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주엽나무 [손바닥문학상]
응급실 당직의 연락을 받은 것은 밤 11시가 좀 넘어서였다. 6개월 된 영아가 갑자기 한쪽 팔과 다리를 늘어뜨리고 처진 모습을 보여 급하게 이송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3층 당직실에서 뛰어 내려갔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응급구조사가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보호자로 보이는 부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따라왔다. 간이침대에 아이를 눕혔다. 아이 입에서 한쪽으로 침이 고여 흘러내렸다. 침이 흐르는 쪽의 얼굴이 반대편 얼굴보다 처져 있었다. 한쪽 팔과 다리도 근육의 긴장도가 떨어진 채 늘어졌다. 뇌경색에 의한 편마비 증상이었다. 그러나 사진 확인 과정을 생략한 채 아이의 부모에게 뇌경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뇌출혈, 편마비는 주로 고혈압이나 관상동맥 질환이 있는 노인에게서 일어나는 증상이었고, 아주 가끔 젊은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이의 부모는 납득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찍고 수액을 달도록 처방했다.
유아의 응급실 이송 때문에 불려 내려온 것이 이달 들어 벌써 여러 건이었다. 아이들은 다양한 부위의 뇌경색 증상을 가지고 이송돼왔다. 대부분 소아중환자실로 옮겨갔고, 살아서 나가는 아이가 드물었다. 한두 군데 작은 뇌동맥이 막힌 아이들의 뇌는 수일 내에 다발성 뇌경색으로 바뀌었고 손쓸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보고받는 소아과장의 표정이 어두웠다. 24시간 보고와 그날의 할 일에 대한 회의가 끝난 뒤 과장은 일어섰다. 문 쪽으로 향하던 과장은 한 차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옆에 있던 3년차 펠로를 보고 말했다.
“김 선생, 오전에 외래진료인가?”
“아닙니다. 오늘은 오후 진료입니다.”
“그럼 회진 끝내고 김진우 선생 데리고 밥 먹이고 좀 씻기고 오게. 2시에 있는 전체 회의에는 사람 형태를 띠고 참석해야 하지 않겠나.”
“제가….”
선배는 말하려는 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입 닫으라는 몸짓이었다. 과장은 다른 말 없이 회의실을 나섰다. 한 시간의 회진이 끝나고 김 선배는 입고 있던 가운을 빨래함에 던지고 나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따가운 빛에 눈이 시렸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집에도 안 가고 일주일씩 일해주는 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다 집에 가서 자고 오는데…. 과장님이 너 좀 쉬게 해서 들어오라는 소리인 거 알잖아.”
“네.”
“네 덕분에 나도 몇 달 만에 이 시간에 병원 밖 구경을 해본다.”
“엊저녁에 들어온 아이는 괜찮을까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지난밤과 같은 일이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소아과 팀은 과장의 지시에 따라 응급의학과, 소아과학회와 신경외과학회와 연합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신생아 사망에 관한 원인을 연구하기로 했다. 원인은 부검을 통해 찾아야 했다. 아이들의 부모는 부검을 원하지 않았다. 강제로 부검할 권한이 없었다. 신생아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아프리카의 1천 명당 81명의 수치를 대한민국이 능가하고 있었다. 뇌혈관질환으로 유아가 9% 가깝게 숨지고 있었다. 해를 넘어서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각 학회는 자신들과 연계된 선진국들의 병원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조사해보기로 했다. 믿을 수 없는 결과가 이메일로 전송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최근 2~3년 이내에 신생아 사망률이 10% 가까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증가는 전세계 사람을 공포와 공황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문제였다. 다국적으로 아동, 신경, 감염과 관련한 학회가 암암리에 개최됐고 결국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우리 병원의 소아과장도 대표단에 선출됐다. 나는 과장의 보조로 함께 스위스행 비행기를 탔다.
독일에서 온 한 산부인과 교수의 발언에 회의장의 모든 눈과 귀가 쏠렸다.
“우리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이 소아 뇌혈관질환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추측의 형태를 빌려서 말했다. 참석자들은 추측의 이유를 듣기 원했다. 산부인과학을 전공한 교수가 회의에 온 것도 궁금증을 유발했다.
