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장애’를 심어라

구둘래 기자 2022. 12. 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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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장애 활동가 그림책 <더 이상의 ‘안 돼’는 거절하겠어!> ,시각장애 당사자의 <거기 눈을 심어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가 벌어질 때쯤이면 지하철역에선 ‘불법’을 강조하는 방송을 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지하철 운행을 5분 이상 지연시키는 행위 1회당 벌금 500만원이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교통공사는 시위가 진행되는 역에는 무정차 통과하겠다고 공지했고, 전장연은 시위 장소를 알리지 않는 ‘기습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누군가는 트위터에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은 지하철 타려면 예약해야 하냐”고 올렸다. 애초부터 ‘장애인은 지하철에 안 돼’를 전제로 한 싸움이다.

<더 이상의 ‘안 돼’는 거절하겠어!>(메리앤 코카-레플러 지음, 비비안 밀덴버거 그림, 김여진 옮김, 웃는돌고래 펴냄)는 미국의 장애인권 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이다. 주디스가 책 안에서 “안 돼”를 몇 번 들었는지 세봤다. “입학할 수 없습니다” “어렵겠네요” 등도 있지만 ‘안 돼’만 아홉 번 나온다. 주디스는 학교를 갈 수 없어 공립학교 지하에 있는 건강보호21 수업을 9살 때 처음 들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우수학생상을 받았지만 연단에 올라가지 못했다. 대학교 졸업 뒤 시험에 통과했지만 교사가 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와 소송을 통해 교사가 된다. 교사가 된 뒤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재활법 제504조’ 통과를 위해 맹활약한다. 이게 1977년 반세기 전의 일이다.

<거기 눈을 심어라>(오숙은 옮김, 반비 펴냄)는 시각장애인 당사자 입장의 명징한 통찰을 보여준다. 저자인 리오나 고댕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10살 무렵 칠판의 글씨를 읽기 어렵게 된 뒤 천천히 시각장애가 진행됐다. 거의 볼 수 없는 현재도 강렬한 빛은 감지한다. 시각장애는 경계 없는 장애이며, 이 감각의 스펙트럼은 인간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다르다’일 뿐 ‘틀리다’는 아닌 것이다.

책 제목은 시각장애인 시인 존 밀턴의 시에서 왔다. 눈은 마음의 창이고, 앞이 깜깜하고, 맹목(盲目)적인 사랑을 한다고 은유하지만 수전 손태그가 ‘질병에 대한 은유’를 없애자고 한 것처럼 은유는 ‘눈멂’의 정확한 상태를 드러내주지 못한다. 눈이 ‘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을’ 때 우리 문화가 어떻게 눈멂을 형상해왔는지를 드러낼 것이기에, 저자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리스신화, 기독교 문헌, 셰익스피어 저작의 ‘눈멂’을 분석한다. 지하철에 ‘장애’를, ‘이동의 자유’를 심어야 한다.

구둘래 기자anyone@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비운의 죽음은 없다

알리시아 일리 야민 지음, 송인한 옮김, 동아시아 펴냄, 2만2천원

미국 법학자이자 보건학자인 지은이가 사회적 고통과 죽음을 ‘인권’의 렌즈로 파헤쳤다. 개인의 불운으로 여겨졌던 사망(자살 포함)이 많은 경우 사회·정치·경제적 불평등과 국가의 폭력,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비롯했음을 다양한 실례와 데이터로 보여준다. 여성의 건강이 중요한 인권으로 자리잡는 과정의 험난함과 성과에도 주목했다.

김남주 평전

김형수 지음, 다산책방 펴냄, 2만2천원

시인이자 민중 전사이던 김남주(1946~1994)의 삶과 문학세계를 김형수 작가가 재조명했다. 1970년대 학생운동과 반유신 투쟁을 벌이던 고향 전남 해남과 광주에서의 활동, 남민전 사건으로 10년간 투옥 중 활발한 집필 투쟁, 출소 뒤 6년 만에 췌장암으로 숨지기까지 불꽃같은 삶을 추적하며 그를 지탱했던 정신적 원형과 유산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펴냄, 1만6800원

풍부한 상상력과 인문·자연과학 지식의 작가가 소설 <고양이>(2018)에 이어 실제 고양이에 대한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 약 700만 년 전 고양이의 첫 조상이 출현한 이래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의 역사’(1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2부에선 ‘고양이라는 동물’의 생물학적 특성과 행태를 담았다. 137장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블루프린트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 지음, 이한음 옮김, 부키 펴냄, 3만3천원

의사이자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인 저자가 이스라엘의 공동체 키부츠 등 자발적 공동체, 섀클턴 탐험대 같은 우연한 공동체, 대규모 온라인게임 같은 인공적 공동체 등 다채로운 집단을 살펴본다. 이들 공동체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 진화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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