산다…카메라가 본 낯선 이주민사

노형석 2022. 12. 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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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 작가 개인전 ‘캐피탈 블랙’
최원준 작가는 과거 미군들이 드나들었던 동두천 사진관에서 미군 대신 나이지리아인 이주민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 개인전에 내놓았다. 가족 사진들 가운데 일부다. 노형석 기자

미군이 사라진 자리에 어느새 아프리카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소장 사진작가 최원준(43)씨가 국내 주요 기지촌 중 하나였던 경기도 동두천에 최근 정착해 살면서 실감한 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독특한 이중적 풍경을 찍고 있다. 미군과 ‘기지촌 여성’들의 기념사진을 찍었던 동두천 보산동 일대의 기지촌 사진관들의 현재 공간이다. 미군들이 떠나면서 상당수가 없어졌지만, 일부 남아 있는 사진관들은 수년 사이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 가족들의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로 정체성을 바꾸면서 영업 중이었다. 과거 기지촌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공간의 역사성을 느끼면서도 그 속에 21세기 다문화시대의 군상이 얽혀드는 단면을 포착하는 것이 탐구심을 촉발시킨다고 작가는 말한다.

동두천 사진관의 아프리카인 가족 사진들은 최 작가가 지난달 말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 화랑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캐피탈 블랙’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나이지리아, 가나 등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생활상을 색다른 구도로 담은 사진 20여점을 동영상, 설치물 등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동두천, 동탄, 파주 등에 2000년대 이후 형성된 아프리카인 타운과 공동체의 삶을 처음 본격적으로 부각시킨 작업들이란 점에서 눈길을 줄 만하다. 동두천 사진관의 가족 사진에서도 보이듯 작가가 담은 사진 속 공동체들은 주로 과거 미군 부대가 머물렀던 지역에 뿌리를 내린 것이 특징이다. 미군 기지 이전으로 현지의 기지촌 경기가 사그러들자 집값이 싼 옛 부대 터 인근 제조업 공단 지대에 아프리카인들이 모여들어 아파트나 빌라에 집단 거주하면서 그들만의 문화와 생활 공동체를 형성해왔다는 것을 작가가 찍은 사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일 학고재 개인전 전시장에서 카메라 앞에 선 최원준 작가. 뒤에 있는 사진 작품은 <미국에서 온 데븐, 동두천>(2021). 양복 차림의 나이지리아 출신 미군이 음주 등 각종 금지 사항이 나붙은 한옥 정자 계단에 앉아있는 어색한 모습을 포착했다. 노형석 기자

“아프리카 각 출신 지역별로 사는 곳이 다르더라고요. 나이지리아 이보 족은 동두천, 카메룬 사람들은 동탄, 가나 사람들은 파주에서 주로 일하면서 살아요. 대부분 케이팝 등 한국 문화나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야근이 많은 공단 일이 벅차기도 하고, 주말에도 교민회 모임이나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신들만의 고립된 공동체 문화 생활을 하지요.”

최 작가의 작품들에서 이런 고립적인 특징은 되려 이들 출신지의 풍속을 그대로 유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교민 모임이나 교회 모임 뒤 건물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고 생일잔치 때 돈을 허공에 흩날리는 등의 모습이 보인다. 더욱 특이한 것은 망자들이 좋아하는 사물을 그대로 덩치를 키워 관짝으로 쓰는 장례 풍속. 그가 한국과 아프리카인 노동자, 학생들과 함께 연출해 전시장 안쪽에 설치한 동영상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보면, 망자가 좋아한 신발을 거대한 관처럼 만들어 산 자들이 상여처럼 들고 파주, 동두천 등 공동체가 있는 도시들을 휘휘 돌면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작가는 “시간 없고 돈이 부족한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현실을 환각적인 이미지로 담아낸 작품이다. 남미 문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마술적 리얼리티의 느낌도 있어 이를 화면에 풀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안쪽 전시장. 국내 아프리카인 공동체의 모임 장면을 연속 컷으로 찍은 사진 작품들을 배경으로 작가가 여러 국내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만든 뮤직비디오 작품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설치 동영상이 흐른다. 노형석 기자

최 작가는 이력이 특이하다. 전투경찰에 입대해 시위 채증 작업을 했던 체험이 카메라 작업의 바탕이 됐다. 2000년대 이후엔 북한 정권이 아프리카 각지에 외교 교류 일환으로 1970년대부터 건립해준 동상, 전당 같은 기념비적 조형시설물들을 현지에서 앵글에 담은 작업들로 남북분단의 강퍅한 실상을 낯설게 조망해왔다. 2015년 미국 뉴욕 뉴뮤지엄 트리엔날레에 출품한 뒤 현지 기획자 제의로 콩고의 중국 광산에서 일하는 현지 가족 다큐 영화를 만든 것이 한국의 아프리카 이주민 가족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고 했다. “우리와 같은 대지에 발디디면서도 다른 세계와 문화를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글로벌 시대의 또 다른 단면을 읽어내려 했다”는 작가는 “앞으로도 이주민들과 함께 살고 부대끼면서 그들의 내밀한 삶과 문화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교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31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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