“10년 전부터 독일의 출산율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과 관련해 가임기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 중이었습니다. 출산율 저하는 여성의 불임률 증가 때문이었습니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여성이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불임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여성들의 체내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이 이를 유발하는 인자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교수의 말은 계속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에 시행한 추적조사에서 여성들의 체내에 있는 미세플라스틱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들의 뇌질환이 이 미세플라스틱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회의장 곳곳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그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절멸할 수도 있었다. 각국에서 역학조사를 시행하고 2개월 뒤 다시 회의를 개최하기로 하고 회의는 끝났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뉴스를 들었다. 수백 마리의 고래떼가 미국 서부 연안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사체는 기름띠처럼 해안가를 둘렀고, 스크루에 사체가 뒤섞여 침몰한 배가 화면을 채웠다. ‘고래가 먹이를 먹기 위해 들이켜는 바닷물에는 먹이의 수보다 미세플라스틱 수가 더 많다, 예전처럼 노끈에 목이 매이거나 위에 비닐이 가득 차서 먹이를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몸의 곳곳에 미세플라스틱이 세포처럼 박혀 있다’고 해양학자가 화면 속에서 말했다. 앵커는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창밖은 구름에 모든 것이 갇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을 볼 수 없었다. 과장은 기내식을 먹은 뒤 줄곧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자고 있었다. 지갑을 꺼냈다. 신분증을 넣는 투명 칸에서 아내와 지민이 웃고 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집고 있을 때였다. 아내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나를 위해 사진을 지갑에 넣어주며 병원에서는 감염되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성화를 해댔다. 지민은 아내의 팔에 안겨 병원으로 왔다. 한쪽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내가 당직하던 주말 밤이었다. 소아중환자실로 옮겨진 지민은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나는 지민을 부검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지민의 몸에 칼을 대면 나를 죽이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아내를 업고 응급실로 뛰었다. 눈을 뜬 아내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팔을 잡으려는 내 손을 뿌리쳤다. 나는 더 이상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원인불명의 다발성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갖고 지민은 떠났다.
몇 개월 뒤 아내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폐기능부전이 동반된 아내는 숨이 가빠 누울 수 없었다. 아내는 나와 병원 둘 다 거부했고 아이를 따라 떠났다. 나도 그들을 따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죽을 힘이 없었다. 쉬어지는 숨을 쉴 뿐이었다.
대륙과 해양을 넘나드는 연이은 바이러스 질환으로 세계는 인구의 20%를 잃었다. 어느 가정이나 가족을 잃었다. 그 슬픔 위에 또 다른 가족의 죽음이 더해졌다.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덮을 수 있었다. 덮인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안개처럼 스며들어 곁에 머물렀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가 생존할 기회라고 말했다. 인구가 줄어든 효과로 자연이 되살아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바다의 동물군은 이미 60%가 사멸했고 육지의 동물군도 40%가 멸종됐다.
아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세상을 떠난 것은 바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민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바이러스가 아닌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다발성 뇌경색이 원인이었을까? 원인을 알면 나는 가족을 구할 수 있었을까? 둘의 웃는 모습은 편해 보였다. 둘의 웃음은 내 세포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데 눈에는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공항에 취재하러 온 기자가 여럿 보였다. 처음 겪는 광경이었다. 나는 과장의 캐리어와 내 캐리어를 끌고 옆으로 비켜섰다. 기자들은 여성들의 체내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을 해댔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묻는 말에 의사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다양한 방면으로 답을 찾고 있다는 정답과 거리가 먼 답을 하고 일행은 공항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질병관리청과 협조해 팀을 구성했다. 지난해와 올해 숨진 유아의 엄마들에게 연락해 검사를 시작했다. 엄마들의 체내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잠식돼 있었다. WHO와 자료를 공유했다. 선진국과 후진국, 도시와 농촌. 구분의 의미가 없었다. 여성들의 몸은 미세플라스틱의 세계였다. 떼죽음으로 밀려온 고래들의 몸속에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했다는 뉴스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도 그 길로 가는 걸까? 미약하고 섬세한 아이들에게서 그 길이 시작됐을까? 답은 보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며 더 짙은 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권역 의료센터를 알리는 붉고 흰 간판의 불빛만 혼자 깜박였다.
전화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산림청 소속 연구팀장으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기 원호의 전화였다.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며 시간 되면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술잔이 거듭될수록 말수가 줄어든 우리는 술만 들이켰다. 나는 최근 WHO에 갔다 온 이야기를 했다. 원호는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원호는 함께 일하는 강 박사가 하는 유전자를 바꾸는 연구에 대해 말했다.
