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선서문 보물 됐다…문화재청, 6건 지정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문화재청은 27일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고려·조선 시대 전적과 근대 등록문화재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했다.
이날 보물로 지정된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과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고려 11세기에서 12세기 동안 만들어진 불교경전이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은 총 100권으로 구성된 '유가사지론' 중 권66에 해당하는 고려 11세기에 간행된 자료로, 해당 권차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유일본이다.
유가사지론은 중국 당나라 때 현장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모두 100권으로 구성됐다. 미륵보살이 4개월 동안 매일 설법한 내용이 담겼다. 유가(瑜伽)를 행하는 사람의 수행 단계와 자아를 해명하는 불교철학인 유식학 관련 용어를 풀이했고 대승불교 근본 사상을 이룬 경전이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은 고려시대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읽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이 표시돼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구결을 통해 고려시대 유식학에 대한 연구 수준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교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같이 보물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총 120권으로 이뤄진 '대방광불화엄경소'의 권88에 해당하는 자료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으로 크고 방정하고 넓은 이치를 깨달은 꽃같이 장엄한 경전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깨달음을 그대로 표명한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이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1087년 우리나라에 목판이 전래되면서 국내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1424년 일본이 여러 차례 대장경판을 요구할 때 다른 경판들과 일본에 하사해 그 후 찍은 간행본은 국내에서 더는 찾아 볼 수 없는 귀중본이다.
이 자료는 판본과 인쇄상태로 보아 12세기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동일판본 가운데 유일하게 알려진 권차다.
보존상태도 우수하고 조선·중국·일본 삼국의 불교교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보물 '불조역대통재' 14책이 보물로 새롭게 지정됐다. 동일한 판본의 다른 한 판본은 1982년 11월 보물로 지정됐다.
불조역대통재는 원나라 승려 염상(1282~)이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1334년까지 고승들의 전기나 일화들을 시간 순으로 엮은 책이다.
1430년 다시 간행된 판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새긴 목판을 1472년 성종의 모친 인수대비(1437~1504)가 왕과 왕자, 공주 등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위해 발원하고 간행한 것이다.
전체 권차가 남아 있는 완질본일 뿐 아니라 현재까지 국내에서 두 건만 확인되어 자료적인 완전성과 함께 희소성 또한 높다.
보물 '사시찬요'는 중국 당나라 말기 996년 한악이 편찬한 농업 서적이다. 사계절을 12달로 나누고 월별 농법과 금기 사항, 가축 사육법 등을 수록했다.
조선 초기 농정(農政)과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도입해 세종 때 '농사직설'이 편찬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농업경영에 참고한 대표 관련 서적으로 활용됐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사시찬요'는 조선 전기까지 사용한 고려 서적원) 제작 활자를 바탕으로 조선 초 사용한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 중자(中字)를 함께 사용해 인쇄한 책이다.
'사시찬요' 중 지금까지 한·중·일 삼국에서 공개된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서지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학술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간행 시기는 계미 중자의 사용사례로 봐 1403~1420년 해당하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를 사용해 '사시찬요'를 인쇄하게 된 배경에는 농업 활동의 증진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극복이란 의지도 있었던 것으로, 이 책은 민생을 위한 농업의 증진, 고려와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사실과 간행 당시 사회경제사 배경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손소 적개공신교서'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동마을에 대대로 거주해 온 경주손씨(慶州孫氏)의 후손 손소(1433~1484)가 하사받은 적개공신교서 1점이다.
적개공신은 1467년 세조가 함경북도 길주에 일어난 무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신들에게 내린 교서로 총 45명의 훈공을 문서에 기록했다. 1등은 이준 등 10명, 2등은 김국광등 23명, 3등은 이부 등 12명이다. 이 중 2등 공신 장말손, 3등 공신 정종의 교서가 이미 보물로 지정됐다.
손소는 1467년 5월 이시애의 난 때 군사업무를 담당하고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 2등에 책훈되고 각 궁에 물품을 조달하는 정3품 관직인 내섬시정으로 특진됐다.
해당 교서에는 수급자명, 공적내용, 특전과 포상, 등위별 공신명단, 발급일자가 기록됐다. 마지막 발급일자 위에 '시명(施命)'이란 어보가 찍혔다.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16세기 관련 의궤에 수록된 교서 재질과 표구 형식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개장이나 후대의 보수 없이 550년 넘게 원형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유물이다.
'손소 적개공신교서'는 조선 전기 중요 사건인 이시애의 난과 그에 대한 국가의 조치, 공신으로 책훈된 인물, 공신에 대한 각종 은전 및 특전에 대한 사례 관한 역사적 내용을 제공해 조선시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공신교서 문서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고, 현전하는 적개공신교서나 관련문서들과 비교할 때에 보존상태가 가장 우수한 자료로 판단된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에 작성된 것으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이다.
이 선서문은 백범 김구(1876~1949)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제출된 것이다.
당시 서명을 마친 이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1889~1940)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때 찍은 흑백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이봉창 의사가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선서한 당시 작성됐다.
이 의사의 의거 행적과 한인애국단의 활동, 항일 투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듬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한 윤봉길 의사가 작성한 선서문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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