“유전자를 바꾼다? 이미 유전자조합을 통한 변형은 다 하는 것 아냐?”
“강 박사가 하는 유전자변형은 그것과는 다른 문제야. 이전의 것들은 두세 품종의 유전자들에서 장점을 따와서 하나의 품종에 발현시키는 것이고, 지금 강 박사가 하는 것은 한 품종의 유전자가 변화되는 과정 전체를 다른 품종에 복사시킨 뒤 동화시키는 과정이야. 훨씬 더 난해하고 복잡하지.”
“들어도 차이를 잘 모르겠다. 감이 잘 안 와.”
“네가 말하는 변형의 예를 들어볼게. 대추가 달지만 물컹한 식감 때문에 기피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해봐. 그럴 때 사과의 아삭함을 대추와 접목하면 그런 식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잘 먹을 수 있겠지.”
“응.”
“원래 있던 두 가지 성질을 한곳에 묶는 거야. 다른 경우를 한번 볼까? 가시가 있는 나무가 있어. 주변 환경이 변화해 가시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가시가 잎으로 바뀌는 진화 과정을 거치겠지.”
“그렇지.”
“그게 얼마나 걸릴 거로 생각해?”
“한 300년? 더 걸리려나?”
“아냐, 40년 만에 바뀐다는 것이 알려졌어.”
“40년밖에 안 걸린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놀랐지? 그래, 우리도 놀라워.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데 그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말이야.”
“그래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가 변화하는 과정을 다른 종에 심을 수만 있다면 나무뿐만 아니라 동물도 적응을 더 빨리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강 박사의 생각이고 그것을 연구 중이지. 요즘 지구 상황을 보면 필요한 연구가 아닐까?”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 몸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몰아내는 유전자를 심는 것도 될까?”
“그걸 답하기는 아직 어렵지.”
원호는 내게 어떻게 지내냐며 주제를 옮겼다.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또 한 잔을 들이켰다. 술은 식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목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원호도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원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의 무게만큼 마음이 일렁였다. 우리는 또 연락하자는 말을 끝으로 일어섰다. 병원 당직실로 가려던 걸음의 방향을 바꿔 5분 거리에 있는 길 건너편 집으로 갔다. 집 안은 썰렁했다. 지민의 방에서 노르스름한 작은 불빛이 새어나왔다. 지민 방의 스탠드 등은 24시간 켜두었다. 방이 홀로 외로울까 두려웠다. 지민이 떠난 뒤 아내는 지민의 방에서 떠나지 않았다. 잠도 지민의 침대 옆에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잤다. 밤늦게 돌아와 잠든 아내 뒤에 누워 팔로 아내를 보듬으면 등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아내와 지민의 향이 뒤섞인 달큼한 냄새는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지민의 방에서 잠을 청했다. 방의 주인도, 아내도 없는 방은 한기가 구석구석 뭉쳐 있었다. 나의 움직임에 뭉쳐졌던 한기가 흩어져 내게로 흘러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국내에서 매주 열리는 회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해결책 없이 원인에 대한 원인만 여러 형태로 짚어졌다. 옆자리에 앉은 소아과장에게 원호의 이야기를 전하며 차라리 강 박사라는 분을 한번 모셔와 유전자변형에 관해서 들어보면 어떨지 운을 뗐다. 당장 전화해서 강 박사와 시간 약속을 잡으라고 했다. 원호는 다음 회의에 강 박사를 모시고 왔다.
강 박사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자라는 카스피주엽나무에 관해 이야기했다. 낙타에게 잎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2m 정도 높이까지 가시를 내는 나무. 한국에 옮겨 심은 카스피주엽나무는 낙타가 찾지 않는 환경에서 성장하자 가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잎이 났으며 이 과정에 40년이 걸렸다고 했다. 카스피주엽나무의 유전자가 매년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하고 있다, 연구를 위해 해마다 새 나무를 현지에서 들여와 수목원에서 키우고 있다, 수목원에는 1년 된 나무부터 20년 된 나무까지 성장하는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40년이 걸리는데 왜 20년 된 나무밖에 없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강 박사는 본격적으로 연구한 지 이제 20년이 됐다고 답했다.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그럼 앞으로 20년이 더 걸려야 연구가 끝나는 건가요?”
강 박사는 다른 자료 화면을 띄웠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형질 변경이 일어나는 과정과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제가 처음 이 현상을 발견한 나무가 25년이 지났을 때 일어났던 과정이 지금 보이는 A-1 나무에서는 19년차에 발견됐습니다. 그것이 생장 환경의 차이 때문인지는 B, C, D군의 나무들과 좀더 비교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스피주엽나무의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다른 나무들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점도 연구 대상입니다. 이런 두 가지 독특한 성질과 과정이 규명된다면 플라스틱을 이물질로 파악할 수 있는 유전자를 생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좀더 빨리 연구를 진행할 방법은 없습니까? 온실을 사용한다든지….”
“나무에 대한 연구는 시간을 단축할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온실은 나무의 생존 환경이 급격히 변한다는 것 외에는 연구에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모든 방법을 다 써봐야 할 것 아니요? 한시가 급한데….”
다음달 WHO 회의에 강 박사도 함께 참여했다. 그의 참석이 이미 알려져 몇 나라에서 식물학, 동물학 박사들이 회의에 같이 참여해 의견을 나누었다. WHO에서는 강 박사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후원을 하겠다고 공표했다. 여러 나라의 식물학자들이 팀을 이루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의학 분야와 식물학 분야, 동물학 분야의 박사들로 이루어진 팀이 6개 조직돼 흩어져서 연구했다. 강 박사는 수목원 4곳에 나무들을 분산시켜놓고 연구 중이었다. 각 수목원에 한 팀씩 배치됐고 두 팀은 일부 나무를 식물원의 온실로 옮겨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원호와 나는 강 박사 팀에 합류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 밤에 강 박사팀이 있는 강릉 수목원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일요일 밤에 병원으로 돌아왔다. 식물 연구 분야에서 의료인인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제한적이었다. 영유아와 관련한 소식을 전하고 동물학 분야 팀원들이 하는 연구를 도왔다. 팀이 증설되고 지원이 넉넉해졌다고 연구가 빨리 진척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무는 그런 지원과 상관없이 계절의 속도로 자라고 잎을 떨구었다. 사람만 바빴다. 높아졌던 해가 낮아지면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갔다. 해는 느리게 바뀌었고 우리의 마음은 더 바빠졌다.
또 해가 바뀌고 봄이 왔다. 나무들이 여리고 보드라운 잎을 내밀었다. 강릉 수목원에 도착하자 원호가 웃으며 나를 맞았다.
“이 프로젝트 하며 너를 자주 봐서 그거 하나 맘에 든다. 너 어제 결근인 거 알지? 기강이 빠져서 금요일에 내려오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많지도 않은데…. 올라가면 이틀, 사흘 만에 밀린 일이 산더미다. 왔다 갔다 하다가 네 친구 죽겠다.”
우리는 연둣빛 햇살이 아늑한 수목원 길을 걸었다.
“이 녀석 엄살은…. 근데 봄에 올라오는 새잎이 갈수록 예전과 달라.”
“유전자가 바뀌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라 기온이 자꾸 올라서 봄 잎의 함수율(수분 비율)이 자꾸 낮아지고 있어.”
“나무에 어떤 문제가 생겨?”
“나무는 한자리에서 성장해야 하니까 어지간한 환경의 변화에는 적응하려고 해. 함수율 자체보다는 다른 문제지.”
원호는 말을 계속했다.
“오래된 나무의 수분 보유량이 적어지고 봄의 새잎조차 수분량이 적어진 상태에서 불이 나면 치명적이지. 침엽수의 마른 잎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니 더 많이 타고 더 넓게 타고. 지난해 봄에도 경기도랑 충청도 산불 때문에 수목원을 두 개나 잃었는데 걱정이다.”
산불이 나면 일주일씩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었다. 미국은 산맥을 타고 한 달씩 산불이 지속됐다. 서울 면적의 2배가 탔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댔던 기억이 났다. 우리가 연구하는 수목원은 두 개로 줄었다. 지원하러 왔던 연구팀의 일부는 짐을 챙겨 떠났다. WHO는 다른 곳에서 비슷한 연구를 시작했으나 나무의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그래도 믿을 곳은 한국의 카스피주엽나무뿐이었다.
“비라도 오면 좋을 텐데…. 비를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아.”
“강원도 쪽은 유달리 지난해, 올해 비가 더 안 오는 것 같더라.”
“일기예보에서 50㎖ 온다고 해도 5㎖도 안 올 때가 훨씬 많아. 잎들이 서걱서걱해. 잎에 부는 바람 소리만 들으면 가을 같아.”
걱정을 달고 주절거리던 원호는 시계를 보고 회의에 늦겠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새벽까지 병원 일을 하고 달려온 나는 아침을 거른 채 회의에 참석했다.
서울로 가는 길에 긴급 콜을 받은 나는 병원으로 갔다. 지민이 또래의 아이들이 여전히 응급실로 실려오고 있었다. 환아를 보고 중환자실까지 한 바퀴 돌고 당직실로 들어온 나는 전공의들과 함께 먹을 야식을 주문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야식을 먹으며 뉴스를 봤다. 정부는 모든 플라스틱 사용을 강력하게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사용을 지속해서 방관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재활용 수거함에 가정에서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양이 1천 배 이상 증가해 그 처리로 몸살을 앓는다고 앵커가 말했다. 뜨거운 장국을 용기째 들이켰다.
시계가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전공의들에게 쉬라 하고 당직실을 나서 집으로 갔다. 불이 켜진 지민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민과 아내의 사진 옆에 놓인 딸랑이가 눈에 들어왔다. 지민이가 좋아하던 장난감이다. 매일 씻어서 닦아줘야 한다고 마트에서 아내가 골라온 것이다. 플라스틱 재질이다. 딸랑이를 집어 올렸다. 아내와 지민의 체취가 손을 타고 올라온다. 나는 딸랑이를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지 못할 것이다.
원호의 전화가 온 것은 내가 서울로 온 지 열흘쯤 됐을 때였다.
“야, 드디어 찾은 것 같아.”
“뭐라고?”
“유전자가 바뀌는 형태를 강 박사님이 찾았다고.”
“진짜? 고생했다. 정말 고생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간 거지. 그래도 이 실마리가 가장 크니까.”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어. 그래서 마누라보다 너한테 먼저 전화한 거야.”
“그럼 다음에 내려가면 강 박사님이 회의에서 발표하시겠네.”
“흐흐흐, 그렇지. 근데 내가 그때까지 너한테 말을 안 하고 기다릴 수가 없지.”
“나도 너무 좋아서 뭐라고 말이 안 나오네.”
“너 다음에 내려올 때 뭐 들고 와야 하는지 알지?”
“집에 있는 술, 몽땅 차에 실어놓을게. 오늘 당장 실어놔야겠다. 그래야 안 잊어버리지.”
“그래, 그렇지. 그래야 내 친구지. 바쁠 텐데 일해라. 2주 뒤에 보자.”
그 밤에 불이 시작됐다. 오대산에서 시작된 불은 바람을 타고 동으로 강릉으로 향했다. 임도가 제대로 깔리지 않은 깊은 산의 불길은 위로 산을 타고 밑으로 고불고불한 국도를 타고 움직였다. 불씨는 바람을 타고 날아서 이쪽저쪽으로 옮겨다녔다. 티브이(TV) 화면 속의 불씨는 움직이는 생물처럼 보였다. 강릉 시내로 향한 불길을 잡느라 강원도와 경상도의 소방헬기가 모두 집결했다. 내려가겠다는 나에게 원호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오지 말라고 했다.
연차휴가를 모두 쓰고 나는 강릉으로 갔다. 서류와 자료는 백업이 돼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무였다. 하지만 나무를 옮길 방법이 없었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서 주불이 잡히기 시작했다. 수목원은 소방청의 우선순위 속에 있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마을이 먼저였다. 예비로 비치된 소방차는 수목원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다. 수목원 옆으로 사천천이 흐르고 있었으나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이 드러나 보였다. 수목원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우리는 세 번째 수목원을 잃었다. 강 박사는 지쳐 보였다. 그런 강 박사를 보며 원호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실린 술 상자에서 나는 덜커덩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불이 지나고 3주가 흐른 뒤 서울에서 회의가 재개됐다. 전체 팀원이 모두 모였다. 강 박사는 마지막 남은 수목원에서 연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강릉 수목원에서 자라던 카스피주엽나무들의 수령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그 나무에서 채취한 시료를 진주 수목원의 카스피주엽나무에 접목해 연구해보겠다고 했다. 원호는 진주는 너무 멀다고 진주대학병원에서 나를 대신할 소아과 선생을 한 명 섭외하겠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집으로 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지민의 방에는 여전히 노란 등이 켜져 있었다. 지민의 작은 침대 안에서 지민과 지민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나를 보고 환히 웃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웃고 싶었다. 나도 그들 곁에 가고 싶었다.
지민 엄마가 떠난 뒤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이 나지 않았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강릉 수목원이 불타고 더는 연구팀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눈물이 났다. 주저앉아 울었다. 울음이 울음을 불러들였다. 내 울음소리에 겨워 또 울었다. 나는 내 울음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참았던 울음이라고 하기엔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나는 숨을 쉬는 것에 지쳐 있었다. 그것이 울음의 이유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딘가 박혀 있을 곳이 필요했다. 숨을 곳이 필요했다.
원호에게 전화했다. 진주 팀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는 사직서를 냈다. 소아과장이 불같이 화냈다고 전공의가 내게 전했다. 소아과는 늘 의료진이 부족하다. 인원 보충이 끝난 봄에 구멍 난 인력을 메우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내년 초까지 지금 인원으로 일해야 한다. 내가 병원에 머무르는 시간을 사람 수대로 쪼개어 동료들이 잠잘 시간을 줄이고 집에 가는 날을 줄일 것이다. 괜찮다고 말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쳐다보기 힘들었다. 소아과장과 면담했다. 일주일 동안 입원한 환아의 인계를 모두 마치라고 했다. 소아과장실에서 쫓겨나듯이 나왔다.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하다고만 말했다. 인계를 마친 금요일 저녁 소아과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음달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진주대학병원에 펠로로 2년 근무하라고 했다. 정확히 2년 뒤 복직이고 하루라도 늦으면 해고라고 적혀 있었다. ‘네’라고 대답을 보냈다.
지민의 방을 청소했다. 달려 있던 모빌을 털어서 침대의 사진 옆에 놓았다. 노란 스탠드 등을 껐다. 등도 닦았다. 먼지가 오래돼 꾸덕꾸덕해졌다. 천을 펴서 침대와 등을 덮었다. 짐을 쌌다. 가방 안쪽 주머니에 딸랑이를 넣었다.
진주 병원에도 영유아들이 응급실로 실려왔다. 환아들 옆에서 기도하는 엄마들의 얼굴이 푸석했다.
비번 날에는 원호가 있는 수목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검사 자료를 정리하고 나무에서 표본을 채취했다. 나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드러워진 카스피주엽나무의 가시는 손가락을 갖다 대도 따끔거리지 않았다. 능선 뒤로 채 저물지 않은 해는 부풀어 오르며 푸근해져서 쳐다봐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헐거워진 나뭇잎들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뒤틀리면서 익은 카스피주엽나무의 열매가 땅에 떨어졌다. 열매를 주워 담았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김수정
수상소감 | 날것이 커피처럼 내리길 기다리며
점 드립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바리스타의 건너편에 앉습니다. 동주전자에서 떨어지는 방울방울 물이 봉긋이 솟은 원두 위로 침잠합니다. 제가 볼 수 없는 어두운 미로 속에서 물은 제 몸을 내어주고 원두가 주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깊어진 물이 캘리퍼 바닥을 향해 느려진 속도로 내려옵니다. 내려와 쌓이는 커피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커피를 옆에 끼고 앉아 피시(PC) 키보드를 두드리고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거친 날것의 글이 제게 옵니다. 첫 직장에서 책상 위 전화가 울릴 때 느끼던 가슴의 쿵쾅거림을 다시 느낍니다.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고 한 줄의 문장을 받습니다. 받아내지 못한 글이 켜켜이 쌓여갑니다. 쌓인 글을 하나씩 풀어가야 하는 작업이 저를 기다린다는 뜻이겠지요.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워 홀로 거리를 걷기 어렵던 날. 무심히 지나는 타인의 온기마저 따뜻하게 느껴지던 날. <한겨레21>에서 수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렁이는 마음에 흔들거리며 남편에게 전화했습니다. ‘카스피주엽나무’를 저보다 더 많이 읽어준 남편은 “첫술에 배불렀다”고 하며 기뻐해주었습니다.
저는 손바닥문학상에서 주춧돌 하나를 건네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문화회관의 최정란 선생님과 도반들은 제게 또 다른 주춧돌입니다. 이제 앞으로 가야 하겠지요. 지난한 길이 되겠지만 제 글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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